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동피랑마을

뱃사람 말투(가능하면 표정도?)로 따라해보아요



항구라는 곳이 주는 무뚝뚝하고 거칠며 기능적인 정서

허나 강구안 중앙시장 뒷편을 조금만 오르면 만나는 동피랑마을은

뭔가 동화같은 비현실성과

한편으론 바닷가 마을의 일상이 잘 뭉뚱그려져있는 곳이었다



통영에서 박경리 생가와 청마 유치환 문학관을 훗날로 기약하게 했던

1박을 더 하는 한이 있어도 동피랑마을은 가야돼, 라며 빡빡 우기게 했던 이 곳은

사진찍기 좋은 예쁘고 오묘한 마을이라는 것 외에 이유가 더 있었다



'동쪽벼랑'이라는 뜻의 '동피랑'

통영시는 이 낡은 마을을 철거하고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2007년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동피랑 색칠하기' 공모전을 열어

전국 미대 학생 등 18개 팀을 선정해 이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게 한 것

이 때 그들이 들고 나온 기치가 '공공미술'이었으니

동피랑이야 말로 시민운동의 승리, 생활 속 예술의 현장인 것



이 동피랑이 이런저런 이유(일단 예쁘니까!)로 사람들의 발길을 잡자

결국 죄다 허물기로한 방침을 바꾼 통영시는 꼭대기 3채만을 철거하고 보존키로 결정한다

이 3채는 예전 충무공이 강구안을 보며 병법을 짜던 동포루 복원을 위한 최소한이었으니

관공서의 권력과 시민들의 여론이 적절히 타협한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알록달록 과감한 유채색의 벽화가 있는 동피랑마을은

그러나 이런 역사처럼 작위적인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서진 지붕, 녹슨 우체통, 벗겨진 페인트 등

통영 항구 윗동네 삶을 살고 있는 고스란한 흔적들과 어우러져

인간적인 아름다움의 나이를 먹고 있는 것이다



터무니없이 크고 터무니없이 탐스러운 붉은 꽃 한송이가

남해 바다 소담스럽게 자리잡은 항구를 바라본다

너, 소금기 실린 바닷바람에 조금씩 희미해지는 꽃

너울너울 붉은 잎 떨어뜨리는 대신 세월에 너를 벗어주는구나



여기서, 민소의 착한 여행 Tip!

"현지인의 일상을 존중하기"

언젠가 북촌주민이 "쓰레기버리는데도 모자를 뒤짚어 써야한다"는 푸념을 읽은 적 있는데

생활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이 많아지려면, 그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예의도 수반되어야 한다

신기하고 재밌다는 이유로 함부로 일상을 들춰서는 안되며, 혹여 인물사진을 찍고 싶을땐 정중히

예의를 갖춰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외국여행 다니면서 인물 마구 찍는 일은 삼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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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 동네 와서 시끌시끌 쓰레기도 버리고, 내 사진도 마구 찍는다면 얼마나 불쾌할까?



내게 붓을 쥐어주면 무엇을 그릴까?

꽃이나 바닷속, 천진한 아이들, 기하학적 무늬 등등 내 밑천없는 상상력 가운데

그러고보면 주민 얼굴을 대문보다 크게, 그것도 실사로 그린 전북 고창 돋음별마을의 아이디어란

얼마나 과감하고 쑥쓰러우며 또한 대단한지.

(그런데 나는 꼭 코끼리를 그리고 싶다는ㅎ)



그러고보니 요 벽화는

코끼리 아저씨와 고래 아가씨 피아노는 오징어 예물은 조개껍데기,라는 동요를 그린 것인데

대체 코끼리와 고래가 어떻게 혼인할 수 있느냐는 건 둘째치고

왜 고래 '아가씨'는 청년이나 총각이 아닌 '아저씨'와 결혼을 해야했을까 ㅋㅋ



어쨌거나 동피랑마을은

주례이신 문어아저씨마냥 흐느적흐느적 대며 잊고 있었던 추억을 얘기하기 좋은 곳이다

있지, 나 어렸을 적에 사람 머리를 보라색으로 칠해서 혼난 적 있어, 부터 더듬다 보면

'나는 얼마전까지 우란이랑 도라미가 아톰과 도라에몽의 여자친군 줄 알았다니까'

'뭐야, 여자친구 아니야?', '여동생들이래', '어머, 진짜?'

뭐 이런 깨달음(?)까지도 얻게 되는 것이다ㅎ



목요일 정오부터 토요일 밤까지의 짧은 여행

허나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비진도와 분주하면서도 아기자기한 통영,

저 먼 바다 경이로운 해금강까지 바쁘게 돌아본 이번 여행은

겨울이 아직 닿지 않은 남쪽 바다

그 늦은 가을 항구와 섬의 정취에 담뿍 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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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비진도, 그리고 2009년 가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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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7

Nikon d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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