“아니엘라는 한때는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흉물스럽게 퇴색한 저택에서 유일한 말동무이자 친구인 충견과 함께 살고 있다. 죽음이 머지않은 그녀의 일상에서 아들이 가끔씩 걸어오는 안부 전화가 그녀에게 유일한 기쁨이자 기다림이다.”

알지도 못하는 감독의 작품이고,

폴란드 영화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어쩐지 흥미가 느껴지는 제목이 아니었다면(이런 제목 좋아한다)

보라고 해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발음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이름인 것 같은 도로타 케드지에르자브스카의 ‘죽어야 할 때’는 인상적인 제목처럼 인상적인 작품까지는 아닐지라도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혹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기만 하고 있는 것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작품일 것이다.

쉬지 않고 지나치는 자동차 소리와

혼란스러운 독백으로 작품은 시작하고,

조금은 안정되지 못한 느낌의 편집으로 인해서 노년의 아니엘라의 혼란을 부각되고 있다.

몸도 마음도 늙은 아니엘라는 자주 하나뿐인 아들에게 이제는 함께 살자고 설득하며 그녀처럼 낡은 집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주변에는 시끄럽게 음악을 울리고 발레를 가르치는 학원이 하나 있고,

항상 자신의 집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의심스러운 모습의 이웃만이 있을 뿐이다.

그녀는 모든 이들을 멀리하고 있고,

그런 그녀의 속마음과 다른 행동으로 인해서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다.

그녀의 곁에는 오직 충직한 개 필라만 함께할 뿐이고,

누구도 곁에 없고,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 남아도는 시간을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보내고 있을 뿐이다.

하나 뿐인 아들은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을 고가에 팔려고 할 뿐이고,

며느리는 조금은 그녀를 걱정하지만 그렇다고 그녀 곁에 있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손녀 또한 그녀에 대한 관심 보다는 그녀의 장신구들에 대해서나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실망하며 그녀는 아들을 향해 그녀는 더 이상 찾지 말라는 말을 전한다.

그런 배신감과 상실감으로 그녀는 더 이상 삶을 살아가야 할 필요성을 그리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이제는 자신이 ‘죽어야할 때’라고 생각하며 죽음을 준비하지만, 그렇게 죽음이 다가오기만을 바라는 순간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새롭게 준비한다. 그리고 그렇게 새롭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죽기 전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마무리 한 다음에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한다.

조금은 익숙한 느낌의 이야기 구성이고,

특별한 갈등 없이 노인과 그녀의 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작품이겠지만 최대한 어둠을 강조하는 흑백 화면과 주인공 할머니를 연기한 크지슈토프 글로비쉬의 신경질 적이면서 고독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는 모습을 훌륭하게 담아내는 연기, 그리고 과거에 대한 회상 장면들에서의 뿌연 영상들을 통해서 느껴지는 아련한 느낌까지 자칫하면 느슨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을 안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작품은 이런 장면들과 연출을 통해서 삶의 끝자락을 살아가고 있는 노년의 모습과

그 모습을 통해서 슬픔을 담아내고 있고,

그녀처럼 늙은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과

그 집에 있는 옷들과 소품들을 통해서 불러일으켜지는 기억들,

죽음을 향하며 들려주는 삶에 대한 통찰력과 아름다움에 대한 모든 것들까지 이 작품은 흥미를 잃지 않게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고, 그 이끌림으로 인해 삶이라는 것과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경지에 오른 통찰력과 연출력은 아닐지라도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연출이었고 시선이었다.

작품에서 죽기 위해 종교적인 의식을 하듯이 준비하는 모습에서 담담함 보다는 딱함이 느껴졌다면, 자신과 낡은 집이 어떻게 해야지 오랜 기간 남겨지고 기억될 수 있는지 고민한 다음에 보이는 그녀의 선택과 그 이후에 후회 없이 맞이하는 느닷없는 죽음은 갑작스러움으로 인해서 그리고 조금은 만족을 느끼고 죽음을 맞이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으로 인해서 더욱 큰 슬픔과 충분함을 느끼게 된다.

그 두 개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기는 쉽지만 생각보다 얘기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