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생.

암컷.

이름 : 사챠(Sacha)

내가 공원에 도착하고 받아 든 A4용지 첫장에 씌어진 내용이었다. 사챠는 이 공원에 있는 4마리 퓨마중 가장 어린 퓨마로 남자를 무서워(혹은 싫어)한다고 했다.

우리는 각각 한마리씩의 퓨마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나는 질과 함께 이 사챠를 돌보게 되었고, 민영은 프랑츠 할아버지와 함께 루나를, 권이는 넬슨과 함께 리슈를 담당하게 되었다. 다른 또한마리의 퓨마인 심바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스튜어트 아저씨와 크리스가 담당하고 있었다.

전날 정글에서 클라라와 함께 내려오는 질을 보며 잘생긴(?) 정글 보이 - 마치 할리퀸 로맨스 소설 속에서 시골같은 곳에서 사는 어느 머리카락이 긴 야생의 소년? 이미지랄까... - 인줄 알았는데, 이미 나와 사챠를 돌본다는 점에서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길은 여자사람이었다. 헉! 미안, 질...

암튼 나는 질과 클라라를 따라 정글로 향했다.

이제 새로운 날이 밝았고 우리의 진정한 정글 생활 첫날이었다. 질, 클라라와 함께 처음으로 정글에 들어갔다. 우리까지 가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정글 입구에서 우리는 길쭉한 풀들을 한움큼 뽑아 들고선 우거진 나무 사이로 쓰러져있는 나무를 넘고 개울을  건너 우리에 거의 도착할 때쯤, 질과 클라라가 먼저 큰소리로 사챠에게 인사를 하며 나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했다.

 
"Hi Sacha~"
"Hi Shchi~"
"Here's your new friend"

드디어 Cage 가까이 도착해 퓨마를 보았다. 생각보다 크다. 1살정도 되었다길래 큰 고양이 혹은 작은 강아지 정도로 생각했는데 조금 큰 개만큼 컸다. 질과 클라라가 사챠에게 인사를 하니 고양이가 내는 모터소리(그릉그릉)를 내며 우리를 감싸고 있는 철조망 쪽으로 다가왔다. 철조망 사이 구멍으로 손을 넣고 질과 클라라가 하는 것처럼 용기를 내어 쓰다듬어 주었다.

"아마 너가 유일하게 퓨마를 만질 수 있는 시간일거야."
 

아직 어린 퓨마라 사람에게 다가가는데 자칫 사람이 다칠 수 있어서 그런다고 했다. 정글 입구에서 뽑아온 풀들을 하나씩 집어 사챠에게 주었다.  풀을 먹는 퓨마라니...이런...식성도 까다롭게 사챠는 풀 가장 끄트머리 부분만 먹고 노랗게 변한 풀은 싫어한다고 했다. (까다로운 아가씨군...^^)

사챠가 어느 정도 풀을 먹고 난 후 클라라와 질이 합동작전을 펼치듯 퓨마를 우리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 위해 신속히 움직였다. 클라라가 우리 안으로 들어가 사챠가 문 쪽으로 나오길 기다렸고 나와 질은 문 밖에서 사챠를 유인했다. 클라라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선 클라라가 우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사챠를 바깥으로 최대한 빨리 유인해내야 했다.

사챠는 언제나....이렇게 잠을 잔다. 움직이는 것을 너무 싫어해...ㅋ

클립을 채우고 드디어 클라라가 사챠의 앞쪽에서 질은 뒤쪽에서 걷고 나는 질의 뒤를 따라 산길을 걸어갔다. 잠시 걸으니 파란색 노끈이 매어진 곳이 나왔다. 그 파란색 끝에 클립을 채우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클라라는 사챠가 물을 싫어하고 움직이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고 했다. 그냥 가만히 있거나 잠자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잠시 후 질은 다른 러너와 트랙을 보여주겠다면 일어섰다. 질을 따라 산길을 걸으며 러너와 트랙의 위치를 보았지만 사실 기억할 수 없었다. 내 염려를 알았는지 질 역시 오늘 다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며 걱정을 덜어주었다. 다시 원래의 러너로 돌아와 맥스(인형)과 공을 던져주며 사챠와 잠시 놀아주었다. 공을 튕기며 사챠가 움직이도록 유도했지만 이내 힘든지 주저 앉아버렸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우리도 준비해 간 책을 펼쳐 들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워낙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챠기 때문에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잠시 후 사챠를 데리고 또 다른 러너로 이동했다. 아까 걸어왔던 길을 따라 나무에 표시된 것을 보며 걸었는데 얼마 걷지 않아 사챠가 주저 앉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겨우겨우 사챠를 달래 걷다보면 또 다시 그자리에 앉아버리고...그 트랙 경로가 조금 힘들었는지 숨을 가빠하며 마치 토할 듯 ‘컥컥’거리기도 해 걱정이 될 정도였다. 사실 조금 가파른 듯한 트랙이었지만 나도 약간 숨이 찰 정도인데...이런 퓨마 처음이야..ㅋ

도착한 새로운 러너는 훨씬 컸다. 사챠는 오느라 지친 탓에 그곳에 바로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느라 당췌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역시 다시 책을 꺼내 들고 각자 독서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어려운 영어로 된 책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혹시나 해서 들고온 팔찌를 만들기로 했다. 매일 이런 시간이 반복된다면 수십개는 족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점심을 먹으면 된다는 말에 싸가지고 온 빵을 먹고 다시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Sacha에게 Max와 공을 던져주며 놀아주었지만 그닥 오래가지 않았다.
 

사챠가 싫어하는 물...그래서 물 있는 곳을 지날때는 항상 긴장 또 긴장...

사챠에게 가는 길....

귀가 쫑긋...귀여운 공주님...^^

사챠가 잠이 든 듯 조용한 가운데 벌레들 날아다니는 소리와 새들이 울어대는 소리만 있는 조용한 정글 속에서 어느새 질과 클라라는 잠이 들어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나는 가지고 온 해석 안 되는 영어책을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내일은 좀 더 팔찌 만들 것을 가지고 와야겠다.
 

정글 속은 벌레들이 징글징글하게 많다. 아마존의 눈물 촬영팀이 벌레들로 고생을 했다는데 진심으로 공감이 간다. 온몸이 벌레에 물려 가려운 곳 투성이었다. 클라라는 너무 많이 물려서 온몸이 아주 빨갛게 변했는데 왠지 멀지 않은 나의 모습 같다.

클라라의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카메라를 들고 와 사챠의 사진을 남겼다. 일주일 쯤 지나면 카메라를 들고와도 된다고 하니 나도 그때쯤 들고 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질이 우리 청소하는 것을 알려주겠다고 해 다시 우리로 향했다. 더러운 것은 치우고 먹이통과 물통을 소독하고 물을 길어다 넣고 사챠가 잠자는 곳의 짚도 뒤집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돌아와 잠시 또 독서의 시간을 갖다가 사챠를 우리로로 데리고 왔다. 아무래도 마지막 날인 클라라는 사챠와의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눈물이 글썽였다. 한달 정도 함께 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이렇게 나와 사챠의 첫만남은 끝이 났다. 사뭇 긴장된 시간들이었지만 Lazy Sacha라 움직임이 거의 없는 탓에 긴장을 덜 수 있었다.

트위티와 장난할때도 누워서...^^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정글을 빠져 나와 근처 냇가로 향했다. 차가운 냇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려니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아마도 오래 전 사람들도 이렇게 냇물에 몸을 씻고 냇물을 길어다 물을 마셨겠지...수백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듯 하다. 보름간의 정글생활이 기대되는 하루다.

<뽀너스 컷>

요다와 닮은 사챠를 공개합니다...^^;;;;;;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