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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에서 황매산의 철쭉을 보러가려면 황매산 영화 주제공원으로 향하는 것이 제일 가깝다고 산유화펜션 사장님께 귀띔을 들었다. 본격적으로 황매산 영화 주제공원 길에 오르기 전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으로 눈을 환기 시키고, 제법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힘겹게 오른다. 봉우리 하나를 오르자 두무재라는 돌판 하나가 눈에 뜨였다. 차황에서 황매산으로 넘어가는 이 산이 산이 아니고 고개였나 보다. 두무재의 저 반대편에는 산청과 합천의 경계에 자리한 황매산의 자락이 보이고,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꼬불꼬불 S자 길이라, 초보운전자인 내 가슴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물론 오늘 내가 운전하는 건 아니다.

두무재를 내려와 다시 한참의 경사길을 올라서고 나서야 드디어 황매산 주차장에 다다랐다. 황매산의 좋은 점은 해발 1108미터인데, 차로 한 900미터 가까이 올라와 실제로 걸어 올라가는 능선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산청에서의 황매산은 황매산 영화 주제공원과 가깝고, 아래쪽부터 이미 철쭉은 피어있고 축제를 알리는 팻말이며 현수막이 걸려 있어 제법 설레게 했다. 그러나 실상 황매산의 능선은 활짝 핀 철쭉보다 아몬드처럼 생긴 철쭉봉오리만이 알알이 맺혀 있을 뿐이었다.

4월 말, 고려산 진달래를 보러 가서도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를 보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이 예 와서도 또 벌어진 일이었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슬렁슬렁 길을 따라 걸어가며 가만가만 피어난 철쭉을 감상했다. 언젠가 이곳에 활짝 철쭉이 피어나면 온 산이 불이 붙은 듯 화려하게 변할 것을 생각하니 꽃봉오리의 철쭉도 썩 나쁘지는 않다.

슬쩍 길을 꺾어 영화세트장 방면으로 향한다. 어차피 철쭉이 피지 않았다면 애써 오르지 않겠다는 약은 생각을 한 참이었다. 한때는 영화를 촬영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관광객으로 번잡했을 곳은 지금은 많이 쇠락한 모습이었지만, 다시 영화가 촬영되면 그때는 번듯한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 생각하며 세트장을 나섰다. 나서는 길에 문득 황매산이라면 황색 매화가 더 많이 피어야지 왜 철쭉이 더 유명하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내 그 엉뚱함에 새침하게 핀 황매화를 만났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황매산의 황매는 그 황매화의 뜻이 아니었다. 황은 한자 ‘黃’으로 부(富)를 상징하고, 매는 한자 ‘梅’는 귀(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즉, 풍요로운 산이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또 누구라도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여 예부터 간절한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황매산에는 철쭉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시 황매산을 내려가는 길, 숲에 한가득 피어 있는 조팝나무 꽃 넝쿨을 보며 어쩌면 철쭉의 아쉬움을 달래라고 황매산이 보여준 배려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뭐 정 아쉽다면, 철쭉이 필 것 같은 다음주에 다시 오면 되긴 하겠지만.

두무재 오르는 길에 보이는 것은 황매산의 자락과 둥글게 층이진 다랭이논이었다. 높은 지형에만 있다는 계단식 논은 순식간에 날 사로잡았고 좀 더 가까이, 좀 더 예쁘게 찍고 싶다는 욕심은 기어이 길도 알 수 없는 동네를 헤매게 만들었다. 초행길임에도 용감하게 차를 몰았던 일행의 용기는 굽실하게 펼쳐진 다랭이논의 아름다움으로 보상 받고, 나는 황홀함으로 잠시 넋을 잃었다.

차를 돌려 마을길을 빠져 나와 다시 산청으로 향하는 길에, 사실 군데군데 다랭이논은 참으로 많았다. 결국 산청군 일대가 대부분 계단식 논이었다는 것이고 우리가 굳이 헤매고, 쑤시고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철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 나선 길이었으니 그걸로 또 족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