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뻐근하게 저려오고 발도 점점 신발을 작게 만들고 있다

새벽부터 해넘이가 시작하려는 지금까지 발을 땅에서 떼어논 시간이라고는 비행기안에서가 전부이니 그럴수밖에...

산넨자카를 빠져나와 작은 골목길과 조금은 낡은 2차선도로를 번갈아가며 걷기 시작한다

기온으로 가기위해 지도를 펼쳐보아도 쉽게 찾아지지가 않는다

마침 배달일을 가시는 오토바이 아저씨가 길을 알려주신다

물론 전혀 알아듣지 못하지만 손짓을 보아하니 대충 언덕너머에서 왼쪽길로 가라는거 같다

"아리가또~아리가또~" 를 몇차례 던진후 다시 길을 떠난다

조금 더 길을 따라가자 4거리가 나온다

'음...여기서 왼쪽이란 말이었나? 거 이왕 알려주는거 잘좀 알려주지...' 하며 투덜거릴때

길 건너에서 오토바이아저씨가 바람을 따라서 건너온다

여기가 아닌가보다...

다음 골목까지 우리일행은 오토바이아저씨에게 끌려간 뒤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오토바이아저씨는 자신의 임무를 다 마치지 못했는지 다시 바람을 거스르며 길 건너로 사라진다

내심 투덜거린 내자신이 미안해진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쓰에요~~^^"

 
 해를 마주보고 걷는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수가 없다

피곤한 몸과 마음이 마치 뜨거운 라면에 올려놓는 치즈조각처럼 서서히 녹아내려간다

작아져버린 신발이 점점 걸음걸이를 우아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하루종일 매고다닌 가방마저도 햇볕이 녹여버린듯 가벼워졌다

얼마를 걸었을까?

기온거리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는듯 기모노를 입은 여학생을 만난다

조금더 기다렸다가 한컷 찍고 싶었지만

여기서 발걸음의 시동을 꺼버리면 더이상은 걸을수 없을것 같아서 속도만 간신히 줄인뒤 먼발치서 셔터를 누른다

왼쪽 골목길로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기온거리가 펼쳐져 있을줄 알았던 내 생각은 저멀리로 날아가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이번엔 기모노차람의 여학생 둘을 봤으니 아까보다는 더 가까워진걸까?

처음 일본여행을 왔을때는 기모노차림을 하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참 이상해 보이기도 했는데...

(순전히 우리나라에서 한복은 명절에만 입는-사실 명절에도 잘 입지않는-옷이라는 고정관념때문에...)

이제는 익순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내 카메라는 절대로 멈추는 법이 없으니 착한 녀석이다

드디어 기온거리에 들어선다

우아한 걸음걸이가 점점 4분의 3박자로 바뀌기 시작했을 그무렵이다

기온거리...

교토를 대표하는 환락가이자 번화가로 유명한 거리

길양쪽으로 보이는 옛모습 그대로인 2층의 목조주택들이 소담스럽게 늘어서 있는 거리...

조금 일찍 도착한 까닭에 환락가의 휘향찬란한 야경을 볼수는 없지만 거리에 들어서니 흡사 인사동골목이라도 들어선것처럼 느껴진다

큰길 양쪽으로 느티나무 뿌리처럼 뻗어있는 골목들에는 전통찾집과 교토 고유의 요리를 내어놓는 요정들이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었다

잠시만 쉬어갈까?

큰길 저 멀리에서 기모노차림의 마이코가 나타난다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셔터를 눌러대자 작은 골목으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듯이 총총거리며 숨어들어간다

난 카메라를 단단히 잡고 곧장 오른편 골목으로 뛰어들어서는 마이코가 지나갈것 같은 길에 미리가서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량이라도 된 듯한 우쭐함에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마이코들도 나의 선견지명을 경건하게 인정하기라도 하는듯 천천히 카메라 뷰파인더안으로 들어와 항복을 한다

"당신들이 이리로 올줄알고 미리 기다리고 있었어요~ㅎ"

"... ... ..."

말없이 지나치는 마이코는 나를 힐끔 보고는 무어라 알수없는 잔잔한 미소만 보낸 후 그렇게 지나쳐 버린다

마치 무언가 할말을 숨기 듯...

 어쨌든 작은 전과를 올린 나는 당당히 큰길로 걸어나와 전우들에게 승전보를 알리고 기온거리를 점령해 나간다 ㅎ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던 중에 간드러지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도대체 저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이바구를 늘어놓는지 궁금증이 온몸을 간지럽힌다

하긴 사람사는 세상이 어딘들 다르겠냐만은 홀쭉한 주머니가 나를 문앞에서 가로막는다

그러고보니 늦은 오전에 먹은 국수한그릇을 마지막으로 젓가락하고는 이별중이었다

다들 배가 고픈 모습들이었지만... 다들 여기서는 끼니를 때울 생각을 못하는것 같다

저녁식사는 도톤보리에가서 맛있는 (물론 저렴한..) 걸 잔뜩 먹기로 했으니까 조금더 참아본다

어느새 거리는 하나둘 켜지는 조명들과 잘익은 홍시처럼 붉어진 태양이 섞여서 은은한 저녁빛을 만들고 있었다

수없이 지나는 차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갈길을 가고

어느덧 상점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도 어찌나 많은지 가게앞을 지날때마다 어김없이 한명씩 따라붙는다

그러지 마세요~안그래도 배고푸다고요~

문득 한참을 걷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갑자기 길을 잃는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기억해내지 못한다

분명히 마이코를 만난후 골목을 빠져나왔는데 갑자기 기온거리는 막부시대로 돌아가있는듯했다

사방으로 보이는것들은 모두가 옛건물들 뿐이고 사람들도 어쩐지 마네킨처럼 보인다

어떤 영화에서 본 것처럼... 갑자기 시간이 멈춰서 버렸다

눈을 비비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본다

여전히 거리는 멈춰선채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두웠던 거리는 다시 아침을 맞이하기라도 한것처럼 환하게 밝아있었고 내 그림자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아이처럼 사방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두리번거린다 기웃거린다 그리고 멈춰선다

다시 그자리에 돌아온다

아닌가?

처음에 봤던 그길 같기도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한참을 바람개비처럼 어지러워한다

느닷없이 과거로 돌아간 나는 빠져나가는 길을 찾지못하고 그렇게 몇차례 더 같은곳에 멈춰서고 돌아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온다

마치 늦은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고 하얀 첫빛을 만날때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앞뒤로 흔들리는 몸을 간신히 바로 잡는다

어렴풋이 붉은 기모노의 마이코가 웃음지으며 내 앞에 다가오는걸 느낀다

나에게 무어라 말을 건낸다

"당신이 나를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만났다구요?"

난 멍하니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당신을 기다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나요?"

"... ... ..."

"기온의 거리에서는 당신의 시계를 믿지 마세요~"

미처 정신이 들기도 전에 마이코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다시 거리는 사람들과 차들로 분주해지고 있었고

이미 거리는 어둠이 내리기도 전에 대낮처럼 환해져 있었고 MP3의 볼륨을 올리듯 소음들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옛것과 지금의 것들이 공존하고 서로 섞인듯 그렇지 않은듯 부딪히는 거리

시간은 시계바늘의 그림자처럼 앞서가기도 뒤따라가기도 하는 거리

기온의 거리에서는 시계따위는 가방 깊숙히 넣어버리세요

기온의 거리를 사랑한 멍청한 시계일랑은 말이죠...

2010. 시계가 멈춰버린 오월의 늦은 날

         빠르게 바뀌는 변함없는 거리..기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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