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대표 이미지를 설문조사를 한다면
아마 겐지스 강가에서 목욕하고 있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그 바라나시의 대표 단어를 떠올린다면
"삶과 죽음" "진짜 인도" "성스러움" 뭐 그런거 아닐까?
(진짜 조사를 안하고 순전히 내 머릿속으로 추측한 것이니 혹시 바라나시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알려주시길~)
그래서 바라나시에 관해서는 그 이미지로 인한 각종 억측 및 과장 루머가 떠돎과 동시에 많은 여행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있다.
나는 바라나시를 몇날 며칠에 걸쳐서 할일이 없어 심심해질때까지 머물었지만
어쩐지 바라나시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지 않아 미루고 미루었는데,
그 이유는 바라나시에 관해서는 지극히 좋지않은 이미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긴, 항상 내가 좀 무거워지는 곳이었다.
이상하게 다른 그 어떤 기억보다 내 몸과 정신이 무거웠던 사실만 남아있다.
왜? 왜? 특별히 안좋은일이 있었던 것도, 특별히 아팠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상하게 (반복) 어깨위에 머리위에 무언가 하나 떡하니 보이지않는 종잇장하나가 천근의 무게로 나를 짓누르듯이 온 몸과 정신이 무거웠었다.
이유가 뭣인가. 차근차근 되짚어보련다.
새벽 6시, 곧 동그란 해가 떠오를 것이라는 예고하며 붉으스름하게 하늘이 밝아질 무렵
가야를 떠났던 기차는 Kashi 라는 역을 지난다.
Kashi는 바라나시의 옛 이름으로 이 역을 지난 다는 것은 10분내고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Kashi 역의 또 하나의 이상한 의미는, 이 역을 지날때 여기가 어딘가~ 하며 밖을 보았을때,
드넓게 펼쳐진 강과 강의 양쪽에 세워진 고풍스런 건물을 보면서 마치 내가 인도에 온 이유가 단지 겐지스강을 보기 위해서였던 것 처럼 감동에 젖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바라나시에 도착하러 10분동안 달음질 쳐 가는 기차안에서
나의 마음은 겐지스 젖줄의 영험한 성스러움을 받아들일 만발의 마음가짐으로 무장을 하게 된다.
바라나시 정션 역에 도착하고...
기차역에 내려서 예의 지긋지긋한 흥정을 한 뒤,
싸이클 릭샤를 타고 메인가트 인 '다사수와메트'로 향했다.
(가트는 강과 육지를 연결하는 계단 같은 곳이며, 메인가트는 화장터와 황금사원 근처의 딥다 큰 가트입니다.)
이곳으로 숙소를 정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가고싶어라 하는 화장터나 황금사원시장이 가까이있고, 매일밤 잘생긴 브라만 청년들에 의한 제의식이 열리기 때문이다.
바라나시 정션 역에서 다사수와메트까지는 싸이클 릭샤로 30여분.
싸이클 릭샤는 델리에도, 아그라에도, 뭐 다른곳에도 많이 있지만, 바라나시에서 싸이클릭샤를 처음 타보게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이렇게 장시간 릭샤행은 바라나시가 처음이었고...
단돈 20루피에 흥정해서 가트로 가는 새벽길..
드디어 바라나시에 왔다는 설레임과 릭샤를 타는 흥미로움보다,
릭샤왈라의 얇디 얇은 다리가 안쓰럽다.
비록 나는 혼자 탔지만, 내 육중한 짐의 무게는 2인분의 무게를 차지하고 있었고
울퉁불퉁한 길 중간에 행여 장애물이라도 등장할라치면 어쩐지 내가 내려서 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오른다.
바라나시의 첫인상.
싸이클릭샤는 메인가트까지는 오토릭샤가 들어갈 수 없기에 어쩔수 없이 선택하는 교통수단이지만,
이 릭샤왈라에 대한 안쓰러움이 바라나시가 내게 주는 첫 무게감이 되기 충분했다.
꼬불꼬불 좁디 좁은 골목길에 소 한마리가 떡하니 느긋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의 소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얄미움을 넘어서 사람같은 표정에 흠짓 놀라기 일쑤다.
특히 바라나시의 소는 힌두교의 성지답게 주인장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
시장이든 숙소가는 길이든 좁은 골목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너따위가 여기에 왜 왔냐?" 는 식의 구도자나 수행자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당황보다 황당함이 느껴진다.
놀라운 길찾기 솜씨로 구불구불 숙소를 잘도 찾아간다.
바라나시에 오면 관광객을 그 어느 지역보다 많이 만날 수 있는데
특히 이곳은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좋나보다.
(물론 카주라호만큼 특별하게 좋진 않지만)
곳곳에 똑같은 알라딘 바지를 색색으로 차려입은 한국인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나 역시도 그 바지를 바라나시에서 샀더랬다. 80루피인가 100루피인가를 주고.
훗날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 내 바지의 곱디고운 색상을 부러워했더랬지...
바라나시는 섬유산업으로 유명한 지역이라더만,
곳곳에 펀자비나 사리, 그니까 인도 전통옷과 더불어
외국인들만의 인도 의상 알라딘바지를 색색가지로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물론 황금사원 근처의 미로 시장길에 들어가서 무사히 나올 자신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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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트에 도착하니 하늘이 뿌옇다.
날씨가 안좋거나, 매연이 심하거나...그런느낌이 아니라
뭔가 하늘에 약을 탄 느낌??
메마른데다 뿌옇고 육중한 느낌의 하늘을 맞닥뜨리면
혹시 그것이 실제는 청명한 하늘색이었다 하더라도
어쩐지 겐지스강의 황토색 물과 색깔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겐지스 강의 기운이 하늘을 덮고 그것이 다시 나를 감싸안는 듯
온몸을 죄어오는 듯한 몽롱함에 숨이 턱 막힌다.
누가 그랬다. 겐지스강의 기운이 너무 쎄서 바라나시에 가면 기가 약한 사람은 반드시 아프기 마련이라고
평소에 기가 그리 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강 근처에 오는 순간 숨이 막힘에, 겐지스강의 영향이 나에게도 미치나 싶다.
특히 겐지스 강의 진한 밀크티 색깔보다 더 진한 국물색은
"채도"라는 것을 뺄대로 다 빼서 -1000쯤 되는 것만 같다.
이런 겐지스강을 바라보며 짜이한잔 캬~들이키면,
내가 마시는것이 밀크티인지 겐지스 강물인지 헷갈릴때가 있다.
옆으로 살짝 이야기를 빼 보자면,
인도 사람들이 짜이를 아침에 먹는 필수 음료로 생각하는데는
이 겐지스강의 영향도 있다고 한다.
어머니의 강으로 불리는 겐지스강은 힌두교도들에게는 성스러움의 대명사이고
평생에 한번 반드시 거쳐가고 픈 성지이며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은 소망의 강이다.
근데 인도가 워낙 넓다보니까 가난하기 짝이없는 사람들은 평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곳이 되었고,
그래서 겐지스 강물 색과 비슷한 짜이를 마시면서 어머니의 강 겐지스를 그린다고 한다.
이말인 즉슨, 인도사람들 눈에도 겐지스 강물이 짜이색과 비슷하게 보인다는 건데...
목욕하고 들이키고 물떠가면서 원래 멀쩡한 강물색은 짜이색이 아니라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하는것 같다.
혹은 짜이색이기 때문에 괜찮거나...
뭐,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이니 여기서 목욕하고 들이키는거에 대해 혐오스런 감정이 떠오르는건 아니다.
다만, 저래도 괜찮은 걸까? 싶은 걱정이 살짝...
또 다시 옆으로 살짝 이야기를 빼 보자면,
겐지스 강이 성스러운데는 또 여지없이 신화가 하나 있다. 아니 사실 무진장 많다.
그중에 대표적인것은
신중의 신, 파괴와 재창조의 신인 시바신이
신에게 선택받은 종족(?)인 브라만 계급을 죽이고서는
죄를 감당하려 히말라야에서 수행을 할 때,
창조의 신 브라흐만이 겐지스강에서 목욕하면 니 죄가 씻길것이라 라고 충고하여
목욕을 하고설랑 죄를 말끔히 씻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겐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면서 자신의 죄를 정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겐지스 강가에서 목욕하는 모습이 인도의 대표이미지로 자리잡게되고,
그리하여 바라나시는 인도의 필수 관광 코스가 되었다는 것.
내게는 잘생긴 비 군이 니콘 카메라를 들고 폼나게 사진찍는 광경 때문에
기대되는 곳이기도 하였다.
어쩐지...이곳에 가면 그따구로 멋드러진 총각이 카메라를 들고설랑
나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지 않소? 하며 훈남의 아우라를 뽐내고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사실, 그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매우 적지만,
(그니까 잘생긴 여행자가 내 눈에 띌 확률)
적어도 매일밤 메인가트에서 이뤄지는 제의식에는
잘생긴 브라만 총각들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총각들은 바라나시의 유명대학인 힌두대학에서 제의식을 전공하는 친구들인데,
이곳에서 아르바이트 식으로 하는 제의식에 참여함에, 인물보고 뽑는것인지,
하나같이 잘생기고 늠름(?)하기 그지 없다.
이들의 얼굴만 봐도 시간가는줄 모르는 이 뿌자(제의식)는
그들의 얼굴이 아니더라도 몽롱하면서도 경쾌한 음악과 불길의식등으로 꽤 화려함을 뽐내기때문에
워낙 현지인과 관광객 및 관광객을 노린 장사치들에게 인기가 좋아
조금만 늦게가면 가까이보기가 힘들다.
내가 누군가? 그래서 열심히 명당을 찾아다녔고,
기어코 꼭데기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아주 상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관광객으로 가득찬 메인가트의 뿌자
뿌자를 구경하고 살짝 지루해질 무렵이면
가트 앞의 장사치들에게 꽃 접시를 하나 사서 초를 켠 뒤 강가에 띄워본다.
밤이 되어서 강물 색이 잘 보이지 않고, 나름 꽤 성스러운 의식이 펼쳐지고 있으며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몽롱한 음악에 세뇌되어서 인지...
이맘때쯤 되면 이 꽃불 하나에 소원을 진심으로 담아볼 만큼 겐지스의 영험함을 믿어보는 마음이 생겨난다.
아직 안 생겼다면, 해질녘쯤에 보트를 타면서 꽃불을 띄우면 진짜진짜 경건한 마음이 들 것이다.
해질녘에 가트로 나가면 아무 보트 왈라에게나 얘기해서 보트를 탈 수 있는데,
(물론 아무 보트나 타면 바가지 쓰겠죠!?)
이시각에 강가를 따라 내려가면서 보는 바라나시의 풍경은 정말 최고중의 최고다.
옛날 귀족들의 별장이었다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강가를 따라 쭉 나열되어 있고,
하나하나 개성을 가진 가트들에는 성스러운 소망을 담아 목욕하고 빨래하고 물마시는 사람들이 있어
기대하던 바라나시의 풍경을 맘껏 눈에 담을 수 있으며,
여기에 고즈넉히 해가 지는 노란 빛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
나는...두번의 바라나시 방문 기회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보트왈라들의 파업으로 인해...한번은 낮에 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낮에 뙤양볕 아래 그늘없는 보트를 타본 사람만이 안다. 그게 얼마나 아픔인지...--;;
바라나시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필수 장소...화장터도 빼놓을 수 없다.
화장터는 앵간하면 밤에 가는 것이 좋은데,
낮에 가면 일단 사람의 형체나 너무 여실히 드러나 충격받을 소지가 있으며
(충격을 안받는다 안받는다 해도...천에 싸여진 시체의 손가락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았을땐...
계속해서 그 이미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외상후장애를 겪기도 한다.)
인도사람들은 신과 만나는 시간을 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밤에 화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뿌자도, 결혼식도, 장례식도 밤에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황금사원 근처의 작은 음악회를 보고 늦은 시간에 화장터를 방문했는데...
괜슬히 싸움만 하고왔던 기억이 있다.
화장터에서는 카메라를 들이대서는 절대로 안되는데,
내가 적선을 요구하는 한 아저씨랑 왈가왈부하는 사이에
일행이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에 시비가 붙었고,
또 그걸 해결하느라 (혹은 도망치느라) 시비가 붙고...
그리고선 진짜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던 기억...
사실 화장터에 별로 가고 싶지는 않았었다.
다들 간다니까, 가야하니까 가본것일 뿐인데...
시체가 불꽃속에서 타오르면서 한낱 재와 연기로 변해 하늘과 맞닿아지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숙연해지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혹자는 죽음에 대해 초연함을 느끼는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더라...
그치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단순히 화장터 한번 구경했다고 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는건 큰 무리라고 본다.
삶과 죽음... 살짝 염세주의적인 내겐...특히 아무 도움 안되리라.
짐짓 진지하게 생각하는 척은 해보긴 했다만,
옆에 아무도 없었으면 표정관리가 잘 안되었을수도 있다.
내가 아직 덜익어서 그럴수도 있겠다...
화장터를 방문하고 나서야
나의 어깨와 머리를 짓누르는 무게의 정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건...사시사철 시체를 태우고 있는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 내 몸까지 감싸는...
말하자면 매연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몽롱하고, 아프고, 정신없고 그러지...
그러나 이곳 메인 가트를 벗어나면 이 무게감이 조금은 덜해진다.
힌두대학 교정을 둘러볼 수도 있고,
아씨가트라는 한적한 가트를 갈 수도 있고,
조금 멀리가서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을 했다는 불교 성지:사르나트를 방문할 수도 있다.
힌두 성지와 불교성지가 바로 옆에 있다는 아이러니를 잼있어하며
사르나트 근처의 한국 절 녹야원에서 맛난 밥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물론 밥먹고 시주를 하는게 예의지만, 한국에서도 절밥은 맛있는데, 인도에서 절밥은 오죽하겠어...!
(사르나트 이야기는 후일 다시 올리지요^^)
사르나트 유적에서
바라나시에 대한 몽롱하고 무거운 이미지로 인하여
인도에 있을때는 바라나시를 정말 좋아라하진 않았는데,,
다시금 생각해보니 바라나시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을
싫다는 고정적 관념으로 거부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바라나시마저도 그리우니...
그말이 딱 맞다.
인도는 그렇게 싫다가도 돌아오면 그곳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내게 인도도 그렇게 자리 잡아버린것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