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삼청동 가자.“

“아빠, 왜 동네 이름이 삼청이야?”

“산청山淸, 수청水淸, 인청人淸. 북악산 자락 산과 물이 맑고, 인심도 맑아서.”

동십자각에서 좌회전 경찰들 바글바글. 우측에 금융연수원이 보인다.

“딸 한국금융연수원 들렀다 가자.”

“왜?”

“저 안에 번사창이 있걸랑.”

“그게 뭔데?”

“조선시대 무기고.”

“번사飜莎가 뭐야?”

“흙으로 만든 거푸집에 금속용액을 부어 주조한 용기에 화약을 넣은 거. 이걸 폭발시킬 때 천하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고 빛은 대낮처럼 밝아진단다.”

1884년 고종은 근대적인 무기를 만드는 번사창을 만든다. 기기국의 무기고.

“기기국機器局은 뭐야 아빠?”

“조선시대 근대식 무기 만들던 관청.”

삼청터널 통과. 좌측에 바로 삼청각이다. 대원각, 청운각과 더불어 대한민국 3대 요정의 하나. 대원각은 부처님께 시주 길상사가 됐고.

“아빠, 왜 집 이름에 각閣자를 붙이는 거야?”

“크고 높다랗게 지은 집이라서.”

“길상사는 알겠고 청운각은 어딨어?”

“종로구 청운동 경기상고 건너편에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단다.”

북한 옥류관에서 융숭한 접대를 받은 중정은 옥류관을 능가하는 음식점을 짓는다. 남은 시간은 단 3개월.

“어디다 짓죠?”

“빈 땅 없냐.”

“없는디유.“

그래 지금의 북악산 아래 6천평 그린벨트 해지. 박통시절에나 가능한 얘기. 설계는 라이온건축의 정재원. 정재원은 한옥에 까막눈. 군 공병대 투입. 공사감독관인 중정요원은 권총 차고 눈을 부릅뜬다. 빨리 지을래 죽을래. 당시 도면은 중정이 다 가져가 폐기.

급히 대목장 박광석과 정대기가 불려왔다. 마당에 쓸 수 없는 자재만 산더미. 건축비는 10억이 책정돼 있고. 4배 주면 한다. 아니면 말고. 당시 목수 일당 2백원이던 시절. 좋다. 인천 목재소로 뛰어 갔다. 어라 굵은 국산 육송 전무. 전부 수입재 구입.

1972년 5월 이후락 중정부장 비밀리에 북한 방문. 김일성과 역사적인 만찬. 분단 후 27년만의 해빙. 북한의 박성철 부수상 답방. 박통과 건배. 통일 3대 원칙 발표. 보자.

1. 외세에 의존하거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2.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한다.

3.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한다.

1973년 대충 완공. 6월 남북회담 환영만찬. 삼청각 일화당에서 환영 만찬. 부랴부랴 현판을 걸었다. 일화당一龢堂. 남북이 하나 되어 화평하게 살아가는 집.

“아빠, 그럼 당堂이 집이야?“

“응.”

“그럼 오죽헌은 왜 헌軒자 붙이는 거야?”

“집의 규모에 따라 각, 당, 헌 붙이는 거야.”

곧 민간에 매각. 고관대작(高官大爵 지위가 높고 훌륭한 벼슬을 가진 사람)들로 바글바글. 주지육림(酒池肉林 술이 연못을 이루고 고기가 숲을 이룬다)의 바다.  1980년대 들어 룸살롱들이 득세하면서 서서히 쇠락. 일본 단체 관광객들의 기생관광지로 전락. 1996년 중국음식점 <예향>으로 변신. 경영난. 1999년 부도. 청운각도 부도. 1995년 부처님께 시주한 대원각만 살아남고.

“아빠, 시주施主가 뭐였더라?”

“원래의 주인인 부처님에게 돌려준다.”

1999년 성북구청에 허가서류가 들어 왔다. 삼청각의 전각들 다 때려 부수고 고급빌라 짓겠다. 뭐라. 유보. 서울시는 부랴부랴 삼청각을 문화시설로 지정. 큰일 날 뻔 했다. 북악산 자락에 대한민국 최고의 빌라 지어 고관대작에 팔아먹으려던 건설회사 돌아버리고. 당시 시장 고건이 뚝심을 힘을 발휘한다. 2001년 서울시가 사들여 리모델링. 세종문화회관, 플라자호텔에 위탁 경영. 매년 30억 적자. 2005년 파라다이스에 재 위탁. 이제 살아난다. 당시 삼청각을 운영했던 자매는 지금 미국 뉴욕에서 회한에 잠겨 작은 음식점 운영 중이라는 소문.

주차권 뽑고 삼청각 진입. 30분에 3천원. 빨랑 나와야겠군. 엄청난 스케일의 일화당 건축면적 1천평. 콘크리트로 한옥을 복재한 일화당. 기단을 바라보며 아랫마당으로 내려갔다.소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 5채의 별채 보자.

1. 봄의 물소리가 들리는 집. 청천당請泉堂(돌, 회갑잔치공간) 1백평.

2. 영원하고 깊은 가을집. 천추당千秋堂(다례, 규방공예 교실) 50평.

3. 비취빛 서늘함이 깃든 집. 취한당翠寒堂(한옥 체험공간) 50평.

4. 동녘의 밝은 집. 동백헌東白軒(20명 숙박 가능한 한옥 체험공간) 50평.

5. 그윽한 그늘이 깃든 정자. 유하정幽霞亭(놀이극 공연공간)-이것도 콘크리트로 한옥 복제.

“사장님 청화대에서 전화왔습니다. 낼 박통 오신답니다. 청천당에서 한 잔 하신다네요.”

청화대 경호원들이 들이닥쳤다. 모든 예약 취소. 정문에는 이런 안내문이 걸렸다. 내부 수리관계로 오늘 하루 문닫습니다. 불만없지유!

널찍한 잔디마당 지나 일화당 들어서니 찻집이다. 찻집 이름은 <다소니>.

“아빠 다소니가 뭐야?”

“사랑하는 사람.”

문 열고 테라스로 나가니 북악산 자락을 따라 한양성곽이 달린다. 완사명월형의 명당이군.

“아빠, 완사명월형浣絲明月形이 뭐야?”
“밝은 달빛 아래 비단을 펼쳐 놓은 형상. 이런 터에서는 이름을 날릴 자손이 배출된단다.”

“아빠, 우리 이리 이사오자.”

“돈 없다.”

찻집 안으로 들어가니 한정식당 이궁. 1인분에 20만 원짜리 궁중요리. 점심은 2만원. 1층 내려가니 전통공연장 <예푸리>.

“아빠, 예푸리가 뭐야?”

“예술을 풀어내는 곳”

다소니에 앉아 난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9천원. 딸은 유자차. 9천원. 마누라는 십전대보차. 1만원. 장난 아니군. 차를 마셔야 주차가 공짜니.

공짜 셔틀버스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300분 간격으로 운행. 삼청각-세종문화회관-서울프라자호텔-교보문고-경복궁-삼청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