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을 달래는 향기여행 수종사와 두물머리

천리길을 달려온 남한강과 북한강이 몸을 섞는 두물머리에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수종사(水鐘寺) 절집엔 녹차향이 그윽하다.

한국 최고의 물맛이라 전해지는 수종사 석간수로 우려낸 차는 깊은 맛과 은은한 향기로 세속의 이들을 절집으로 이끈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옛 시인 묵객들이 교류하며 차를 즐긴 수종사는 지금 울긋불긋 절정으로 칫닫는 단풍과 차향에 넋이 빠질 정도로 황홀하다.

◇단풍숲에 올라 앉아 세상 굽어보는 절집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 중턱에 자리잡은 수종사는 세속에 찌든 심신을 달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절집이다.

팔당댐을 지나 마현마을 초입에서 조안면에 접어들자 수종사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절로 올라가는 입구부터 수종사까지는 1.1㎞. 걷기에 충분한 거리지만 경사가 심해 40여분을 힘들게 올라야 한다.

자동차로 일주문까지 갈 수 있지만 길이 좁아 차 두 대가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난감한 일이 벌어진다.

'힘이 드는 만큼 보람도 크다'라는 말이 있듯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절집의 운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헉~헉 깊은 숨을 쉬며 산길을 오르지만 산자락에 드리운 맑은 기운에 온 몸에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 개운하다.


대여섯 번의 구비를 돌고 나면 수종사의 시작인 일주문이다. 이제부터는 완만한 흙길이 이어진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멀리 단풍숲에 앉아 있는 수종사의 고즈넉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절벽 위에 걸터앉아 있다는 수종사가 늦가을이면 짙은 단풍숲 위에 앉아 있어 또 다른 매력을 물씬 풍긴다.

수종사는 세조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458년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던 길에 양수리에서 하루밤을 묵었다. 잠결에 종소리를 듣고 따라 가자 바위굴속에 18나한이 있고 그 속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사찰 입구에서 마주친 묵언(默言)이라 적힌 작은 표지에 왠지 몸가짐이 조심스럽고 발걸음이 가볍다.

묵언 글귀 밑으로 한국에 으뜸이라는 석간수가 흐른다. 다산이 즐겨 찾아 차를 음미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한 모금 마시자 시원하고 깨끗한 기운이 온 몸을 타고 전해진다. 석간수 위에는 삼정헌이라는 다실이 있어 최고의 물로 우려낸 차를 즐길 수 있다.

 ◇동방가람 제일 경치에서 피어나는 녹차향


다실에 들어서자 늦가을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하다. 가지런히 다기가 놓인 찻상 앞에 앉으니 수종사를 즐겨 찾았던 옛 시인들이 쓴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다산은 "수종사 절집은 아스라한데/호남 땅 사백개의 많은 사찰도/이 누각보단 못하리"라고 감탄했고, 사가 서거정은 "동방가람 중 제일의 경치를 가진 사찰"이라고 칭송했다.

약수를 다기에 따르자 은은한 녹차향이 다실 가득 번진다. 자연스럽게 허리가 꼿꼿해지며 자세가 펴진다. 세속에 찌던 마음이 정화 되듯 몸 안이 맑은 기운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다실을 나와 대웅전 뜨락에 서면 수종사 최고의 풍경을 만난다. 남한강, 북한강 두 물이 만나 한 몸으로 섞이는 두물머리(양수리)다. 절집을 찾은 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한 마디씩 감탄사를 쏟아낼 정도로 뭉클한 감동과 짜릿함이 밀려온다.

특히 각양각색으로 물들어 가는 풍경아래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세상이 다정하고 아름답다.

뜨락을 지나 조그만 해탈문을 나서면 세조가 절을 지은 뒤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은행나무 아래에는 누가 세웠는지 알 수 없는 작은 돌탑이 운치를 더 한다.


석양이 뉘엿 뉘엿 산봉우리를 물들일쯤 발길을 돌린다. 두물무리가 저무는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언덕과 골짜기 서로 합해져ㆍㆍㆍ/너무도 즐거워 혼자서는 묵어지내며 돌아가고 싶지 않네(숙수종사)"라며 수종사를 떠나는 아쉬움을 노래한 다산의 마음처럼 쉽게 절집을 나서지 못한다.   

남양주=글ㆍ사진 조용준기자 jun21@newsv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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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볼거리=영화 '공동경비구역JSA', '취화선' 등의 배경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남양주 종합촬영소가 가깝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기거한 다산유적지와 양평 두물머리, 세미원 등 북한강변에는 볼거리가 지천이다.  

▲먹거리=김칫국으로 시원하게 국수를 말아주는 송촌리 죽여주는 동치미국수(031-576-4020)와 집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순두부와 배추 겉저리 맛이 일품인 조안면 기왓집 순두부(031-576-9009)가 유명하다. 콩비지를 집에 가져갈 수 있다.

▲가는길=올림픽대로에서 미사리를 지나 팔당대교를 건너 6번국도(홍천 방향)로 가다 양수대교 앞에서 45번 청평방향 국도를 탄다. 10km정도 가면 조안면 사무소 지나 조금만 내려가면 좌측으로 절 입구가 나온다. 문의 수종사 (031)576-8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