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나라에서 운영하던 국립학교가 향교다. 나라에서 땅을 지급해 그 땅에서 얻어지는 수익으로 향교를 운영한다. 하지만 사립학교인 서원이 득세해 힘을 못 쓴다 1894년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이제는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사당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당시 335개의 향교가 48만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1542년 주세붕(1495-1554)이 풍기군수로 부임하니 고려의 대유학자 안향(1243-1306)의 폐가가 버려져 있다. 백운동서원을 만들어 안향의 업적을 기리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 그 유명한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와보니 백운동서원의 학생들이 기특하다. 이를 보고받은 명종은 1550년 친필편액인 ‘소수서원‘과 함께 토지, 노비를 내리고 면세혜택도 부여한다. 더 열심히 공부하거라 아그들아. 그래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다.
“아빠 편액扁額이 뭐지?”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붙인 액자. 건물 이름을 쓴 간판.”
“그럼 사액賜額은 뭐야?”
“왕이 사당이나 서원의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을 내리는 거.”
백운동서원은 선현과 향현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당과 청소년을 가르치는 서재書齋를 함께 갖춘 최초의 사립학교.
“아빠, 선현先賢은 누구고 향현先賢은 누구를 말하는 거야?”
“선현은 공자를 비롯한 센 선비. 향현은 그 고향 출신의 현명한 선비.”
1613년 정경세는 존덕사를 건립해 유성룡(1542-1607)의 업적을 기리고 고려 말 설립된 풍악서당에서 아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아빠, 서당書堂과 서원 다른 거야?”
“서당은 사설 학원. 서원은 사당과 기숙사를 함께 갖춘 사립학교. 사당이 있느냐에 따라 규모가 커지는 거야.”
민가들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시끄러워 공부할 수가 없게 됐다. 마침 유성룡선생이 부친상으로 화회마을에 오셨다. 선상님 서당을 어디로 옳기면 좋을까요.
‘천고의 주역 이치를
삼년동안 앉아서 연구했다네
마음속엔 푸른 벽이 섰는데
음미하는 옆엔 저문 강물이 깊네.‘
알긋냐. 예. 병산屛山 앞으로 가라굽쇼. 그래 1572년 풍악서당은 지금의 병산 앞으로 이전하면서 병산서당이 된다. 임진왜란. 또 왜놈들이 불 지른다. 1607년 중건(重建 고쳐 지음). 1610년 서애 유성룡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 존덕사尊德祠 건립하면서 이제 병산서원이 된다.
1863년 철종이 병산서원이라는 편액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고. 가문의 영광.
“아빠, 친척親戚은 뭐고 인척姻戚은 뭐야?”
“아빠 쪽의 8촌 이내 혈족이 친척. 인척은 엄마랑 결혼하면서 만들어진 엄마쪽 4촌 이내의 혈족.”
조선말 서원은 본래의 갈고 닦는 성스러운 교육의 장에서 패거리정치의 아지트로 타락. 그래 조선시대 마지막 칼잡이 흥선 대원군은 1868년 서원 철폐령을 내린다. 수백 개의 서원을 때려 부수지만 병산서원을 포함한 47개는 살아남는다. 큰 일 날 뻔했다. 고맙습니다. 합하.
“아빠, 합하閤下가 뭐더라?”
“흥선대원군이 조선 제 26대 왕 고종의 아빠인 건 알지.”
“응.”
“정 1품의 벼슬아치를 높여 이르는 말이야. 지금으로 말하면 왕의 아빠는 국무총리급으로 예우를 받았걸랑.”
아직도 비포장도로. 좌측으로 낙동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병산이 이를 감싸 안는다.이제 들어가 보자. 정문인 솟을대문은 복례문이다. 자신을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다. 예를 갖추고 복례문 들어서니 바로 만대루다. 만대睌對는 중국 최고의 시성(詩聖 시의 최고봉) 두보의 오언시(五言詩 1구句 5자字로 되어 있는 중국시)의 <백제성루百濟城樓>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만하니’에서 따온 말이고.
7칸의 그야말로 장대한 누마루에 올라서니. 이곳이 바로 정토(淨土 부처님이 사시는 청정한 나라)이며 이곳이 바로 우주다. 다듬지 않은 채 생긴 대로 끼워 맞춘 기둥들 사이로 보이는 푸른 절벽은 한 폭의 <병산제색도>가 된다.
“아빠, 제색도霽色圖가 뭐야?”
“비가 갤 때의 절경을 그린 그림.”
이제 만대루로 인해 이곳 병산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하나로 완성되나니. 푸른 절벽과 푸른 강은 이곳 만대루를 휘감고 돌고. 어디로 갈이거나. 이 숭고한 만대루는 온갖 자연의 범상치 않은 까탈스러운 투정을 그저 담대하게 바라본다. 태풍이 불거나 파도가 치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개의치 않는다.
만대루는 그런 자연의 일희일비(一喜一悲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슬퍼함)에 무관심하다. 인간들은 들으라. 탐욕과 분노와 무지로 불타고 있는 집에서 뛰쳐나오지 않을래. 포효한다. 그것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안 나오면 말고. 난 그대로 여기 서 있을란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뭐 이런 거다. 이미 이 만대루는 불교와 유교가 두개가 아님을 가르쳐 준다. 그래 부처와 공자는 하나다. 이제 만대루는 건축을 넘어 영겁(永劫 영원한 세월)의 경지에 오른다.
“아빠, 겁劫이 뭐더라? 많이 들었는데.”
“시간의 단위로 가장 길고 무한한 시간.”
머리숙여 만대루밑을 통과하니 시원한 안마당. 좌측에 서있는 서재는 원장의 숙소다. 우측의 동재는 학생들 기숙사고. 서재西齋는 원장 숙소, 동재東齋는 학생 기숙사로 사용하는 게 서원건축의 법. 정면에 입교당立敎堂이다. 가르침을 바로 배워는 교실. 입교당 뒤로 존덕사. 전학후묘前學後廟. 앞에는 학교를 뒤에는 사당을 놓는 거 역시 서원건축의 배치법. 전국의 서원이 이를 따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