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비행기 # 5. 인도에서 기차타기 Part ②

* 천국

인도에서 기차를 지대로 탈 줄 알면 어딜가든 이동은 두렵지 않아 하였다.

나는 2달여를 당연하게 기차를 타고 움직였는데, 워낙 저렴하게 살았던 지라 때론 숙소보다 기차가 좋을때도 있었다.

그치만 내가 탄 SL (2등석 침대칸) 칸이 명성보다 덜하다고 말하는건 아니다.

때론 바퀴도 지나가도, 때론 추잡한 성추행이 있기도 하며, 때론 자리가 없어 바닥에 엉덩이를 비비고 눈을 붙여야 하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묵었던 일부 숙소는 비슷한 만큼의 더럽기를 자랑함과 동시에 막혀있다는 두려움까지 안겨 줄때도 있었으니, 뭐 가끔은 기차가 낫기도 하다는 거다.

그리고 2등석 기차는 친구사귀기도 쉽고, 사람사는 재미난 일들이 간혹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긴 여정중에 딱 한번,

두배의 돈을 주고 에어컨 기차를 타게 된 일이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고깟돈이 얼마라고 내가 왜 주구장장 2등석을 탔었는지 아쉽기도 하지만,

또한 그때문에 단 한번의 뽀송한 에어컨 기차가 천국같은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공기부터 달랐다.

버블버블 하는 하X젠 세탁기 광고처럼 상큼함과 뽀송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공기가 물씬 풍긴다.

(과장이 심합니다.)

사람들이 외국인 따위는 흔한 인종에 불과하다는 듯한 눈빛을 힐끗 보낼때

여느 인도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무관심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락스에 소독을 했는지는 절대 알 수 없지만, 공기만큼 쾌적한 모포와 베개가 제공이 되고

더우니까 끕끕한 공기를 들여서라도 더위를 식힐까 말까 하는 고민따위는 할 필요가 없이

시원한 바람이 제공되고 창문을 아예 막혀있다.

기나길고 지루한 밤눈을 감았다 떠도

처음으로 잘잤다 기지개가 절로 나오는 그런 느낌.

나, 촌스럽게 에어컨 따위에 천국을 느꼈다.

* 전쟁

나! 티켓하나면 된단말이야. 제발. 쪼옴!!!

(어설픈 힌디와 영어를 섞어 말함)

급기야 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비켜주기는 커녕 큭큭대고 웃기만 한다.

여성을 위한 배려가 물씬 담긴 여성 전용 티켓 창구 앞에서

결혼만 하면 묘하게 산만해지는 덩치를 지니게 되는 습성을 지닌 인도 아줌마들에게 밀려

나는 전혀 배려받지 못하고 30분째 옴짝달싹 못했다.

그래. 전투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네팔에서 인도로 올때 넘어가려 했던 국경은 마헨드라나가드였으나,

네팔에서 흔하디 흔한 스크라이크로 인해 그곳으로 갈 수 없었다.

다시 갔던 길을 거슬러 소나울리 국경으로 돌아와 인도 고락푸르에서 열차를 타기로 했다.

아침에 출발한 버스는 유실된 길을 위태롭게 지나고, 폭우로 인한 폭포를 가르며 달리고 달려 소나울리까지는 왔으나, 안타깝게도 고락푸르까지는 지대로 오지 못하고 도중에 멈춰버렸다.

헤아릴수 없이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인도에서, 그 모든 신들을 위한 축제를 벌이기도 하니,

축제때문에 버스가 움직이지 못하는 건 놀랍지도 않다.

오늘 목적지까지 가려면 애가 닳아야 하는 시점이지만,

이미 나는 최소한 여행지에서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대범녀로 거듭나 있었다.

슬금슬금 축제의 한복판으로 걸어가야지 하고 마음먹었을때,

귀여운 아해 하나가 동행으로 껴있는 호주 여행자들을 만났고

무사히 고락푸르까지 조인하여 저렴하게 사이클 릭샤를 탈 수 있었다.

여기까진 좋다!!

땀범벅~

기차역에 도착하여 웃으며 안녕하고 표를 끊으러 갔다.

일단, 당일 예약은 안된단다. 아, 깜박했다.

외국인 창구 가서 빌어보란다. 당근 쫄래쫄래 갔다.

다시, 당일 예약 안되는거 몰랐냔다. 어떻게 좀 안될까요?

현지인들 있는데로 가서 일단 당일표사고 요청하란다. 네, 감사합니다.

한참 기다렸더니 여자는 절로가서 끊으란다. 저 창구앞까지 거의 왔는데 어케 안될까요?

안된단다. 여성 전용줄이 그래도 더 빠르단다. 가야지...뭐...

줄을 서고 있으니 아줌마들이 나를 밀친다. 아..묵직한 가방으로 중심을 잡자.

창구 앞까지는 3~4명밖에 안남았는데 줄이 줄질 않는다. 이건 또 뭔일이니?

약사빠른 인도남성들이 앞에 있는 여성들에게 막 의뢰한다;; 뭐야...나 오늘안에 살수는 있는거야?

이렇게 시작된거다. 나의 큰소리와 전투의지는...

일단 나도 밀치기 시작했다.

덩치로 밀리니 가방으로 파고들어본다.

그리고 목청껏 외친다.

하리드와르! 에끄 티까뜨!!!!!!! (티켓한장!!!!!)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있는대로 땀을 흘리며 겨우 마련한 당일 2등석 좌석표를 들고

차장 혹은 그와 맞먹는 권위를 가진 대빵을 찾아갔다.

침대칸으로...바꿔주세요. 없단다.

제발...에어컨 칸도 좋아요. 웃기지말란다.

제...제발...어떻게...어떻게 16시간을 좌석으로 가요... 니 사정이란다.

결국 가방을 내려놓고, 풀썩 쓰러지는 연기력을 동원한 뒤, 눈물을 찔끔거리며 동정심 유발 애원을 했다.

아, 절대 연기가 아니다. 난 정말 절박했다.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제발..침대칸을 타고 싶었다.

땅콩 껍데기와 쓰레기가 바닥에 가득한 2등석 좌석(지정도 아니다)에서 16시간 꼿꼿하게 허리펴고 있을 자신이 죽었다 깨나도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플리즈를 과장 섞어 백번을 부르짖은 후에야

결국 띠거운 표정으로 던진 표 한장을 받고 감사의 눈물로 애원의 눈물을 바꿀 수 있었다.

물론...웃돈 줬다..

 

* 고행

기차에 대한 고행의 기억은 이전이전으로 거슬러 여행 한달째에 아주 상큼한 추억이 하나 있다. (반어법입니다.)

델리에서 낭만의 지역인 라자스탄 주의 아름다운 핑크씨티 자이푸르로 향하는 길.

미리 기차표를 끊지 못해 일주일전 끊은 기차료는 웨이팅 리스트에 나와 나의 동행들을 올려놓았고,

결국에는 좌석을 잡지 못해 에라 모르겠다 하고 타게된 기차.

어떻게 좌석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녕, 바닥에도 엉덩이 붙일 공간하나 없었다.

안되면 복도에서 침낭깔고 자지 뭐, 라고 했던 호기가 무색하게 밤새 서서가야 할 지경이었다.

자랑거리인 특유의 백치 미소를 날려보아도 내게 작은 공간하나 주지 않는 사람들...

사정하고, 울고, 소리지르고, 다시 빌어도 까치발을 들어야 간신히 버틸 수 있는 지경이었다.

절박할때 사람들은 평소 없던 이기심이 머리 꼭데기로 올라온다지만

이건 뭐 사람들을 밀치기위해 손을 뻗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겨우 찾아낸 좌석있는 사람들의 발끝 공간에 엉덩이좀 붙여볼까 하면

돌연 날라오는 발바닥 공격과, "네히!!(NO)"하는 온몸거부...

언젠가, 여행 초반에,

뭣모르고 자리 뺏길까봐 8시부터 드러누워 자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급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기차의 고행은 이것뿐이랴,

사막투어를 위해 낭만의 사막도시 자이살메르 갈때는 덥다고 창문열고 잤다가

스파이더맨 3의 모래인간이 되어버리기도 했고,

연착으로 기차를 놓쳐서 역사 바닥에서 노숙질을 하기도 했다.

 

* 즐거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인도를 간다면 나는 기꺼히 웃으며 기차를 탈 것이다.

인도 여행에서 기차는 열린 마음으로 친구를 사귀고 대화할 수 있는 곳이고,

때로는 새벽에 일어나서 나를 깨워주는 친절함을 맞닥뜨릴 수 있는 곳이며,

자신은 서서가도 외국인 여자는 앉아서 가게 해주는 별스러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차 침대에서 아침에 일어나 허겁지겁 내리고, 한숨 돌리며 마시는 짜이한잔의 즐거움.

밤새 좌석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는 장사꾼의 음식들을 신기해하며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

나에게 윽박지르던 웨이팅룸 관리자 아줌마와 친해지고선 즐거워하는 내 모습..

나는 이제...어줍잖게 여행길에서나마,,

기차역 앞에 앉아 언제 날지 모르는 좌석을 기다리며 그 부담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이제는 두렵거나 신기한게 아니고 사람사는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함과 익숙함, 유연함이 생겼다.

 

내 인생에서, 누군가의 인생에서도 어려움과 두려움을 미소와 설레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유연함이 생겼으면 좋겠다.

- 생각이 많은 날 비행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