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1908-1937). 해발 652미터의 금병산金屛山이 시작되는 들머리에 실레마을이 있다. 작은 산들로 에워싸인 게 마치 떡시루를 닮았다. 그래 실레마을이다. 떡시루 구멍으로 기가 샌다. 돈도 샌다. 그래 이 마을에서 돈 모은 사람이 없다. 2000년 김유정문학촌이 만들어지면서 복부인들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갔다. 평당 10만원이던 오지의 땅값이 지금은 백만 원이 되고. 짓다만 전원주택들이 즐비하다. 복부인들이 땅값만 올려놓고 다 떠난 거다. 좀 고마해라. 집의 자녀들이 보고 있다.
"딸아, 너는 돈 만지는 직업 갖지 마라."
"응."
"선비는 자고로 배가 고파야 하고 그걸 즐겨야 아트가 나온단다."
"알았다니까."
"그래 오늘의 고사성어는 목귀명目貴明, 이귀총耳貴總, 심귀공心貴公이니라."
"아빠, 오늘은 왜 이렇게 길어."
"이거 외우면 만원 줄께. 눈은 밝게 보는 것이 중요하고, 귀는 똑똑히 듣는 것이 중요하며, 마음은 사사로움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등석(鄧析 중국 제자백가 중 궤변학자)왈."
"제자백가는 또 뭐야."
"뭐라고나. 안 배웠냐"
"응."
"나 원 참. 중국 춘추전국시대(BC 8세기-BC 3세기)에 활약한 학자와 학파를 총칭해 제자백가諸者百家라고 부릅니다."
김유정은 이 동네 최고 갑부인 김춘식과 청송 심씨의 8남매중 7째 차남으로 태어난다. 비단병풍처럼 펼쳐진 동네. 광산으로 떼부자가 된다. 1914년 김유정 6살에 종로구 운니동에 99칸짜리 한옥 구입해 이사. 고향 땅은 소작(小作 농토가 없는 농민이 남의 농토를 빌려서 농사를 짓는 일) 준다.
7살에 어머니 떠나신다. 9살에 아버님 떠나고. 현실이 싫다. 사람 만나기도 겁나고. 장남이 방탕한 생활로 집안 거덜 낸다. 누님은 돌아버리고. 누나 집에 기거하면서 휘문고보에 입학하지만 폐결핵으로 8년만에야 졸업. 연희전문에서 문학을 전공하지만 잦은 결석으로 제적. 본인은 자퇴라고 우기지만.
1931년 24살에 아픈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와 금병의숙 설립. 딸아, 개인이 세운 의로움을 가르치는 글방이 의숙義塾이다. 그냥 방 한 칸에 아그들 모아 놓고 글쓰기를 가르친다. 1933년 김기림, 이효석, 이종명, 유치진, 조용만, 이태준, 정지용, 이무영과 함께 구인회九人會 결성. 순수문학의 회복을 주창한다.
"딸. 김기림 아나."
"몰라."
그럼 그냥 갈 수 없지. 김기림(1908-?). 함경북도의 한적한 바닷가 임명臨溟에서 1남 6녀의 외아들로 태어남. 부친은 토목업을 하는 지주. 서울 보성고보 졸. 도호쿠(東北)제국대학 영문과 졸. 1930년 조선일보 입사. 조선일보에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 발표하며 등단. I. A. 리챠즈의 주지주의(主知主義 지성이나 이성이 의지나 감정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사조) 문학론에 근거한 모더니즘에 탐닉. 해방 후 좌파인 조선문학가동맹 가담. 서울대, 연세대, 중앙대 등에서 문학을 강의하다 1950년 6·25전쟁 때 납북. 시집으로 <바다와 나비>(1946), <새노래>(1948)가 있다. 1988년 해금되면서 <김기림전집> 발간.
시 한편 읊고 가자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1935년 <따라지 목숨>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스타작가가 된다. 제목이 좀 그렇다. 그래 조선일보는 <소낙비>로 개명. 일제시대라. 주인공 춘호는 노름돈 2원이 필요해 마누라를 이 주사(主事 남자의 성에 붙여 그를 높여 이르는 말)에게 판다. 농촌 현실을 해학적으로 고발한다. 우리 시대의 명창 박록주(1905-1979)에게 연서를 보내지만 퇴짜다. 감히 폐결핵 환자가. 1937년 30살에 누나네 집에서 지구를 떠난다. 화장해 한강에 뿌려진다. 유언은 이렇다. 내 다시는 오나봐라.
자식도 없다. 집안은 망했고. 1968년 후학들이 나선다. 김유정 문인비 건립. 1978년 기적비(紀蹟碑 살고간 흔적을 기록한 비) 건립. 1990년 김유정 소설문학상 제정. 제 1회 수상자 전상국. 2회 수상자 유순하. 3회 수상자 안정효. 중단. 2007년 한강수력발전처가 나선다. 김유정문학상 부활. 상금은 3백만 원에서 10배 늘어나 3천만 원이 된다. 한강수력발전처 왈. ‘한강이 마르지 않는 한 이 상은 계속된다.’ 고맙습니다.
2000년 춘천시 신동면 증리 868-1에 김유정 문학촌 건립. 문학촌 옆 닭갈비집 유정마을이 원래 이 땅 주인이었다. 맛있다. 들려보시길. 주인장으로부터 김유정의 야사를 들을 수 있다.
ㅁ자형의 초가집이 복원되고 연못, 정자. 외양간, 디딜방아, 기념관이 주위로 돌아간다. 기념관이 화나게 한다. 또 콘크리트로 한옥을 모사한다. 지붕엔 기와가 올라타고. 지금이 뭐 유신시대냐. 목조로 세우고 기와 얹든가. 돈 없으면 그냥 현대건축으로 지어라. 애들한테 뭘 가르칠려고들 그러는지. 유리, 철 뭐 그런 거로 김유정 기념해도 김유정 만족해 하실 거다.
이 김유정 문학촌의 관장은 누구일까요. 전상국(1940- )이다. 강원도 홍천 출신으로 1963년 <동행>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역사상 강원도 출신으론 김유정에 이어 두 번째라나 뭐라나. 아베의 가족(1979), 우상의 눈물(1980) 등으로 분단현실을 고발하는 주옥같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현 강원대 국문과 교수. 지금은 정년퇴임하셨을거 같은데. 또 책 쓰고 계신가 모르겄다.
2007년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제 5회 김유정문학제가 열렸다. 경춘선을 달리는 김유정문학기행열차가 백미다. 기차에서는 전문가의 김유정 강의가 이어지고. 금년에는 김유정 문학상 2회 수상자인 유순하 교수가 맡았다. 매년 이맘 때 열리니까 내년엔 꼭 참석하서요. 회한의 여행. 왕복 차비 포함 1만원. 싸다.
아빠, 백미는 또 뭐야. 흰 눈썹. 중국의 마량馬良은 형제가 다섯이었다. 다섯 형제 모두 자字에 상常이란 글자가 붙어 있어 사람들은 그들을 ‘마씨오상馬氏五常’이라 불렀다. 형제가 모두 재주가 뛰어났으나 그 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 그래 사람들은 “마씨오상은 모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흰 눈썹이 가장 훌륭하다(마씨오상 馬氏五常 백미최량 白眉最良)”이라고 하였다. 마량은 어려서부터 눈썹에 흰 털이 많아 이렇게 불렸다. 이때부터 같은 또래, 같은 계통의 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백미라 부르게 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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