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6월 초순(5~7일),
우리나라 경주에서는 꽤 의미있는 학술 대회가 있었다.
"경주 실크로드 국제 학술대회."
기존의 실크로드가 중국 서안에서 터키 이스탄불을 연결하는 12,000km의 거리가 아니라,
실크로드의 동쪽 끝점은 바로 한국의 경주라는 의미를 담는 자리이기도.
그런데 이 날,
중국 돈황의 「돈황 연구소」소속의 리신(李新,1969~ ) 연구원의 흥미로운 주제 발표가 있었다.
제목하여,
"돈황 석굴 벽화속의 고대 조선반도 인물상에 대한 조사와 연구."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연구 실적은 미미하기 짝이없다.
우리와 직 간접적인 연관이 있는 동양 사학은 물론,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 민족의 고대 불교 문화의 흔적이라든지,
인류 사학적인 면에서도 우리는 항상 외국의 사료들에 의존하고 있는 관계로.
그의 조사 연구에 의하면,
돈황 석굴에서 그에 의해 새로 발견된 고대 한반도인의 흔적은
약 40여 곳.
그 이전 까지 우리 학자들에 의해 밝혀져 알고 있는 한반도인의 흔적은 고작 대여섯 곳.
9호, 159호, 220호, 237호, 355호 석굴에 불과했다.
친절하게도(?), 부끄럽게도(!) 우리의 학자가 아닌 중국의 학자에 의해서
취득한 우리 선조들의 까마득한 발자취.
그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주제 발표의 내용이 우리가 이번 실크로드 여행을 작심한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학자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같은 민초라도 가서 확인해보자.
"직접~!"
직접 눌러 주실거죠~
꾸욱~!
이 번 실크로드 탐방을 앞두고 가장 기다려 온 여정중의 하나이다.
막고굴(莫高窟),
이름 그대로 사막위의 높은 굴이라는 뜻이다.
돈황에는 여기 막고굴을 포함해서 유림굴, 서천불동의 세군데 석굴및 토굴이 있다.
그중에서 벽화와 불상이 있었던 석굴은...
막고굴에 492개, 유림굴에 42개, 그리고 서천불동에는 17개,
그래서 현재까지 발굴된 석굴 700여개 중에 551개의 굴에서 벽화 혹은 석불이 발견 되었다.
이를 통틀어 사람들은 그저 많다는 의미로 천불동으로 키워서 부른다.
리신 연구원의 조사로는 그 중에서 여기 막고굴에서
한반도인으로 추정되는 고대인이 지금까지 38명 정도 관찰된다고.
흔히들,중국을 대표하는 3대 석굴이 있는데,
돈황의 막고굴,
소림사가 있는 용문석굴,
서안 옆 대동에 있는 윈강석굴을 지칭한다.
하지만 여기 만큼 사연과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은 없다.
그 중 막고굴은 지금으로부터 1700여년 전인 서기 366년,
오호십육국 시대 전진조에 승려 악준(樂樽)이 명사산에서 이상한 빛을 보고
석벽을 파서 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 이후로 북양, 북주, 수, 당, 송, 서하, 원나라에 이르는 무려 천여년 동안...
굴마다 조성된 그 무렵의 시대적 특징들을 깨알 같이 설명하고 있는
그야말로 역사와 그 시대의 재현된 백화점에 가깝다.
명사산 북쪽 벼랑에 남북으로 1.6km에 이르는 중앙아시아의 불교 문화의 보물창고.
돈황에 거주하던 돌궐, 위구르, 토번(티벳), 서하, 몽골인들이
서역과 중국을 이어주는 목줄과도 같은 돈황의 지리적 역할에 편승하여
수많은 이방인들의 울력과 세월 그리고 불심으로 만든 위대한 흔적이다.
수많은 민족의 승려와 조각가, 화가, 석공, 도공, 목공 들이 드나들면서 하나 둘씩 굴을 팠으며,
굴마다 그 시대의 불심과 민초들의 호흡과 몸짓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더불어,
돈황 유물의 가장 큰 값어치는,
돈황 문서로, 고대 한문, 위구르어, 고대 산스크리트어, 소그드어, 쿠차어,
호탄어, 토반어, 몽골어 등으로 쓰여져 있어서 불교 역사 뿐만아니라,
언어학, 그 당시의 인문사회 전반을 가늠할 수 있는 인류의 보물이라고 말 할 수 있다.
1700여년을 이어온 인류의 문화자산,
1987년, 막고굴은 당연히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자연 석벽에 불규칙적으로 방치되었던 석굴은 보호차원이라는 미명으로
이렇듯 획일적이고 정형적인 성냥곽 모습으로 오와 열을 맞춰가고 있다.
엄청난 입장료 수입을 위해 여행객의 통로도 알뜰히 정비되었고.
1960년 경부터 중국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정비와 보수를 거쳐
지금은 원래의 외관은 찾아 볼 수 조차 없다.
편리해서 좋다라기 보다 너무나 반듯해서 오히려 생경하다.
보수이전 (위의 사진)과 일부 보수 이후(아래 사진)의 모습.
보수는 어떻게 보면 필요 불가결한 것인지도 모른다.
1700여 년의 과도한 연륜과 확연히 변해가는 현대의 기후 풍토를 감안한다면...
보수하기 전(위의 사진)과 현재(아래 사진)의 모습.
여기의 석굴의 재질은 사암(沙岩)이다.
사암의 특성상 비와는 상극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이곳에 요즘은 강우량이 부쩍 늘었단다.
이 역시 지구 온난화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기온의 변화만은 틀림없는 현실이기에..
보수 전(위의 사진)과 현재(아래 사진)의 모습.
하지만...
보완은 나무랄 수 없지만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져 버린 그 때 그 모습은 서운하다.
이나마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의 배부른 탄식일 뿐.
보수 이전(위의 사진 )과 현재(아래 사진)의 모습. 어떤 이는 말한다. 허물어 지는 것도 역사의 일부라고. 소멸하는 것도 자연의 과정이라고... 어느 누가 옳고 어느 누가 그르다고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터,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그걸 굳이 틀리다고 말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고.
보수 이전(위의 사진)과 현재(아래 사진)의 모습.
유적은 그 시대의 대변자이다.
아무래도 포로 수용소 같은 정방형의 모습에서
그 시대를 앞서간 이들의 생생한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감방 같이 생긴 문 하나하나가 하나의 독립된 석굴이다.
그 곳에서 그 시절의 승려들은 열악한 장비를 사용하여 석굴을 파고
끼니 만큼의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고 마시며 외롭고 고독한 면벽 수도를 했을 것이다.
저마다 신앙의 대상을 그림으로, 불상으로 혹은 불심으로
가슴과 머리에 장착하고 구도의 길을 도모했을 것이리라.
그들이 추구하고 열망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개인의 열락이었을까, 세계의 평화였을까,
아니면 막대한 금액을 투자한 일부 석굴 주인의 부귀 영화였을까...
막고굴의 입장료는 180위엔.
한국돈으로 3만원이 넘는다.
돈황을 찾는 관광객이 한해 300만명이라고 하니, 막고굴 입장료 수입만해도 한 해 일천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황의 발전이 더딘 이유는
이 입장료 수입을 북경 정부에서 다 가져가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관광객이 많음에도 도로는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양관고성을 가는 길은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했다.
옛 사람들의 신앙이 오늘날 위정자들의 치부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곳을 자세히 설명해줄 미모의 안내원 겐칭(田晴)!
돈황이 모태 고향인 그녀는 이곳에서 가이드를 하기 위해 특별히 한국어를 배웠다고...
허가된 전문 안내원 없이는 막고굴을 구경할 수 없다.
방의 입구가 이렇게 아름답게 닫혀 있기 때문이다.
위쪽에 감방 번호 처럼 새겨져 있는 게 석굴 번호.
안내원 조차도 일부 허가된 석굴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이렇게 일부 방이라도 볼 수 있는게 다행이란다.
몇 년 이내로 모형굴을 만들고 원래의 석굴은 모조리 폐쇄할 예정이라니...
뿐만 아니라 자물쇠까지 야무지게 잠겨 있다.
막고굴은 세계 불교인들에게는 성지와 다름이 없다. 성지에 걸맞는 외모와 애교를 보여 줄 수 있는 슬기로운 지혜가 필요한 현장이다.
심지어는 막고굴 내부에서는 절대 사진 촬영 금지!!
앞으로 올리게 될 사진들은 어떻게 찍었는지 묻지 마시길~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고
나그네는 그래서 비싼 돈 들여 여기까지 오는 것....
동굴은 스무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좁다.
내부에는 조명도 없다.
밝은 데서 갑자기 들어간 불쌍한 나그네들은 어두운 실내에서 시력을 찾으려 발버둥을 쳐야한다.
내부의 풍경은 그저 안내원이 슬쩍 비쳐주는 플래시 불빛에 맞춰 주마간산할 뿐이다.
여기에 있는 735개의 굴 중 492개의 굴에는 불상과 벽화가 있다.
이 석굴은 당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니 1300년 정도 된 것인데,
불상에 색이 입혀져 있는 것은
청나라 때 불상을 수리하면서 덧칠 채색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나오는 사암은 조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상을 만들 땐 나무로 모양을 만들고 흙을 발라 채색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예를 들면 이렇게~
워낙 건조한 지역이라 흙으로 만든 불상도
보존이 수천 년을 이어갈 만큼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
「실크로드의 악마들」(Foreign Devils On The Silk Road) <피터 홉커크, Peter Hopkirk 著 >은
영국에서 넌픽션 상을 수상한 유명한 책이다.
이야기의 주 무대는 바로 이곳 돈황의 보물창고, 돈황 석굴이다.
다음은 이 책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이른바 악마들의 명단들...
오렐 스타인(Mark Aurell Stein, 1862~1943, 영국인)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 프랑스인)
스벤 헤딘(Sven Hedin, 1865~1952, 스웨덴인)
폰 르콕(Albert Von Le Coq, 1860~1930, 독일인)
랭던 워너(Langdon Warner, 1881~1955, 미국인)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1876~1948. 일본인)
이들의 공통점은 자국에서는 위대한 학자이거나 귀족으로 추앙을 받지만
이 곳 중국에서는 흉악한 도적이고 해외에서는 그저 비양심적인 유물 절도범일 뿐이다.
이들은 20세기 초엽,
그들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이 곳의 보물들을 약탈했다.
이들이 훔쳐낸 돈황의 숱한 보물들은 지금 뿔뿔히 흩어져 세계 각처에서 객고에 시달리고 있고.
그들이 얼마나 많은 문화재를 약탈 했는가는 그 수량으로도 짐작이 간다.
방대한 수량의 불교 필사본, 불상, 심지어 벽화까지 강력 접착제를 사용하여 뜯어갔으며,
금붙이가 붙은 유물은 칼로 긁어서라도 철저히 약탈했다.
밝혀진 바로는 돈황 출토 유물의 약 80%에 해당하는 양이다.
현재 세계 13개국에 분리 소장 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나라에도 꽤 많은 돈황 유물이 있다는 사실.
현재 용산 국립 박물관 3층 아시아 실에 가면
이름하여 "오타니 컬렉션"이라는 별명으로 진열되어 있어서 대부분 관람이 가능하다.
현재 400~500여점(세부 품목으로는 1,700여점)이 소장 되어있는데...
일본 소장 유물의 수량과 비슷한 정도.
어떻게...?
일본의 약탈자 오타니 고즈이(일본 정토종의 승려-일본 황실의 인척)가
돈황에서 약탈한 유물을 일부 자체 보관하다가
본인 소유 사찰이 파산이 나게되자 이 유물들을 조선 총독부에 조선 광산권 획득을 위한
뇌물로 증여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일본이 패망을 하게되자
일본으로 되가져가지 못하고
그만 우리 땅에 남겨지게 된 그야말로 남의 나라에 불시착한 사연의 장물.
이따끔 중국에서 반환을 요청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돌려 받아야 할 약탈당한 문화재가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우리로서는
돌려 주는 게 순리일 듯...
불상과 벽화가 있는 막고굴 492개의 굴 중 한 곳(17호굴)에 다량의 불경이 숨겨져 있었는데,
그 굴의 이름은 특별히 장경굴이라 부른다.
1900년 6월 25일, 우연한 기회에,쌓여 있는 모래를 헤쳐보니 서책이 다량 나왔는데,
그 수가 무려 5만여권!
그 5만권 중 한권이 혜초가 쓴 서역<인도>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
프랑스 약탈자인 폴 펠리오의 손에 의해
현재는 프랑스 박물관에 장물처리 되어있는 중.
이른바 강대국들의 부도덕함은 이미 세상의 중심이 되었으니...
하긴 영국 대영 박물관에 있는 진품 영국제는...
경비실의 경비원 밖에 없다는 조소어린 이야기도 씁쓸할 뿐이다.
석굴의 불화들은 다채로움의 극치를 자랑한다.
무려 1,700여년에 걸쳐 그려지고 다시 채색되고 덧칠되면서...
그리고 세월에 퇴락하여 그야말로 세계불교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인도인 보살들이 중국인 보살로 국적을 달리하고,
시대마다 불보살들의 의상이 그 시대의 유행으로 패션을 바꾸면서
유행하는 안료, 도료, 색감들마저 그 시대의 조류에 편승했다.
이런 벽화를 보면 당나라 시기엔 사람들이 잘 살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보살들의 얼굴이 둥글고 건강한 모습이다.
얼굴이 검은 이유는 당시에 색칠한 것이 화학 안료라 색이 변해 얼굴이 검어진 것이라고..
특히 푸른 색은 광물질이 들어있는 것으로 후대에 채색을 한 것이라고 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도 간간히 눈에 띄는데,
우리의 장구, 가야금 등 44종의 악기 6000여개가 막고굴의 벽화 안에 그려져 있다고 한다.
비천상은 이 곳 돈황의 상징이다.
도시 어느 곳을 가도 죄다 비천상들...
왼쪽 사진은 현재 돈황시의 상징인 현대판 비천상이고
오른쪽 사진은 서기 725년 통일 신라시대에 주조된 오대산 상원사 동종(국보 36호)에 있는 비천상이다.
1400여년을 건너 뛰었지만 한 눈에 봐도 복식이라든가 머리 형태에 유사점이 많이 보인다.
결국은 다 같은 씨앗에서 발아한 한뿌리의 문화라는 반증이다.
비천상의 원류는
인도의 천가신(天歌神) "건달바"와 천악신(天樂神) "긴나라"이다.
남녀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으나 실은 남녀의 구분이 없고,
구름을 타고 있으나 구름에 의지하지 않는, 세상을 통합하는 상징이다.
그 비천상이 동진을 계속하다가 여기 교통의 요지, 돈황에서 첫번째 꽃을 피우고
그 꽃씨는 동녘으로 동녘으로 흘러가서
우리나라의 상원사 동종등 수많은 신라와 고려종에도 피어났다.
우리가 이 곳 돈황을 멀다고 해서 마냥 멀리보고 방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는 결코 버릴 수 없는 우리네 뿌리와 내력의 길목이기에...
초기 동굴은 인도풍이었으나,
수.당 시대부터 불상들이 중국식으로 변했다고 한다.
특히 이 곳에는 북주(557~581년) 시절과 남북조 시대(439~589년)의 석굴이 많은데
이는 인도의 불교가 본격적으로 중국으로 유입되는 시기와 일치하고
그리고 여기가 고대로부터 중국과 서역을 왕래하는 요충지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키게 한다.
이 곳 중앙아시아는 전통적으로 불교 지역이었으나
8세기, 이른바 탈라스 전투에서 이슬람 군에게 패하는 바람에 회교 문화권이 유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불화의 의상이나 차림새가 때때로 이슬람의 그것을 표방하는 경우도 있게 마련.
막고굴에는 지하로 내려가서 어렵게 친견해야 하는 불상도 있다.
너무나 크고 육중해서 약탈을 막을 수 있었던 불상을 만난다.
막고굴 제130굴...
당나라의 가장 흥했던 시절 8세기(盛唐/705~781년)에 완성된 대불상.
앉아 있는 좌불 높이가 무려 26m. 남대상(南大像)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막고굴 96호굴에는 이에 대칭되는 북대상(北大像)이 있으나 친견금지.
막고굴 148굴...
역시 성당(盛唐 705~781년)시절에 조성된 와불상(臥佛像)..
와불은 중국 불교에서는 소(消)혹은 소적(消寂)을 의미하고 그 뜻은
역시 우리와 같은 열반(涅槃)을 의미한다.
열반상<중국에서는 睡佛像>의 길이는 14.7m,
와불상의 주변에는 수많은 소형 제자상들이 있었으나 이 역시 악마들에 의해서 약탈 당했다.
리신 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고대 한반도 인을 구별하는 방법은 그들의 고유한 복식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즉 조우관(鳥羽冠-새의 깃털을 꽂은 머리장식)이나 조미관(鳥尾冠-새의 꼬리털을 장식한 모자),
혹은 넓은 소매깃을 가지고 있거나, 소매깃을 한 번 접어넣은 복식,
그리고 한반도 인만이 사용하는고유의 악기를 소지한 인물등.
나름대로 한반도 인만이 하는 고유의 복식과 소지품으로 구별한다고.
그래서 이번 여행을 위해 출발하기 전부터 준비 했었다.
그리하여,
십여개의 석굴을 돌면서 미리 메모해둔 몇몇 의 석굴을 상대로
역시 몰래 준비해간 플래시를 비춰가며 매의 눈으로 석굴의 구석구석릏 관찰했건만
주어진 주마간산의 짧은 시간으로는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막고굴 332호에서 새로 발견된 한반도인.
머리 양쪽으로 조우관의 모습이 역력하다.
이 날 새로 발견된 한반도인의 모습이 있다는 석굴을
네 군데나 방문했지만 실물을 확인하는데는 실패를 하고 말았다.
안내인에게 거듭 문의했지만 그녀의 메모리에는 한계가 있었고.
<사진출처-불교 신문>
막고굴 61호, 일명 오대산도에 나와있는 한반도인.
안내인 아가씨는 우리에게 약속을 했다.
한반도인이 있다는 석굴을 일일이 확인하고 여기 상주하는 리신 연구원에게
문의하여 최소한, 다음에 오는 한국 여행객에게는 반드시 한반도인을 확인시켜 주겠다고.
그녀는 역시 예상대로 쾌재를 불렀다.
어차피 한국어 안내를 하는 게 본인의 주특기고 소임이라면
피상적인 안내 멘트에 그칠 게 아니라 이처럼 한국인이 좋아할 소재를
발굴해서 한국인 여행객에게 흥미를 배가시켜 주는 게 자신의 역량을 높이는 거라고...
두고 볼 일이다.
우리가 현지 한족 안내인에게 건네준 한반도인이 확인된 막고굴의 번호는...
9,120,121,138,148,158, 159, 220,237,332,335,355,427호....
사실 여기 막고굴에서 한반도인의 모습을 확인했다고 해서
그다지 큰 감흥을 받을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이 우리를 만나 반갑다고 그림 밖으로 튀어나와서 포옹을 해줄 리도 없고,
만난다고 해도 어쩌면 언어조차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
양꼬치 하나 생기지 않는 그야말로 상징적인 행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만리 먼 길을 떠나기 전부터 약간의 설렘과 함께
그들의 흔적이 있는 석굴의 번호를 메모하고 별도로 조명기구까지 구태여 준비한 까닭은,
단 하나.
그들과 우리는 남이 아니라는 까닭이다.
단지 시간대를 달리해서 천 수백년을 등지고 있지만
결국은 그들이 우리이고 우리가 또한 그들이기 때문이다.
막고굴의 외부 벽면은 대부분 최근에 덧칠 보수 작업을 했다. 하지만 윗부분의 언덕 부분은 수천 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이다. 세월에 부대낀 탓에 색깔이 약간 달라졌고, 인공을 더한 석재의 질감이 다소 틀리긴 하지만 어차피 한 시공에서 같이 공존해야 할 운명이 아니던가. 막고굴의 한반도인도 어쩌면 그런 것이다. 시공만 달리 할 뿐 어차피 한 공간을 살다 가는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지구라는 별에서 일천 수백년이라고 하는 "그저 잠깐 동안의 시공"을 잠시동안 달리 했을 뿐인데...
세월과 기다림에 지치면 생명도 유물도 아래로 내려놓기 마련이다. 어쩌겠는가, 내려 놓는 이가 있으면 언젠가 다시 채워 넣는 이도 있기 마련, 떨어져 나간 벽화의 모습도 어쩔 수 없는 오늘의 우리 모습이고 또한 멀지 않은 내일의 우리 모습인 것을... 그래서 여기는 멀리 있는 남의 땅이 아닌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 땅"이거나.... 세월에 떠 내려 갔거나 기억 속에 흘러 간 것은 굳이 아쉬워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여기서 어차피 방관자이고 이방인일 뿐으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막고굴을 찾는다.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설렘으로 이 곳을 찾는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천 수백년을 회상하고 수많은 시간을 덜어내어 이 먼 곳을 찾았다는 게 중요한 일이다. 중국 정부는 수시로 도적질로 가져간 자신의 보물 반환을 요구한다. 돈황의 보물들을 약탈 소장하고 있는 이른바 선진 양심 대국들은 말한다. 우리가 그 시절 그 보물들을 가져가서 보관해 주지 않았다면 과연 중국 당신들이 그 보물들을 지금까지 무사히 지켜내었겠냐고. 한 참 전에 작고하신 돈황인들도 배를 잡고 웃을 얘기다. 고귀한 남의 자식을 유괴해도 잘 키워주면 죄가 아니라는 논리다. 사실, 돈항 석굴은 중국 문화혁명 시절에도 엄청난 약탈과 파괴행위가 이어졌었다. 파괴의 가해자는 바로 공산당의 첨병이었던 홍위병들에 의해서. 그러나 그런 비상식적인 논리로 불의를 덮을 수는 없는 일. 자식은 어떤 경우에도 부모에게 돌려 주는 게 맞다.
일본 교토에 가면 어떤 외국인 동상이 하나 있다.
교토를 구한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인 동양 사학자, 랭던 워너(Langdon Warner)의 동상이다.
그는 한국에도 한국의 골동품(특히 조선 백자)을 사랑하는 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언젠가 그를 한국을 사랑하는 미국인으로 묘사한 어느 학자분의 글을 본 일도 있다.
그는 2차 대전 무렵,하버드 대학의 동창인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서
원자폭탄을 일본 문화 유산의 보고인 교토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했다고해서
교토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최근에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일본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던.
그는 다름아닌 돈황의 대표적인 악마중의 한사람이다.
그가 약탈해간 불상중의 하나는 그의 모교인
하버드 대학에 태연히 기증되어 역시 장물 보관 중이다.
학문과 진리의 전당마저 장물아비로 만들었다.
하버드 대학의 도서관에는 이런 문귀가 있다는데...
「꿈이 바로 앞에 있는데, 당신은 왜 팔을 뻗지 않는가!」
그의 눈에는 남의 나라 보물이
그에게는 꿈으로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