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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기획·목장갑 인생③] '아프니까 공장이다'…성한 곳 없는 사람들 더팩트 23.04.01 00:27:56 30읽음


'으뜸기업' 제조업 공장 파견직 1주
손목·허리 곳곳 '아프다' 일상다반사
중대재해법 사각지대 파견직 대부분


출근 첫날. 공장 앞에서 만나자던 파견업체 직원은 길 한복판에서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내 등 뒤엔 화물트럭과 지게차들이 도도하게 달리고 있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남윤호 기자
출근 첫날. 공장 앞에서 만나자던 파견업체 직원은 길 한복판에서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내 등 뒤엔 화물트럭과 지게차들이 도도하게 달리고 있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남윤호 기자

대한민국 일터가 위험하다. 한국의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 수)은 8년째 0.4~0.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로, 평균치(0.29)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산업재해율 역시 2018년 0.54%, 2019년 0.58%, 2020년 0.57%, 2021년 0.63%로 감소하기는커녕 상승 추세다.

정부는 현행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사후 규제·처벌 중심에서 자율 예방체계로 전환한다. 변화가 없는 산업재해 실태를 두고 자율성을 강조한 ‘노동개혁’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뀌지 않는다는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노동자들은 왜 다치고, 기업은 어떻게 대처하며, 정부는 무슨 노력을 해왔을까? <더팩트>는 근본적인 이유를 현장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산업재해가 빈발한다는 현장으로 직접 갔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관련 400여건의 판결문도 분석했다. 왜 '목장갑 인생'들은 오늘도 다치고 죽을 수밖에 없는지 7회에 걸쳐 그 잠정적인 결론을 공개한다. 3회는 산업재해가 심각한 제조업 공장 '파견' 노동자로 일주일을 보낸 주현웅 기자의 취재결과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일하기 좋은 으뜸기업.'

수도권 A산업단지에서 전장품의 회로기판을 만드는 한 제조업체. 수년 전 고위 각료가 방문한 곳이었다. '수출 역군'이라는 홍보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정부 기관이 선정한 '일하기 좋은 으뜸기업'과 '인재육성형 중소기업'이기도 하다.

기업 정보에는 근로자가 50명대 초반이었다. 회사 대표와 임원들을 제외한 상시근로자는 50명 이하라고 한다. 하지만 본사와 1공장 빼고, 내가 있는 2공장 인원만 대충 봐도 50명이 훌쩍 넘었다.

"여기 정직원은 거의 없어요."

한 직원의 말이다. 직원 대부분이 기업 정보에 숫자로 잡히지 않는 파견직이다. 파견회사를 통해 면접을 본 산단 내 여러 기업에서 "4년제 졸업자는 안 돼요. 일하고 싶으면 학력을 고칩시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일하는 일주일 내내 불안했다. 이러다 정말 산재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닐까. 다치면 사업주에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을까. '일하기 좋은 으뜸기업'을 믿고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당한 '산안법 요지'에 걸었던 기대

출근 첫날. 공장 앞에서 만나자던 파견업체 직원은 길 한복판에서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이른 아침 찬바람에 오들오들 떠는 내 등 뒤엔 화물트럭과 지게차들이 도도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는 무신경하게 중간중간 날렵하게 '∨' 체크를 했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돼요."

'급여: 시간당 9260원(최저임금)' 외에는 몇 자 읽어볼 틈도 없이 사인하고 납품되듯 공장으로 이끌려 갔다. 내가 배치된 곳은 완제품의 프레스와 포장 및 검수 등이 이뤄지는 제2공장. 바로 맞은편 말끔해 보이는 본사와 1공장보다는 조금 초라한 건물이었다.

사전 안내에 따라 챙겨 온 개인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공장과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그래, 이게 바로 수출 역군의 파이팅이구나'. 벽면 곳곳에 붙은 '품질은 생명!', '납기는 기본!' 등 비장한 구호들에 압도당했다. 각종 기계의 올바른 사용법 등을 안내하는 설명서도 빼곡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그러다 반가운 게시물을 발견했다. '산업안전보건법령 요지'.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제29조 안전보건교육. 신규채용 시 일용근로자는 1시간 이상, 일용근로자를 제외한 근로자는 8시간 이상>이라고 적혔다.

이래서 일하기 좋은 기업이었구나. 반대편 벽면에도 안전을 강조하는 포스터가 당당히 붙어있었다. '나를 지키는 안전에너지, 4대 필수 안전수칙'이라며 안전보건 교육 실시, 보호구 지급·착용, 안전작업절차 지키기, 안전보건표지 부착을 강조했다.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하지 않은 기업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 중소기업 상당수는 법령을 잘 몰라 이행하지 않기도 한다. 이 회사는 포스터까지 붙여 놓은 걸 보니 뭔가 달라 보였다.

그러다 반가운 부착물을 발견했다. '산업안전보건법령 요지'.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남윤호 기자
그러다 반가운 부착물을 발견했다. '산업안전보건법령 요지'.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남윤호 기자

◆하루 동안 손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하지만 헛된 기대였다. 안전보건 교육도, 안전작업 절차 설명도 없었다. 지급품은 방진복 윗도리와 일회용 장갑이 전부. 이게 날 지켜줄 리는 없다. 내가 오히려 회사 재산들을 지켜야 할 것 같았다.

딱 한 번 안전 절차와 '비스무리한' 얘길 들었다. 내가 맡게 된 진공포장의 기계 작동법을 처음 배울 때였다. 선임자의 설명이 어쩐지 묘했다.

"발밑 페달 모양 버튼 있죠. 한 번 밟으면 진공이 되고, 더블클릭하듯 두 번 밟으면 밀봉할 압착기가 '쿵' 떨어져요. 손이 끼이면 엄청 아픈데 잘리진 않아요. 대신 손을 빠르게 확 빼버리면 쓸려서 크게 다칠 수 있고…가끔 뜨거운 열이 나오는데 안 그런 때가 더 많기도 하고…."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출근 사흘 만에 몸으로 깨달았다. 양손이 전부 기계에 끼이고 말았다. 나름 예쁘게 포장해보려고 밀봉 주름선을 맞추던 중 나도 모르게 페달을 두 번 밟았다. 절차를 까먹어 저지른 실수는 아니었다. 한 차례 페달을 밟고는, 발 앞꿈치를 살짝 들어 올렸는데 갑자기 정강이가 뭉치며 통증이 왔다. 그 순간 떨어트린 발이 하필 페달에 닿았다.

홀로 선 공간에서 5초 정도는 손이 끼인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다른 직원들은 평소처럼 검수 등을 위해 옆 공정실에 있었다. 내 곁에는 어두침침한 형광등 뿐이었다. '손을 빠르게 확 빼버리면 안 된다'는 설명은 미리 듣지 않았어도 될 듯했다. 끼여보면 본능적으로 느낀다. 아주 조심히 꼼지락하며 간신히 손을 빼냈다. 이날 하루는 손을 멀쩡히 쓸 수 없었다.

물론 다행이었다. 만약 유압 프레스였다면, 컨베이어였다면, 식품 혼합기였다면…상상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 부주의로 손이 끼인 걸까. 좀 억울했다. 지난 사흘 좁고 종일 밀폐된 공간에서 단순 반복 작업만 했다. 주의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2시간 일하고 단 10분 쉴 때조차 휴게 공간이 없어 앉지를 못했다. 특히 이날은 주말 근무였다. 지루한 작업에 몽롱하면서도 팔, 허리, 다리 등 아프지 않은 데가 없고 신경은 곤두선 불안한 상태였다.

기계의 정체도 궁금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손 끼임을 인식한 순간 압착기가 제자리로 올라가는 안전한 장비들만 나왔다. 내가 쓴 기계와는 차원이 달랐다. 스크롤을 한참 내리고서야 발견했다. 내 손가락을 단두대로 내려치듯 한 놈. 무려 12년 전 촬영된 동영상이었다. 그 사이 정권도 두 번 바뀌었는데 한 자리를 지켜온 녀석이었다.

사실 발 상태도 온전치 못했다. 실내 공장이었지만 '팔레트'를 실어 나르는 '쟈키'와 철로 된 '대차' 등을 쉴 새 없이 다룬다. 안전화 대신 왜 슬리퍼를 신게 하는지 늘 의문이었다. 얼마나 찍히고 밟혔는지 까지고 부어올랐다. '왜 슬리퍼를 신어야 하나요' 묻자 직원들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러게요."

◆'내 허리야' '아프다' 입에 달고 사는 직원들

"여긴 그나마 편한 공장이에요. 요즘은 잔업도 없잖아요. 지난 여름에는 30분 만에 저녁 해치우고, 밤 9시쯤 될 때까지 한 달 동안 거의 주 7일 일했거든요. 그게 주52시간 법에 걸리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무튼 오래 다니세요. 다닐 수 있다면요. 반나절 만에 도망간 사람도 몇 있긴 한데 적응되면 재밌는 일이에요."

주말 근무를 거쳐 출근한 지 닷새 된 날, 40대 직원은 허리보호대를 풀고 안마봉으로 등을 두드리며 '재밌는 일'이라고 말했다. 손등과 손목에는 파스가 붙어있었다.

그와 이렇게 길게 이야기한 날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모든 직원이 친절했지만 뭔가 겉돌았다. 내 신발장이라더니 낯선 이름이 적혔고, 식사 때도 다른 직원이 본인 지문을 대신 찍어줘야만 식판을 들 수 있었다.

"다들 어차피 금방 관두니까. 계속 다니다 보면 언젠가 이름이랑 지문을 등록할 수 있어요."

그토록 많이 관두는 이유는 명료했다. '아프다'. 이곳 직원들은 늘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일할 땐 "내 허리야", 밥 먹을 땐 "손목 힘이 빠져 젓가락질이 안 돼". 연차를 내 병원에 가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매일 점심마다 대신 지문을 찍어준 선임자는 "여기서 1년 이상 일하면 아프지 않은 직원이 없다"고 했다.

불과 한 주 일했지만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편히 쉴 곳이 없어 스트레스였다. 어느 날 쉬는 시간 한 직원은 나를 창고로 데려갔다. "여기서 몰래 쭈그려 쉬면 돼요." CCTV 사각지대였다. 고마웠다.

그런데 이 회사는 어떻게 '일하기 좋은 기업'에 뽑힌 걸까. 몇 년 전 직원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공정을 정부 인가도 없이 도급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처분은 기소유예. '적발 뒤 개선을 노력했다'는 이유였다.

파견직이 상시근로자인지 해석을 놓고 고용노동부와 검찰도 제각각이다. 노동부 법 해설서에서는 파견근로자는 상시근로자 범위에 해당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남윤호 기자
파견직이 상시근로자인지 해석을 놓고 고용노동부와 검찰도 제각각이다. 노동부 법 해설서에서는 파견근로자는 상시근로자 범위에 해당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남윤호 기자

◆노후한 시설과 장비 '파견직이니까'

매일 착잡했다. 회사는 왜 이처럼 형편없는 시설 속 노후한 장비에다 성치도 않은 몸 상태로 직원들을 일하게 둘까. 아무리 그래도 자기 회사 사람인데.

대부분 파견직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파견직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 법은 '상시근로자' 50인 미만의 기업은 2025년까지 적용을 유예했다.

하지만 파견직이 상시근로자인지 고용노동부와 검찰도 해석이 제각각이다. 노동부 법 해설서에서는 파견근로자는 상시근로자 범위에 해당된다. 재판에 넘길 권한을 가진 검찰은 수사지침에서 '해당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지난해 10월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상시근로자 기준을 대검이 좁게 해석해 파견사업장의 중대재해를 처벌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해결 방안을 마련해 (같은 달)종합국감 때 제출해주세요."(이은주 정의당 의원)

6개월이 지난 지금, 해결 방안은 마련됐을까. 이은주 의원실 관계자는 "아직 아무런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파견직의 중대재해 관련 문제는 진척된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전화를 걸어봤다.

"의원실에 자료를 제출했는지까지 언론에 알려줘야 할 이유가 있나요. 특별히 변경된 사항은 없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근로현장의 안전을 개선하고 중대재해가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했다. 장관의 프로필에는 '30년 노동운동가'라고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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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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