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날씨가 좋아서 이제 드디어 날씨의 여신(?)이 나를 향해 미소짓는 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일어난 순간 나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침 일찍 까하스로 가자고 결심했는데 밤새 비가 내려 온 도시가 칙칙하게 다시 가라앉아 있었다.

역시나 날씨 좋은날 질러야 하는건데 살짝 게으름을 핀 결과가 이거라니...더 일정을 늦추고 기다리면 물론 날이 좋아지는 때도 있겠지만 그냥 빨리 페루로 넘어가야 겠다고 생각해 마트에 들러 이동을 위한 음식등을 사고 호스텔 안에서 여유를 부리다가 느지막히 체크아웃을 했다. 숙소 앞에 있는 버스를 타고 다시 쿠엔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쿠엔카에 도착하는 날 급하게 오느라 미리 알아보지 않아 몇시에 정확히 버스가 있는지는 모르고 일단 터미널로 출발했다. 숙소에 앉아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할까 고민을 하던 중, 페루 완차코란 곳에서 서핑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일단 완차코를 가기 위해서는 피우라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페루행 버스를 알아보았다. 9시에나 버스가 있다고 했다. 혹시 몰라서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4시...분명 6시에도 버스가 있는 걸로 인터넷으로 확인했는데 거듭 확인해보아도 9시밖에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9시 피우라행 버스 티켓을 사고 버스회사 사무실에 나의 거대한 짐들을 보관해두었다. 작은 가방과 노트북만을 들고 터미널 중앙쪽에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된 곳에 자리잡고 앉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둘러 페루 완차코 서핑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 어느 블로그를 통해 완차코보다 만코라가 초보자가 서핑을 배우기 훨씬 수월하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이런...

지도를 꺼내놓고 확인해보니 피우라 가기 전 툼베스 다음에 만코라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가는 길인듯 싶어 여행사로 가서 물어보니 만코라에 들린다고 했다. 훨씬 덜 가는 거리인데도 차액에 대해서는 환불해주지 않았다. 일단 피우라에서 만코라로 일정 급선회...

혼자하는 여행이고 일정을 따로 정해놓고 다니는 게 아니라서 순간순간 내키는 대로 상황에 따라 일정을 변경 할 수 있어서 엄청 편했다. 물론 갑작스런 일정변경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혼자이기 때문에 버스 기사에게 만코라로 간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버스 좌석에 앉았다. 잠시 눈을 붙였을 쯤, 누군가가 나를 깨웠다. 밖을 보니 에콰도르 국경인듯 보였다. 기사는 나에게 지금 여기서 내리라고 한다. 엥? 잠결에 버스에서 내리니 버스에 실었던 짐을 모두 내려주는게 아닌가...?

난 여기가 아니라 만코라까지 가는 거라고 얘기했지만 여기서 있다가 수속을 밟으면 곧 다음 버스가 오니깐 기다리라고 했다. 표가 있으면 문제 없다는 얘기에 일단 국경 수속을 해야 했기에 짐을 받아 들었다. 버스는 곧 출발했고 난 어안이 벙벙해져 일단 에콰도르 국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불은 켜져 있었고 그곳에 있던 직원이 나에게 1시간만 기다리라고 하는것이 아닌가. 지금 아무도 없는데...그냥 나먼저 빨리 처리해주면 안돼나?

혼자서 덩그라니 국경에 있는 상황이 예전 방콕에서 캄보디아로 가던 국경에서의 일이 떠올라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직원을 불러 확실히 언제까지 기다리는건지, 버스가 나를 두고 갔는데 다음 버스를 내가 탈 수 있는지를 물었다. 직원은 내가 약간 불안해 한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걱정하지 말라며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뭐 이렇게 된거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최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한 버스가 도착했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내려 길게 줄을 섰다.

그때 직원이 먼저 나를 부르더니 내 여권에 먼저 도장을 찍어주었다. 일단 수속을 마치고 버스로 달려가 얘기를 했다. 버스 직원은 내표를 보더니 버스에 올라타라고 했다. – 아 다행이다.

버스에서 내려 수속을 밟던 사람들이 다시 올라타고 페루 국경으로 향했다. 버스에 올라 살짝 긴장이 풀려 선잠이 들었을 쯤 다시 사람들은 나를 깨웠고 페루 입국 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때 발생했다. 잠이 살짝 덜 깬 상태로 입국심사를 받던 중 그곳에 있는 환전상들에게 환전을 하다가 결국 사기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처음 나에게 보여준 환율은 내가 알고 있던 “USD 1 = 2.8 솔”로 불러주며 계산기를 두드렸는데 다음날 아침에 내가 받은 돈과 내가 준 달러를 계산해보니 “USD 1 = 2.1 솔”로 환전을 한 게 아닌가. 국경의 어수선함과 밤 시간이라 잠 덜 깨고 어리버리한 나를 노리고 은근슬쩍 이상한 환율로 계산된 금액을 나에게 준 것이었다. 다행히 위폐를 받지 않았으니 그나마 낫다고 위로를 해야 할까..

이게 그 유명한 국경 환전 사기단의 모습인건가. 무섭다... 암튼 국경에서는 조심 또 조심!!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몇시간 더 버스는 달렸고 버스기사가 만코라에 왔다며 나를 내려주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그 앞은 삐끼들로 가득했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마땅히 괜찮은 호스텔이 없었고 일단 해변가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나와 같이 버스에서 내린 외국애들이 말을 걸어왔다.

"너 정해놓은 호스텔 있니?”

“없는데..”

“그럼 우리가 예약한 호스텔 있는데 거기로 같이 갈래?”

“진짜? 그래...”

그 커플과 같이 뚝뚝을 타고 호스텔로 향하였다. 이 커플은 호주에서 왔다며 얼마전에 이곳에 있다가 에콰도르에 잠깐 여행하고 여기가 너무 좋아서 다시 오는 길이라 했다. 호주란 말에 반가워 나 역시 1년정도 호주에 살았다고 얘기하며 호스텔로 향하였다.

그 커플과 같이 오느라 뚝뚝 기사와 흥정을 하지 못했는데 3솔을 내는게 아닌가. 난 2솔이라고 알고 있었는데...다 도착한 상황이었고 호주애들도 3솔을 내는 상황이라 도무지 흥정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3솔을 내야했다. 역시...서양애들은 흥정이란걸 모르는군...ㅠㅠ 뭐 이 커플 덕분에 좋은 호스텔에 머물 수 있었으니...까짓것 봐준다. ^^;;

Point Hostel 이라고 하는 곳이었는데 해변과 붙어 있어서 저렴한(?) 리조트 분위기였다. 아침 일찍 도착한 상황이라 바로 체크인을 하지 못하고 잠시 짐을 내려놓고 기다려야 했지만 곧 직원이 와서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간단하게 빵과 커피 등의 아침도 제공해주어서 꽤 괜찮아 보였다. 커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도미토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직원도 영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어서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어서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중심 비치에서 좀 많이 떨어져 있어 해변을 따라 중심으로 가기 위해선 약 15분 가량 걸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상당히 괜찮은 호스텔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