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마을의 존재는 마을여행을 좋아하기에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불편한 교통 때문에 몇 차례의 고민끝에 제외하곤 했다. 그간의 일본여행을 통해 무사마을을 많이 봐왔고, 대부분 큰 인상을 주지 못했기에 애초에 기대 없이 찾았다. 하지만 지란 마을은 사소한 반전이었다. 그간 이부스키 모레 찜질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늘에 있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마을이다. <아름다운 일본의 역사적 풍토 100선>에 선정되었다는 카피 라이트처럼 지란 마을 산책은 마치 살랑이는 봄바람처럼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 지란마을은 가고시마와 이부스키 중간에 위치했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버스로 한 번에 가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이부타마 탑승을 위해 환승의 불편함을 무릅쓰기로 했다. 관광특급 이부타마(指宿のたまて箱)와는 사츠마반도를 달린다. 매일 하루 3편씩 운행 중이며, 전석 지정석이다. 높은 인기 덕분에 주말 좌석표를 구하기 어렵다. 

기차는 약 40분 후 키이레역에 도착한다. 키이레역 바로 맞은편 버스정거장에서 지란행 버스를 기다리니 시간이 지나도록 버스가 오지 않아 역무원에게 물어봤더니 키이레행 버스 정거장은 다른 곳이라고 한다. 그곳은 역에서 2분 거리!! 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뛰어갔거늘 버스는 이미 안녕~~ T_T;; 다음 버스는 1시간 후!!! 어쩔 수 없이 남은 1시간 동안 키이레를 방황한다. 키이레는 평온한 어촌마을이다. 하품과 함께 1시간을 보낸 후 반가운 버스를 탔다. 

| 버스는 산으로 올라간다. 창밖 풍광의 짙은 녹음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녹차밭 하기 딱 좋겠다 싶었거늘, 안 그래도 녹차의 명산지란다. 약 20분 후 산 중턱에 위치한 지란 부케야시키 武家屋敷入口에 하차한다. (버스비 550円)

마을 전체가 정원을 마주하듯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다. 무사들의 정원마을이란 별칭에 걸맞다. 거리의 정원수가 마치 분재를 보는 듯하고, 차로와 인도 사이에 수로에는 유유히 잉어들이 헤엄치니 여행자의 마음은 여유롭다. 지나가던 바람도 이 마을에서 쉬다 갈 것 같다. 거리 뒤편 옛 고택들은 현재 주민들이 거주 중이고, 약 10여 곳이 국가명승지로 지정받아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아름다운 일본의 역사적 풍토 100선에 선정된 사쓰마의 작은 교토, 지란 知覽

아름다운 길의 가치는 사람을 두리번거리는데 있다고 했다. 길은 공간과 시간의 틈 사이에서 미지의 공간을 연출했다. 난 거리 곳곳을 신기한 눈빛으로 두리번 거렸다. 일본 시골을 여행하다 보면 부케야시키(=무사저택)는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검소함을 미덕으로 생각했고, 전쟁이 잦았기에 일본 무사들은 자신들의 저택을 화려하게 짓지 않았다. 대신 정원이나 분재를 가꾸면서 마음을 수련했다.

지란 무사마을은 여느 무사마을과 달리 길 자체가 정원이다. 오랜 시간 숙성된 이끼 낀 돌담, 돌담 위로 반듯하게 가꾸어진 정원수는 걷고 있어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사쓰마번(가고시마현의 옛 명칭)은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되기 전까지 일본 최남단이었다. 낮은 돌담만 보더라도 비교적 평화로운 편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대신 사생활 보호를 위해 나무들이 높은 돌담을 대신했다. 더불어 당시 류큐국(현재 오키나와)과의 교역이 활발했기에 마을에는 류큐문화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모리 시게미츠 정원 森 重堅 庭園          7개의 정원 중 개인적으로 가장 괜찮다고 생각한 정원이었다. 고택도 양호하게 관리되어 있었고, 숲 기슭에 위치해서 울창한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여러 정원 중에 유일하게 물이 있다. 마치 하나의 자연을 축소해 놓은 느낌을 줬다. 

| 정원에서는 따스한 차 한잔을 대접해주었다. 차는 자연을 순수하게 담았다. 

구 다카가의 주택 高城家住宅          육중한 지붕과 몸매가 왠지 날 바라보는 듯하다. 마치 시골 할머니 집에 올라가 마루에서 뒹굴며 새소리 물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저런 곳에서 한번 즘 살아봤으면 자봤으면...

| Cafe de fo는 고택을 개조한 이 거리의 유일한 카페. (미안하다, 오늘은 오빠 바쁜 몸이야...)

| 그리고 간판 조차 갖추고 있지 않은 무명의 식당이 이 거리의 유일한 식당이다. 면류는 약 700円, 일식정식류는 약 1400円선이다.

사타 나오타다 정원 佐多直忠 庭園          석탑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모래 정원으로 대륙적인 풍모가 느껴졌다. 

사타 다미코 정원 佐多民子 庭園          바로 위 사타 나오타다 정원이 남성적인 느낌이라면 이곳은 여성적인 느낌이다. 정원의 이름만 봐도 여성같은데...

| 개구리 인간이 날 웃게 했다. 그리고 바로 뒤에 입장하지 말라는 안내판까지!!! (더군다나 한글의 친절함까지..)  

사타 미후네 정원 佐多美舟 庭園       지란의 정원 중 가장 넓고 수려하다고 한다.

| 마을 중간에는 민가를 개조한 상점도 있다.

히라야마 료이치 정원 平山亮一 庭園       이 정원은 독특하게 정원수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 정원수는 지란마을에서 보이는 하하가다케 (사진 뒤편 언덕)를 축소시켜 표현해놓았다.

히라야마 가츠미 정원 平山克己 庭園          바로 위 히라야마 료이치 정원처럼 하하가다케의 모습을 정원으로 표현했다.

사이고 게이이치로 정원 西鄕惠一郞 庭園          이 정원은 학과 거북이의 정원이라는 별명이 있다. 비록 물은 없지만 학과 거북이가 물가에서 노는 것을 정원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사쓰마 영국관 Tea World          이 지역은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차의 명산지다. 도로변에는 이곳에서 제법 유명한 사쓰마 영국관이라는 차 전문점이 있다. 나의 눈에는 차보다는 빨간색 2층 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일본 전통이 고스란히 베여있는 마을과 어울리지 않을 법도 한데 묘하게 인상적이다.

지란 마을 산책은 마치 다도를 즐긴 후 상쾌한 느낌을 줬다. 이 마을의 가치란 자신만의 세상을 가꾸며 마음을 다스리던 무사들의 정성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내 버스는 왔고, 히라카와역까지 바다와 마을이 어우러진 멋진 풍광이 난 다시 마음을 빼앗겼다. 봄바람이 오면 왠지 이 마을이 다시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