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눈이 아닐수 없다.
색을 버린 어두운 산 그림자 아래를
잎을 떨군 마른가지위를
맑고 흰빛으로 곱게 덮어주는 눈...
그래서 겨울은 차갑지만 포근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그 겨울의 느낌을 화천에서 만났다.
화천에서 파로호와 평화의 댐으로 가는길에 만날수 있는 다리하나가
가는이의 발길을 붙잡는다.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일이다.
검은색 콜타르를 먹인 목재로 건설되어 꺼먹다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단다.
검은빛을 덮어주는 흰눈이 오늘은 우리보다 먼저 다리를 차지했다.
1945년경 화천댐 발전소가 준공되면서 세워졌던 꺼먹다리는
전쟁의 고통과 분단의 아픔을 이야기 하듯 늘 검은색이였는데~
흰눈으로 한번쯤 검은빛을 잊게 해주는 겨울이 반가울지도 모르겠다.
다리에서 바라본 세상도 오늘은 하얗고 평화로워 보인다.
가끔 찾아오는이들은 발자국 하나씩을 남기고 사라진다.
눈이 사라지면 발자국의 흔적도 사라지듯
시간도 강물도 이렇게 흐른다.
꺼먹다리를 지나 작고 낮은 산을 만났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봉우리가 되기 위해 가던중
이곳에서 멈춰 홀로 산이 되어 딴산이란다.
주변의 산들과 사뭇 다르게 기암괴석으로 우뚝한
그래서 그런 이름을 가질만도 하다.
딴산은 또다른 이름 하나를 더 가진다.
너른 강과 아름다운 풍경에 인공폭포까지 가진
딴산유원지가 되었다.
홀로가 아니라 더불어 즐거운곳이 되었다.
강은 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졌다.
봄이오면 이곳도 초록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고 깨어나겠지?
화천의 겨울은 계곡에서 절정이다.
곡운구곡의 아름다운 계곡은
각각의 이름을 가졌다.
그 계곡을 멀리서 가까이서 만나본다.
바위마다 꽃이 만발하다는 계곡...
맑고 깊은물이 옥색처럼 푸른 골짜기...
옥이 부서지는듯한 소리를 내는 여울이라 이름지어진 계곡도 있다.
고요의 겨울 계곡의 물소리는
더욱 깊고 아름답게 들리기만 한다.
와룡이 숨은 깊은물
밝은달 비치는 계수
층층이 쌓여있는 계곡의 바위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들을 가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1곡에서 9곡까지~
그 이름들과 풍경을 열거하지 못하더라도
그 겨울에 빛나는 작은 돌맹이 하나와 물소리는 기억한다.
그것이 계곡이 가진 아름다움이 아닐까?
계곡을 거슬러 올라 화악산에 이르면 산이 만들어낸 풍경을 또 만난다.
촛대바위는 정말 촛대처럼 우뚝하다.
골짜기의 어둠과 달리 바위끝에는 햇살을 담아
밝게 웃고 있다.
촛불처럼 말이다.
화악산은 전쟁당시 가장 격전지 중의 하나였으며
지금도 38선이 정상을 가르고 있다고 한다.
아픈 역사도 품고, 골골이 작은 풍경도 품고, 계절도 품고
그래서 넓고 깊은 인상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보는것보다 가까이서 만나보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곳이 있다.
그저 멀고 먼 곳이라 여겼던 화천이 내게 그러한 곳이다.
화천을 겨울에 만난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