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서울에도 상징적인 길이 있습니다.
얼마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서울성곽길이 바로 그 길입니다.
숭례문부터 시작하여 서대문, 북대문, 동대문에 이르기까지 옛 서울의 성곽을 그대로 따라서 걷는 길인데, 현재 성곽이 남아있는 부분과 소실된 부분들로 나뉘어 있습니다. 현재는 이에 대한 복구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지난 추석에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봤습니다. 저는 출발점을 숭례문으로 잡았고 역방향으로 돌았습니다. 보통 숭례문부터 시작하여 남산쪽으로 이동하거나 동대문에서 출발하여 북악산쪽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순방향이고, 숭례문부터 인왕산과 북악산으로 가는 방향이 역방향입니다. 그래서 표지판도 다 반대로 되어있는 길을 따라갔습니다.
숭례문은 작년 2월 아쉽게도 불에 타서 현재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가림판에 의해 가려진 상태로 복구가 한창 진행중입니다.

숭례문으로부터 이어지는 성곽은 도로 바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전의 성곽의 위치를 알려주는 그림이 바닥에 그려져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일단 상공회의소 옆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상공회의소 옆길로 들어서면 보이는 서울성광에 대한 안내표지판.
현재 복원 정비가 한창이라 옛 성곽의 흔적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날도 날씨가 좋아서 서울성곽을 걷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베낭을 짊어지고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옆으로 쭉 이어진 서울성곽길이 과거와 잠시 조우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예전 성곽과 복원한 성곽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 다른 색상을 띄고 나란히 성곽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상공회의소길을 지나면 소덕문터가 나옵니다. 터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을 찾기는 약간 어렵습니다. 바닥이 아닌 위쪽에 자리잡아서 문득 지나치기 쉬운 장소입니다. 이곳이 예전 서소문의 터로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습니다. 이렇듯 길을 걷다보면 일제에 의해서 서울의 많은 부분들이 변했다는 사실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서소문터를 지나 정동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서울성곽을 만날 수 없습니다.
안쪽으로 이어져있기에 길가에서는 찾기 어렵고 이화여고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정동길의 배재학당이나 정동극장, 러시아공사관들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정동길의 숨겨진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시간도 덤으로 가졌습니다. 매번 걸어다니는 정동길이지만 길을 잠시만 벗어나도 역사가 살아숨쉬는 공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러시아공사관은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보수공사인듯 보이는데, 가림판에 가려져서 내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전 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간 골목에서 마주친 넓은 공원과 특이한 건물을 처음 보고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그곳이 예전 러시아공사관 자리였습니다. 마치 시계탑마냥 세워져있던 건물의 흔적이 예전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정동길을 빠져나가면 건너편 강북삼성병원 앞으로 돈의문터가 보입니다. 역시나 일제시대인 1915년 철거되었습니다. 돈의문은 4대문 가운데 하나인 서대문입니다. 을미사변을 일으킨 일본인들이 이곳으로 서울에 들어온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은 이곳이 돈의문이었다는 흔적만이 남아있지만 이곳에 공원을 조성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돈의문을 복원하고 앞에 자리잡은 고가도로를 철거하여 공원을 조성한다는 뉴스를 최근에 접하기도했습니다.

서울성곽을 따라가는 길은 이제 강북삼성병원 옆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걸어가다 잠시 병원 안으로 들어서면 특이한 건물을 하나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경교장인데, 이 때는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경교장은 김구선생님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공간으로 예전 최창학의 양옥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백범 김구선생님의 거처로 사용되면서 경교장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내부는 대부분 보수를 통해 많이 변하였지만 아직 외관과 지붕은 예전 모습 그대로라고 합니다.
이 건물의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2층 창문에 있는 총탄 자국입니다. 1949년 백범을 향했던 총탄의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경교장은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고, 강북삼성병원을 통해 내부를 들어가볼 수도 있습니다.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와 길을 계속 걷다보면 홍난파 가옥과 공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 이런 집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기상대 앞으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걸어오면서 지친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줍니다. 넓은 잔디밭을 따라 홍난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잠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발걸을을 내딛었습니다.

이른바 홍난파 가옥이라고 불리우는 집. 독일계열 선교사의 주택으로 지어졌지만, 홍난파가 말년에 6년동안 이곳에서 생활을 하였기에 홍난파 가옥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1930년대 서양인 주택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는 전시관으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벽을 타고 늘어선 담쟁이들이 고풍스러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창문 아래 늘어선 화분들과 담쟁이들이 세월을 느끼게 해주고, 이곳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홍난파가옥을 지나 삼거리슈퍼를 지나면 사직터널 위쪽으로 지나가게 됩니다.
사직터널의 위쪽에 자리잡은 양의문교회에 오르면 전망이 좋다고도 합니다.
가끔 회사에서 산책을 하다가 보이는 교회의 뒷편으로 걸어가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사직터널을 지나 계속 오르면 거대한 성곽이 눈앞에서 가로막고 나타납니다.
이곳부터는 성곽의 안쪽으로 걸을 수도 있고, 바깥쪽으로 걸을 수도 있습니다.
걷다가 반대편의 풍경이 궁금하면 중간중간에 있는 암문을 통해 서로 왕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공원쪽으로 걸어올라가면 다양한 꽃들과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잔디밭에 펼쳐진 강아지풀들이 아른아른 눈앞을 가립니다. 저 멀리 경복궁 근처가 넓게 펼쳐지어 도심의 중앙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크게 한바퀴 도는게 서울성곽 북쪽코스입니다.

공원의 산책길은 이렇게 옆으로 서울성곽이 펼쳐지고 저 멀리 인왕산이 계속해서 보이는 길입니다. 성곽을 옆에 끼고 걸어가는 길은 이상하게 남다른 기분이 듭니다. 예전 이곳을 수호하던 사람들의 영혼을 따라간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래서 더 신비로운 경험이 될수도 있고, 도심에서 밟는 흙길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공원입니다.

그렇게 공원의 끝에 다다르면 길이 갈립니다. 군사지역으로 들어서서 길을 좀 돌아서 인왕산을 올라가야합니다. 현재 서울성곽이 공사중이어서 우회를 해서 올라가야하기에 좀 시간이 걸리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인왕산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보면 인왕산 정상으로 오르는 쪽문이 보이고 그곳에서 산행은 시작됩니다.

산행은 중간중간 벤치들이 놓여있는 계단길입니다. 산은 좀 가파른 편입니다.
신발을 단단히 준비하지않았다면 약간 고생길이 될지도 모릅니다. 계단 옆으로 지키는 사람들이 한 명씩 서있기도 합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서 열심히 산을 오르는데 사람들은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그렇게 산을 어느정도 오르면 약수터가 보입니다. 물통이 물이 받아먹는동안 물통의 주인은 어딘가에서 바삐 생활하고 있을 것입니다. 수량이 많지않아서 저 정도의 통을 받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약수터를 기점으로하여 조금 더 힘을 내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정상이 300m남았습니다. 그러나 정상을 지나 1차 목표지인 자하문까지는 2km 정도 남아있네요. 평지라면 모르겠지만 산길이라 이 정도의 거리도 상당히 멀게만 느껴집니다.

갈림길에 도착하면 옆쪽으로 복구 중인 서울성곽이 눈에 띄고 반대편으로 인왕산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길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풍경과 밑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이 잠시 쉬어가라고 손짓을 합니다.
서울성곽을 따라 걷는 것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잠시 쉬어가면서 지도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성곽을 따라 도는 동안 지도는 필수적입니다. 여러번 다닌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초행길에는 지도가 큰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 힘을 내서 돌계단을 오르면 넓게 펼쳐진 정상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얼마나 계단을 많이 올랐는지 셀 수 없을 정도라 힘이 그냥 쫙 빠집니다.
정상에서 만난 사람은 여길 다 뛰어올라왔다고하니.. 대단하다는 생각만이 가득 듭니다.

그 중에서도 정상에 자리잡은 거대한 바위는 위쪽에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입니다.
역시나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대자로 잠시 뻗어서 시원한 바람을 맞이해주었습니다.
이쯤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이보여서 아래에서 사온 간단한 식사를 해결하였습니다.

이제 자하문까지는 산을 내려가는 일만이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눈 앞으로 넓게 펼쳐져서 보여집니다. 멀리 보이는 부암동과 북악산이 앞으로의 힘든 일정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새로 보수된 ㄲㅒ끗한 서울성곽을 따라서 산을 내려갈 수 있습니다. 너무 깨끗한게 약간은 거부감이 들 정도입니다. 얼핏 보기에도 너무 이질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산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옆으로 인왕산의 줄기들이 하나둘 보입니다.
다른 산봉우리에도 올라보고 싶지만.. 가야할 길이 있기에 그저 산과 그 뒤로 펼쳐진 장관만을 바라보면서 지나갔습니다. 특히나 북쪽으로 넓게 펼쳐지는 북한산이 장관을 이룹니다. 북한산과 그 아래 위치한 동네들이 시선을 계속 사로잡습니다.

내려가는 길을 자세히보면 아래 석벽은 예전 모습이 그래도 좀 남아있는데, 위쪽은 너무 다른 색상입니다. 이왕 복원하는 것이라면 좀 더 예전의 석벽과 어울리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저 해봅니다. 산길을 걷는것이라 시원한 바람과 함께할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던 인왕산 산행이었습니다.

내려가다보면 이처럼 좋은 길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옆으로 펼쳐진 성곽을 만지면서 예전 성벽을 쌓았던 장인들의 손길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산을 다 내려와 인왕산길로 좀 내려가면 부암동에 들어서기 전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펼쳐집니다.
이곳은 윤동주 시인을 테마로 하여 꾸며진 공원으로 인왕산에서 굴러온 돌들도 한자리에 모아두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테마공원답게 대표적인 작품인 서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외워봤을듯한 서시. 그 앞에 놓여진 꽃이 그동안 잊고 살았음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이 공원에서는 놓여진 돌 하나하나, 나무 하나하나에 윤동주시인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걸으면서 윤동주시인과 함께 별을 헤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잇습니다.
부암동에 이러한 공원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도 하나 없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커피 하나 사들고 이 공원을 찾아보는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윤동주시인이 고향을 그리면서 바라보았던 풍경을 같이 바라보면서 그 당시의 윤동주시인의 마음을 느껴볼 수도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풍경들이 어느 지역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저 도심의 풍경과는 약간 다르다는 느낌이 그냥 듭니다.

멀리 보이는 자하문과 북악산을 오르기위한 입구들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이곳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일단 북악산을 오르기 전에 잠시 부암동을 구경하고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북악산으로 향했습니다.

숭례문에서 출발하여 부암동까지 걸어오는 길은 인왕산 등산을 제외하고는 평탄한 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누구라도 천천히 걷는다면 충분히 걸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