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를 만나러 갑니다

- Frankfurt, 옛 부유층을 엿보다 -

나는 독문학도다,

라고 말하기 민망할 만큼 나는 독문학에 문외한이다;;

독어독문학과를 나왔음에도 독일어는 거의 말할 줄 모르고

전공수업 중에서도 내가 관심있었던 기호학이나 독일영화/광고/영상 관련수업만

쏙쏙 골라들었던 터라 독문학을 전공했다고 하기도 참 거시기하다.

하지만,

그래도 3년간(1년은 학부제로 독문과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어깨 너머로 배운 풍월은 있다고,

독일어권에 가면, 전혀 모르는 불어나 태국어 같은 것 보다는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에 처음 가게 되었을 때, 왠지 고향에 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2002년에도, 2003년에도 프랑크푸르트와는 인연이 오지게 없어서

여행루트에서 쏙쏙 빠지게 되었던 터라,

별 볼거리가 없는 곳이라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skip 한다고 해도

왠지 나는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었는데......

정말 특별히 볼 것이 없는 동네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곳에 괴테 할아버지가 숨쉬고 계시기에, 처음 프랑크푸르트에 방문하게 됐을 땐

괴테하우스에나 한 번 가보자, 싶었다.

누구의 생가, 라는 것이 나에겐 큰 의미도 없고 흥미유발도 되지 않는터라

대체로 생략하기 마련이었지만

암스테르담에서 별기대없이 방문한 안네프랑크 하우스가 의외로 감동적이었기에

이번에도 '생가'가 가진 매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Zeil 거리 멀지 않은 곳에 있긴 하지만, 조금 의외의 곳(적어도 나에겐) 골목에 있어서

표지판을 잘 찾아야 한다.

그 날은 비가오는 날이었다.

마치 비오는 날, 홍대 앞 카페에 들어서는 기분;

나는 이 간판이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더라 ㅋ

들어서면 우선 입장료를 내고 소지품을 맡겨야 하는데,

도무지 입장료로 얼마를 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검색해 보니 5유로 라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피아노와 객석이 있는 1층의 오디토리움을 지나

본격적으로 보게 되는 괴테의 생가.

그 중 처음 만나는 이 곳은 빛을 한가득 머금고 있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왼쪽이 정원으로 통하는 문.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 연결돼 있다.

비까지 내려서 그런지, 더욱더 운치 있는 느낌.

괴테의 가족들은 부유층이었다.

그래서 방이 무려 20개나 된다.

생가 역시 4층으로 되어 있는데, 구석구석 당시 부유층들이 썼겠구나, 싶은 소품들이 잘 정돈돼 있다.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각국의 언어로, 각 방의 특징을 설명한 안내문이 코팅된 종이로

마련돼 있는데, 하나하나 설명을 읽으면서 돌아보는 재미가 또 색다르다.

각 방의 명칭은 색깔로 구분해 놓았는데,

예를들어 yellow room, 이라든가 green room, red room 등이고, 그 방에 들어서는 순간,

'아, 여긴 무슨 방이겠구나!'라는 것이 감이 올만큼 색채가뚜렷하다.

색채의 특징과 함께 각 방은 '음악의 방'이라든가 파티와 손님맞이 방이었던 '북경의 방'등 그 쓰임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 부유층의 삶이라.... 신기할 따름.

3층에서 창밖으로 내려다 본 아까 그 정원.

가끔 괴테가 이곳을 거닐며 작품을 구상했을까.

내가 가장 맘에 들었던 방.

책들로 가득 차 있어서, 이곳이 정말 대문호인 괴테가 살던 곳이구나, 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한켠에는 괴테의 친필이 묻어난 종이들도 전시 돼 있고,

이 곳에서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고, <파우스트>를 완성했겠지,라고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

우연히 창밖을 내려다 보았는데,

아까와 같은 정원이 아니라,저런 현대식 건물과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나는 어쩔수 없이 21C에 있구나.

괴테가 살던 때에는, 이 창밖으로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4층까지 다 돌고 내려오면,

예외없는 기념품 shop.

반갑게도 한국어 안내책자가 판매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어설픈 폰트는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문을 지키고 계신, 괴테 할아버지.

나오기 전,

방명록에 나 역시 한 줄 남기고 왔다.

독문학도로서 의미있는 방문이었기에.....;

앞장을 몇장 주르륵 들춰보니, 방명록에는 역시나 한글이 많다;

뭔가 남기고 싶은 한국인들의 습성일까, 아니면 그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것일까.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프랑크푸르트 사람들은,

폭격을 피해 괴테의 유품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두었다가

폭격맞은 건물을 4년간 복구하고 유품들을 다시 옮겨와 지금과 같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직접 가 보면 알겠지만 이것이 몇 백년이나 된 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내부 보존이 잘 돼 있다.

독일인들의 괴테 사랑이 참 눈물겨운데,

우리는 어떻단 말인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괴테하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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