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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리 공원에 가려면 니시진역에서 전철을 타거나 TNC 방송국 앞 버스 종점에서 텐진이나 하카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는데, 아무래도 거리상 전철보다는 버스가 가까워 사전 정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버스 타기에 도전했다. 종점에 가니 오호리 공원으로 가는 버스는 대략 3편정도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후문 쪽으로 가길 원하는 내가 탈 수 있는 것은 6번 버스. 그것도 타고자 하는 시간대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이기도 했다. 약 10분을 기다린 후에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어 섰다. 먼저 버스 기사님께 이 버스가 오호리 공원에 가냐고 여쭈어 확인 하고 버스에 올라 많은 좌석 중에 타는 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차지하고 앉았다.

출발한 버스는 다리 하나를 건너고, 너른 공원을 하나 지나고, 한적한 도시를 돌고 돌며 달리고 조금 피곤했던 나는 꾸벅이며 좀 졸았는가 보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안내판을 확인 하다 오호리 공원 후문이라는 글자를 보고는 후다닥 뛰어 내렸다. 그러고 나서 낯선 길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났다.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버스에 앉아 계신 아저씨 한 분이 카메라를 두고 내렸다며 부르시는 소리였다. 헐레벌떡 버스를 뛰어가자 기사님이 문을 열어주시고, 버스 의자에 고스란히 놓여 있는 카메라를 얼른 주어 들고는 아저씨와 기사님께 허리까지 굽혀가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잘못 했다면 낯선 일본에서, 그것에 서는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는 버스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려 영영 헤어질 뻔 한 아찔한 상황이 아니었던가.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으니 응당 백골난망 감사를 해야 할 일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이산가족 상봉한 것 마냥 카메라를 보듬어 앉았다. 요즘 좀 소홀하게 대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여기 규슈로 여행오기 전 11월 제주 여행에서도 버스에서 한 번 카메라를 두고 내렸던 아찔한 경험이 있던 나였는데, 또 비슷한 일이 발생했으니 조금 철렁한 일이기도 했다. 여하간 다행인 것은 두 번 다 카메라는 찾았고, 아무리 생각해도 한 번 더 같은 일이 생기면 영영 이별이지 싶은 생각이 좀 들기도 하고 말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조용한 골목을 걸어 얼마 걷지 않아 곳 커다란 호수가 찰랑이는 공원 하나가 나타났다. 비로소 오호리 공원에 도착한 터였다. 버드나무가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과 한가로운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오호리 공원은 더불어 새들의 낙원이기도 했다. 특히 포동포동 살이 찐 갈매기들의 놀이터라고 할까. 아무래도 섬나라인 일본인지라 호수에도 갈매기가 많은 듯한데, 뭐랄까 역시 갈매기는 바다라는 생각이 드는 나에게는 좀 낯선 모습이었다.

커다란 오호리 공원은 둘레가 무려 2km나 되는데 중간에 세계의 섬을 연결하여 산책로를 조성하고 있는 좀 독특한 구조이다. 연못은 중국의 서호를 모델로 하였다고 하는데, 서호를 실제로 보지 못한 나로서는 비교가 어려운 게 좀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조금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설렁 설렁 걷는 산책길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던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후문쪽에서 걷다보면 일본식 정원과 후쿠오카 미술관이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데, 일본식 공원은 유료로 운행하고 있어 겉에만 슬쩍 둘러보고 다시 산책을 나섰다. 일본식 정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후쿠오카시 미술관도 마찬가지로 입장료가 있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다면 슬쩍 들어가 구경해볼만 하지만 아무래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출국 시간에 걷는 와중에도 신경이 쓰이는지 애써 가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공원을 지나서는 조금 울창한 숲이 나오고, 그 옆에는 스타벅스가 잇대어 있다. 역시 공원에서라면 차 한 잔의 여유를 부리며 책도 읽고 시간을 보내면 좋을 듯 싶긴 하지만, 이마저도 고사하고 걷고 있자니 내 걸음이 너무 빠르다고 바람결에 버드나무가 타박을 놓는다. 흐려지는 하늘만큼 좀 싸늘한 바람인지라 어깨를 슬쩍 움츠렸는데, 그 와중에 파란 하늘엔 하얀 날개가 활짝 펼쳐져 결국엔 내 걸음을 붙잡고 말았다. 이제는 훨훨 날아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말 이련가. 중국식 정자로 통하는 하얀 다리 위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그래도 하카타에 와서 하카타 라멘은 먹어보겠다고 도로 캐널시티로 향하는 내 걸음이 좀 우습다.

오호리코엔역에서 전철을 타고 하카타역에서 하차해 캐널시티로 잰걸음을 걸었다. 캐널시티 안에 이치란이 진한 육수로 한국인에게는 조금 어려운 하카타 라멘을 입맛에 맞게 우려내었다고 해서 가는 길이었다. 캐널시티 가는 길이야 두 번이나 걸어보았으니 어려울 것이 없었고, 바쁜 시간 내에 도착하는 것이 관건이라 좀 서둘렀다. 처음 캐널시티를 찾을 때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입구는 찾지 못해 고생했건만 다시 찾는 길은 어찌나 그리 쉬운지. 단번에 이치란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내고는 안으로 들어가 이치란도 단박에 찾아내어 자판기에서 라멘 한 그릇을 주문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치란은 독서실에서처럼 각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쳐져 있어 손님들 간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많이 찾아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메뉴판이 구비되어 있어 주문에도 쉬운 편이다. 돼지고기 편육(차슈)나 달걀, 목이버섯, 밥, 마늘이나 김 등을 추가하거나 육수의 맛도 조절할 수 있어 진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약한 것을 체크하면 그대로 나오니 이런 게 한국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지 않았을까.

라멘은 얼마 기다리지 않아 나왔다. 뽀얀 육수에 파가 송송 뿌려져 있고, 반만 익은 달걀에 쫄깃쫄깃한 면발에 담겨져 있자 절로 군침이 돌았다. 얼른 젓가락을 들고 잘 먹겠습니다 하고는 면을 입에 넣자 역시 하카타 라멘의 진한 맛이 먼저 느껴졌다. 역시 내가 이래서 일본 여행을 와선 스시와 라멘을 빼먹지 못한다고 하며 호로록호로록 국물까지 쓱싹 먹고 나자 배가 두둑해졌다.

이치란을 나서며 시간을 슬쩍 확인 하자, 호텔에서 짐을 찾고 공항으로 향해도 시간이 조금 남을 것 같아 보여 잠시 소화도 시킬 겸 캐널시티를 걸었다. 1층을 둘러보고 2층으로 올라가 하얏트 호텔과 이어지는 곳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고개를 내밀었다 야외 마술쇼가 하는 것이 눈에 뜨였다. 처음에는 배가 불룩하니 나온 마술사가 경쾌한 음악과 함께 재빠른 손놀림으로 마술을 펼치고, 두 번째는 대머리의 건장한 아저씨 한 분이 나타나 손님들과 함께 시끌시끌 즐거운 마술을 선보인다. 넋을 놓고 마술쇼를 보고 있자니 어느새 출국 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다.

캐널시티를 빠져나와 호텔로 돌아가 맡겨두었던 배낭을 찾아 등에 짊어졌다. 컴포트 호텔을 나와 하카타역으로 걸어가 일상에 녹아들어 걷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낯선 여행객으로 잠시 멈추어 섰다. 첫 날, 이곳에 도착했던 나는 모든 것이 얼떨떨하고 낯설어 어디로 가야할 지조차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이곳에 여행 온 곳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관광공사 직원을 만나 유용한 JR 패스를 받을 수 있었고, 하카타 버스터미널에서 우레시노로 가야할 것을 엉뚱하게 구마모토로 가는 버스를 타 버스 기사님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우레시노 터미널로 올 수 있었으며, 와라쿠엔의 친절한 직원의 도움으로 불편함 없이 여행할 수 있었다.

사가에서는 아소로 가는 기차 편을 상세하게 알려준 JR 패스의 사무원 덕분에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었고, 아소팜 빌리지에서는 어눌하게나마 한국어로 보관키를 잃어버린 내게 미소를 지으며 걱정 말라고 손수 가방을 찾아주었던 프런트 직원과 후쿠오카 버스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릴 뻔 했던 날 불러주었던 아저씨가 있었기에 나에게는 한 터럭의 후회도 두려움도 있을 자리가 없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사실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오래 남을 여행의 묘미는 그 작은 인연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낯선 곳으로부터의 안도가 아닐까. 그리고 그 안도를 통해 따듯하게 채워질 추억 한 자락이 아닐까. 6박 7일의 규슈 여행이 끝이 나고, 공항에서 멍하니 기다리다 그래도 빈손으로 가기는 민망해 카스텔라를 왕창 사들며 나는 피식 입 꼬리를 올려 웃는다. 그 웃음 안에는 규슈에서 얻었던 그 따듯한 인연들의 고리로 만들어진 여행을 앞으로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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