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이까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었고 그동안 너무나 배우고 싶었던 팔찌 만드는 법까지 익히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이제 나의 목적지는 나스카.

세계 일주를 계획하고 남미 여행을 알아보면서 정해놓은 몇 곳의 장소 중 하나였던 이 나스카 라인은 이전부터 과연 진짜 외계인의 소행일까하는 의문을 가져다 준 그런 곳이었다. 나스카 라인과는 조금 다르지만 미스테리 써클 역시도 2009년 서태지의 보령 미스테리 서클 자작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분명 외계인의 소행이다!!라는 생각이 매우 강했는데 그 사건 이후, 어쩌면 사람이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스카 라인은 지금처럼 GPS라던지 첨단장비가 발달하지 않은 수백년 혹은 수천년(?) 전에 형성된 것이기에 또 그냥 인간이 만든것이다라고 결단 내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무튼 애시당초 여행을 계획하며 꼭 보고 싶은 것중 하나가 바로 이 나스카 라인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나와 동행을 했던 은진이와는 잠시 헤어져 쿠스코에서 만나기로 하고 이까 시내로가 나스카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2009년 보령 미스테리 서클. 서태지 作>

이까에서 나스카까지는 약 2시간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옆동네 가는 느낌이랄까?ㅋㅋㅋ(남미에서 여행하다보면 20시간 이상씩 버스로 달려야 하는 구간이 많기 때문에 2시간은 그냥 애교로 넘길 수 있는 시간이고 6시간쯤 가면 옆동네 간다...요런 느낌, 그리고 12시간정도 타면 아...한잠 자고 일어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스카 시내에 도착해 일단 그날 바로 쿠스코로 가는 저녁 버스 티켓을 샀다. 어차피 나스카 라인만 보면 나스카에서의 볼일은 딱히 없기 때문에 굳이 이곳에 오래 머물 까닭이 없었다. 차라리 하루라도 일찍 쿠스코에 가서 고산에 적응하는게 더 낫지 싶다. (어차피 적응할 필요도 크게 없지만 말이다.)

버스에서 내려 바로 앞쪽에 있는 Cial버스 회사에서 쿠스코로 가는 티켓을 살 수 있었다. 다른 버스회사도 많았지만 시설 대비 가격이 저렴한 편인 버스회사가 Cial인데다 아직 좌석을 산 사람이 없어서인지 무려 앞좌석이 비어 있는게 아닌가!!!냉큼 앞 좌석을 골라 바로 구입 완료.

직원에게 얘기해 버스 사무실 안쪽의 가방 보관소에 가방을 맡기고 작은 가방만 등에 메고 길을 나섰다. 이까에서 그리고 오는 길 내내 나스카라인 경비행기를 타야 하나 고민을 엄청 했는데 최종적으로 내린 결정은 타지 말자였다.

나의 고질병 멀미때문이기도 했지만 일단 가장 크게 발목을 잡은건 바로 나의 비행기 공포증 때문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엄청 신기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심한 것은 아니지만 약한(?) 비행기 공포증이 있어서 매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약한 패닉 상황에 빠지기도 하는데, 이 경비행기 자체가 흔들림도 심하고 불과 몇개월 전, 사고로 6명이 죽었다는 얘기를 접했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 (세계 일주를 하며 한국을 떠난 순간부터 한국에 돌아오기 까지 총 19회에 걸쳐 비행기를 탄 것도 정말 용한 일이었다. 게다가 고향이 제주도라 어릴때부터 최소 60회 이상은 비행기를 탔는데 말이다.)

이런 이유로 경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한 나는 두 종류의 문양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가기로 했다. 마침 버스터미널에서 내가 경비행기를 탈줄 알고 나를 기다리던 삐끼 아저씨에게 맛있고(Delicioso), 분위기 좋고(Rico), 저렴한(Barato)한 식당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지도를 주겠다며 따라오랜다. 뭐 어차피 경비행기 안 탈거라는데도 상관없다며 버스 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여행사로 나를 데려갔다. 작은 명함 뒤에 그려진 작은 약도를 보여주며 어느 지점을 표시해주고는 거기가 괜찮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작은 노트를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그 여행사에서 경비행기 투어를 한 사람들이 남긴 일종의 방명록...ㅋ

님아…나 경비행기 투어 안 한다니깐!!! 그냥 혹시나 싶은 마음에 한국어를 찾으니 몇 명이 다녀갔나보다. 뭐 사장님 친절하다고 강추를 하고 있는데...내가 보기에도 이 사장님 참 착하시다.(삐끼가 아니라 진짜 사장님이었다)  사짜처럼 보이지는 않고 하지만 그래도 사장님 경비행기 투어 안해요. 죄송^^;;

어차피 하지도 않을거라 가격도 안물어보고 가겠다고 일어서니 사모님이랑 손까지 흔들면서 나를 배웅해주셨다. ^^

사장님이 알려준 식당으로 가보니 겉으로 보기에도 딱 여행자용 식당. 흠...지금까지의 경험상 저런 식당은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 나와있는 메뉴판을 보니 역시나...비싸다.

어차피 여행중 음식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는 성격이라 근처에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간단히 시켜 먹고는 버스 출발시간에 맞추어 터미널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 오래 타지 않고 얼마 뒤에 버스 기사아저씨가 나를 불러 여기가 나스카 라인 미라도르라며 어느 휑~한 사막 한가운데 나를 내려주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도로 건너편 길에 놓여있는 쇠로 만들어진 송전탑도 아닌 암튼 엄청 부실해보이는 전망대가 놓여있었다. 새끈한 빌딩까진 바란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정도 일줄은...

올라가는 비용 2솔을 내고 다리를 후덜덜 떨어가며 전망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바닥에 새겨진 어떤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전망대가 높다하지만 그래도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모양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무슨 강물 흐르는 모양인지 뱀모양인지...깊게 패어진 자국이 보였고 그 옆에는 병아리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이게 그 미스테리한 나스카 라인이라는 거지??

안타깝게도 미라도르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은 그 두개가 전부였다. 왕복차비+전망대 입장료 총합 6솔에 이정도면 괜찮지 뭐…하는 생각을 하며 위안삼았지만 좀 많이 아쉬웠다. 그렇다고 경비행기는 타고싶지 않았다. 돈때문이 아니라 무서워서...

바람이 너무 세게 부는지라 더 볼것도 없고해서 올라간지 얼마 되지 않아 그냥 내려왔다. 밑에 팔고 있는 자료들을 살펴보니 내가 본 것이 병아리가 아니라 손모양(Hand)이고 뱀모양이 아니라 나무(Tree)라고 했다. 그외에도 원숭이, 거미, 외계인 등이 이 사막 지역 곳곳에 있다고 했다. 아...그렇구나...

사진들을 보며 그리고 또 전망대 위에서 그 모양들을 보며 ‘왜 이런 모양들을 만든 것일까. 진짜 외계인의 소행일까 아니면 고대인들이 정말로 외계인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일까’ 하는 의문점이 꼬리를 물고 내 머리속에서 복잡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거슨 바로 판 아메리카 하이웨이>

몇몇 학자들은 고대인들이 어떤 종교적 의식을 행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했고 일부 미스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외계인이 만든 문양이라고도 했으며 어떤 사람은 나스카 라인이 새겨진 모습을 보면 마치 공항같이 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 모두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거니와 이에 대한 문서나 자료가 남지 않아 더 추측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정확한 문양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곳의 기후 덕분이라고 했다. 연간 강수량이 0~23mm라고 하니 연 강수량 1300mm가 넘는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엄청 건조한 지역인데, 그러다보니 비에 의한 유실이 거의 없어 가능한 결과라 했다.

그런 복잡 미묘한 생각들이 뭉쳐진 실타래처럼 내 머리속 안에 가득 채워진 상태에서 그 미라도르를 빠져나와 미라도르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언덕을 향해 올라갔다. 그 언덕 위에서도 나스카 라인을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사막 한가운데라 거리를 가늠해볼 수있는 어떠한 지표도 없어서 어림잡아 눈으로 바라보기엔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걸음을 옮겼는데 도착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걸어가야 했다.

미라도르와 언덕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황량한 사막과 그 사이로 난 2차선의 도로가 전부였다. 간혹가다 지나가는 트럭들 덕분에 이곳이 지구라는 생각을 잊지 않게 했다. 아마 그마저도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 내가 화성(Mars) 어딘가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진짜로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 맑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얇은 구름들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은 살을 콕콕 찌르듯 따가웠고 도로 위에 피어나는 아지랑이는 머리를 띵~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막 안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에 사막 모래들이 회오리처럼 날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도로에 관한 안타까운 사실이 있는데, 애석하게도 바로 미국 알래스카에서 캐나다를 지나 이곳 페루를 거쳐 칠레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거리의 고속도로인 판 아메리카 하이웨이를 나스카 라인 중 도마뱀의 허리부분 위로 지나가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 도로를 만들 당시 여러 단체에서 항의가 있었지만 자본의 힘으로 결국 이렇게 개통되었다는 것이었다. 수천년일지 수백년일지 모르지만 그 오랜시간을 훼손없이 버텨온 이 나스카 라인이 결국은 자본의 힘에 정복 당했으니...그저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사실 이 얘기가 남 얘기만은 아닌 것이 개발을 이유로 어떤 개인의 사욕을 위해 나라를 파헤치고 절단시키고... 이런 일이 우리 주위에서 발생하고 있다. 뉴질랜드 여행 당시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 하기 위하여 직선으로 도로를 만들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따라 도로를 만들어 한참을 돌아가게 한 도로들이 떠오른다. 도로 하나를 만들기까지도 수많은 토론과 논쟁을 거쳐 만드는 그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었는데, 이 하이웨이를 보며 조금이라도 뉴질랜드 사람들의 정신을 배워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언덕 위로 올라갔다. 별로 높지 않아 금방 올라갈 수 있었지만 사실상 그 곳에는 어떤 문양의 나스카 라인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오직 메마른 사막 땅이었다. 물론 그곳에 전망대에서 보았던 문양처럼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는 직선과 같은 선들이 그 주변 곳곳에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역시도 그 문양의 일부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꽤나 먼 길을 걸어오는 데 비해 아무것도 없어 허망하긴 했지만 애써 나스카 라인의 현장에 발을 디뎠다는 것으로 됐다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다시 큰 길로 나가 지나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걸어올 당시만 해도 수많은 버스나 트럭들이 지난 갔었는데, 막상 또 기다리려니 어김없이 오지 않는 버스들...몇 대의 트럭이 지나갔지만 트럭은 알 수 없이 불안해서 손을 흔들며 먼저 보내고 이윽고 지나가던 버스 한대가 멈춰서 나를 태워주었다. 요금은 올때와 같은 2솔.

다시 돌아온 나스카 시내...버스 시간이 저녁이라 그때까지 할일 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침 버스 회사 근처에 있는 바에 들어갔다. 손님도 아예 없고 소파도 있고...콜라 한병을 시켜놓고 저녁까지 머물기로 했다. 비록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지만 마침내 버스를 탈 시간이 다가왔다. 편안한 제일 앞자리에 앉아 드디어 마추픽추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되었다. 

<오픈캐스트 구독하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