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가수에게 한 기자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살면서 가장 두려운 때가 언제였느냐고.
그 가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넘겨받는 순간!"
우문현답이었다.
화가는 붓을 두려워해야 하고,
작가는 펜을 두려워해야 하며,
정치가는 세 치 혓바닥을 두려워해야 한다.
예부터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생을 망치는 경우를
우린 많이 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까?
건강?
근거없는 기대?
과도한 짐?
나는 "낯섦"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낯선 이를 통해
낯섦을 찾고
낯섦을 지향하는 것이다.
낯선 곳에 낯설게 다가간 나그네는
언제나 낯섦의 자세를 잃지 않고
시선과 말을 가장 낮은 자세로 맞춰야 한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는 항상 낯선 이의 모습으로 다가가야 한다.
돈황 여행의 백미라고 하는 명사산 여정!
돈황에 있는 대표 명소!
바로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명사산이다.
명사산은 돈황 남쪽으로 10km정도 떨어진 곳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래산으로
좁쌀보다 더 고운 모래와 돌이 바람에 퇴적되어 형성된 산이다.
심한 바람이 불면 거대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가벼운 바람이 불어도 마치 관현악 연주를 하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소리낼 명 (鳴), 모래 사 (沙) 자를 써서 명사산!
사실은 모래가 쌓여 형성된 진품 모래산이 아니라
원래의 산에 모래가 두껍게 쌓여 만들어진 산이다.
낮에는 기온이 너무 높아서 견디기 힘들니 오후 4시 이후에 가는 게 좋다고 해서,
저녁까지 든든히 챙겨 먹고 온 시각이 오후 6시!
가이드가 입장권을 끊으러 간 사이,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중국어
영어
일본어
그 다음이 한국어다!
한국의 높아진 위상에 으쓱해야 하나,
낯선 곳을 찾아 먼 하늘길을 날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한국인이 많은 여행지라는 씁쓸함을 맛봐야 하나...
한국어로도 안내가 워낙 잘 되어 있어
여기서는 중국어를 몰라도 어려움이 없겠다.
드디어 입장권을 손에 들고 명사산으로 입장을 하는데...
입장료가 120위엔?
우리 돈으로 2만원 정도!!!
꽤 비싼 편이다.
명사산에 들어서니,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긴다!
드디어 실크로드의 대상 차림새를 두 눈으로 보게 되는구나!
거대한 모래산 아래로 낙타 타고 가는 사람들~!
그 옛날 실크로드 상인들이 저런 모습이었겠지?
잠시만요~!
저 김작가, 명사산 배경으로 인증샷 좀 찍고 갈게요!!! ㅋ
어때요?
사막의 베두인족 여인 같나요?
그런데 이곳엔 특이한 "대여소"가 하나 있다.
신발에 모래 들어가는 걸 방지하기 위한
모래 침투 방지용 발싸개 대여소!
뭘 이런 것까지??
했더니
가이드 왈~!
"이거 착용 안 하시면 한국 돌아가서도 석달 열흘 동안 양말이랑 신발에서 모래 떨어질걸요??"
그래서 군말 않고 착용했다.
대여비는 30위엔이라고 했으니,
한국돈으로 4000원 정도!!
신발 위에 신고 발목에서 한번 조여주고,
무릎에서 한번 더 묶어주어야 한다.
주의점은 세게, 무조건 세게 묶어야 한다는 것!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헐렁하게 묶었다간 주르륵~ 흘러내려 모래 침투!
그렇게 되면 비싼 (?) 돈 주고 대여한 보람을 잃게 된다.
이렇게 해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무장 완료!!
어쩌다보니 모자, 마스크, 발싸개가 깔맞춤이 되어버렸다.
발싸개의 색깔을 미리 알고 준비한 것처럼...
사막에 요런 발싸개가 있다는 건 현장에 가서 알았다.
다들 야무지게 발을 싸매고 떼강도의 포스를 장착한 채 사막으로 달려갈 준비를 끝냈는데,
모래를 밟기는 커녕 전동차를 타란다.
첫 코스인 월아천까지는 조금 걸어야 하는데,
더운 날씨에 모래 위를 걷는 건 여간 힘든게 아닐거라며...
완전무장한 사람들은 모래 위를 걷고 싶어 발이 간질간질한 표정들이다.
전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나의 카메라 셔터는 쉴 틈이 없다.
눈 앞에 펼쳐진 이런 광경을 어찌 놓칠 수 있으랴!!
이 더운 날씨에 모래산을 비몽사몽 오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힘들겠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관객에겐 이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힘들게 올라가기만 하면,
내려올 땐 엉덩이 깔고 쭈욱~ 미끄럼 타듯 내려올 수 있을 것도 같은데...ㅋ
엉덩이에 불나려나?
하긴, 이곳의 모래는 인체와 마찰하면 불꽃이 튄다고 하니...
자세히 보니 저 모래 위에도 계단이 있다.
누군가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듯한...
저렇게 계단이라도 없다면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으며 산을 오르는 게 중노동이 될 듯!
마침내 우리의 1차 목적지, 월아천에 도착했다.
인터넷이나, 그림엽서, 여행 잡지를 통해 수없이 훔쳐보고 동경했던 풍경!
수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의 바탕 화면으로 책상 위에 들어 앉혔던 그림!
후끈한 사막의 열기를 더하고 강렬한 햇살을 머리 위에 얹은 채로
드디어 내 눈앞에 실물로 나타났다.
월아천은 명사산 안에 있는 오아시스이다.
폭 50m의 연못이 남북으로 150m 정도 초승달 모양으로 뻗어 있는 호수!
제일 깊은 곳은 수심이 5m!
그 옛날, 사막을 횡단했던 이들에겐,
이 작은 오아시스가 바다만큼의 부피로 와 닿았으리라...
월아천의 발원지는 돈황 남쪽에 솟아 있는 곤륜산맥의 눈 녹은 물이 만든 "당하"라는 이름의 강이다.
이 물이 지하로 흘러 비교적 저지대인 이곳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최근들어 당하와 월아천 사이가 끊어져
지금은 인공적으로 물을 대고 있다고...
매년 광풍이 불어도 이 곳만큼은 좀처럼 모래에 덮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게 모래산에 둘러싸여 수천년을 이어내려오며
한번도 마른 적이 없다니...
기특하면서도 괜히 고맙다.
이 곳의 수맥이 끊긴 것도 지구의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금은 옆에 누각을 세워 오아시스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는데...
불교 사찰 형식을 하고 있는 명사각(鳴沙閣)이다.
명사각이 불교식 건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이 곳 월아천의 탄생 설화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 이 곳에는 뇌음사(雷音寺)라고 하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는 석가모니가 하사한, 세상의 악과 질병을 치유하는 성수(聖水)가 있었다.
어느 날 외부에서 악마가 나타나 이 성수를 없애버리려고 끊임없이 모래를 퍼 부었으나
오히려 넘쳐나 지금의 월아천으로 커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명사각의 경내에는 월천관음상(月泉觀音像)과 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이 있지만
사찰이 정부 허가를 받기 어려운 중국에서
정상적으로 허가 받은 사찰인지는 알 수 없다.
월아천(月牙泉)은 이름 그대로 반달 형태의 연못이다.
영어로는 "Crescent Lake"!
물 속에서는 어린 치어들이 언제 이 물이 말라버릴지에는 전혀 아랑곳없이
그저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다.
바람이 잠시 쉬어가기라도 하면 물 위에 투영된 명사각의 그림자가
흡사 꿈 속의 아스라한 환영이 되어 신비스럽기까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모래산!
그 안에 소담스럽게 품고 있는 작은 오아시스!
그리고 그 오아시스에 비친 그림 같은 누각!
여기가 사막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런 모습은 절묘한 기적이다.
스며드는 수량보다 증발량이 월등히 높은 이 땅에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현상!
불과 얼마전까지 수천년동안 잠시도 마르지 않았다니...
그 어떤 흥분이 밀려와 셔터를 누르는 손이 잠시 떨렸다.
이곳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난,
화룡점정일까, 아님 옥의 티일까! ㅋㅋ
월아천 옆으로 낙타 두마리가 있다.
멀리서 역광으로 봤을 땐 진짜 낙타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아저씨가 외계어로 뭐라고 열변을 토하는데,
아마도 낙타 타고 사진 찍으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진짜 낙타들이 수백마리나 있는 이곳에 가짜 낙타를 갖고 뭘 할 수 있을까...
아무리 가짜 낙타지만,
낙타털도, 그 위에 놓여있는 안장도,
너무 덥게 느껴진다.
그 누구도 이 가족의 영업에 동조해주는 이가 없는 가운데,
낙타는 주인장의 아들인듯한 아이의 장난감으로 전락해 있다.
나머지 가족들은 모형 낙타가 만들어주는 작은 그늘에 의지해 일몰 전의 태양을 잠시 피해있는데...
영업이 안되는 그들에겐 짜증일테지만,
멀리서 온 나그네에겐 그저 한가로운 사막 풍경일 뿐이다.
눈 밭을 걸어갈 땐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언젠가 뒷사람의 길이 될지니...
하지만 사막에서는 조금 달라야 한다.
사막을 걸어갈 때는 네 멋대로 가도 좋을지니,
잠시 후 바람 한번 불면 내가 걸어온 길을 전~혀 알 수 없으니...
명사산에 오르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아마도 일몰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리라.
명사산까지 와서 일몰을 보고 가지 않으면
다녀갔다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얼른 서둘러야 하리라.
모래산 너머로 바라보이는 해넘이 풍경!
한번도 본 적이 없어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나저나 모래 위를 걷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다리엔 이미 피로가 한가득 붙었다.
일몰구경에 앞서
나를 명사산 위로 데려다 줄 낙타를 만나러 간다.
이곳 명사산에서 나를 태울 영광을 안을 운좋은 낙타는 누가 될까...ㅋ
무엇인가를 탄다는 것은 항상 멀미를 동반한다.
멀미가 무엇인가, 바로 낯섦에서 기인한 것이다.
항상 새로운 도전엔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바로 그 두려움 때문에
여행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사막 속에서 만난 낙타로부터 내가 멀미를 할지,
아니면 불행히도 낯선 이방인을 태운 낙타가 멀미를 할지,
두고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