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 한 신학도는 미술관 건립을 꿈꾼다. 30년간 전세계를 누빈다. 해외여행만 1천번. 미션과 아트가 두 개가 아님을 보여주겠다. 그래 신학과 건축은 그에게 평생 화두가 된다. 2만점의 미술품을 사 모은다. 목사의 서재에는 건축 책만 1만 권이다.

아주미술관 관장 이재흥(1953- )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협성대학과 미국 트리니티대학원을 졸업했다. 1981년부터 대전 구즉감리교회에서 목회활동. 시집 <빙벽에 피는 꽃>, <물에 배어든 하늘빛처럼>도 낸 시인.

우선 자택과 교회를 설계 시공하면서 건축에 대한 안목을 키워나간다. 1998년부터 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에 착수. 서울을 비롯한 대전권에서 대지를 찾아 나선다. 백여군데를 답사하던 중 대전시 유성구 화암동 땅 3,500평을 1억원에 사 들인다. 3면이 작은 산으로 에워싸인 도자기 가마터. 자고로 집터는 햇볕 잘들고 따뜻한 온기를 주변 산이 품어 안을 때 명당이 된다. 찬바람도 막아 주고. 집 앞으로 물이 흐르면 금상첨화고.

2천년 대전의 토박이 건축가 김억중(1955- )이 설계자로 결정된다. 김억중은 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로 넘어가 신부이자 화가인 큰 형에게서 미술수업을 받았다. 스위스 로잔으로 넘어가 건축공부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세계적인 거장 마리오 보타(1943- )를 만나면서 눈을 뜬다. 고향으로 동아와 한남대 교수로 재직 중. 리움미술관, 강남교보타워의 설계자 마리오 보타를 모르시는 분은 안게시겠죠.

이재흥관장은 이미 김억중의 작품들을 사전 답사해 검증을 마친 상태. 김억중과 함께 중국의 미술관들을 살펴본다. 수많은 대화가 오가고. 1년 반 동안 건축설계가 진행된다. 자연과 하나 되는 건축이 목표. 과거와 현재가 하나 되는 방법은 없을까! 고대와 현대는 두 개가 아니던데. 다시 전국투어에 들어간다.

한옥을 찾아 나선다. 전통을 어설프게 베끼느니 전통을 그대로 가져오자. 충남 홍성의 12칸 규모의 한옥이 맘에 든다. 350년된 그야말로 고풍스런 한옥. 별장으로 사용하던 집주인이 팔 리 없다. 1년간 따라 다니며 읍소. 마침 홍수로 지붕에 구멍이 나 물이 샌다. 선생님 이거 그냥 놔두면 무너집니다. 제가 문화시설로 잘 보존할 테니 넘겨주십시오. 4천만원 주고 구입. 유성구로 한옥을 이전한다.

한옥은 전부 나무를 끼워 맞추는 가구식구조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전 복원이 가능한 환경친화적인 대한민국의 위대한 유산이다. 물론 한옥의 이전비용은 장난이 아니다. 웬만한 건물 새로 짓는 비용이 든다. 그래도 좋다. 350년의 역사를 살리는 일이니. 복원하면서 새로 황토를 70톤 들여와 완전 리노베이션에 들어간다. 또 수억 들어가고.

호남고속도로 들어서자 마자 북대전 인터체인지로 빠지면 좌측에 바로 <아주 미술관>이 보인다. 왜 아주亞州인가! 아주대학교의 부설미술관이라 그런가. 아니다. 아시아에도 제대로 된 미술관이 있어야 한다는 이재흥목사의 신념 때문이다. 그래 영어로 <아시아뮤지엄>이다. 오리엔탈의 위대함을 전세계에 알리는게 목표. 연면적 500평의 국내 최대의 개인미술관. 평당 공사비가 400만원이다. 그럼 공사비만 20억.

도대체 이 많은 돈이 어디서 났을까. 필자의 집요한 질문에 이 목사는 이렇게 답한다. 의지가 있으면 돈은 따라옴. 전면의 거대한 가벽프레임으로 건축은 실제보다 훨씬 웅장해 보인다. 유일하게 열려있는 동쪽을 바라본다. 지하수를 끌어 올려 만든 인공연못 위로 비틀어진 오버브리지가 2층으로 관람객을 유도한다. 물위를 걷는다. 거대한 연못 덕에 <아주 미술관>은 이제 수상미술관이 된다.

좌측의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가 미술관 현관이다. 한 면에 77개의 작은 창이 뚫려있다. 4면 반복. 그럼 308개네. 공사팀 고생 좀 했겠다. 현관 들어서면 3개층에 걸쳐 하늘로 열린 콘크리트 상자가 아트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작은 창들이 또다른 그림자 창을 만들어내면서 건축을 찬미한다.

워낙 문화에 굶주린 대전시민들이 줄지어 모여든다. 대전의 유일한 사설미술관이 2004년에서야 들어섰으니. 요새 뜨는 도시 대전의 주택보급율은 거의 100%지만 문화보급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특별전시실을 지나면 반원형의 상설전시실이다. 원형의 콘크리트 벽을 따라 계단을 돌아 오르다보면 건축주가 30년간 모았다는 진기한 소장품들을 즐길 수 있다. 상설전시실 지나면 어느덧 2층 놀이마당이다. 여기서 연못 위의 오버브리지와 만난다. 간단한 식사와 원두커피를 제공하는 카페 뮤제와 홍성에서 이사온 한옥 <항여조>가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항여조恒如朝. "항상 아침 같아라"라는 뜻. 좋다. 항여조에 들어가 앉아 음미할 수 있는 녹차의 향기가 <아주 미술관>을 휩싸고 돈다.

역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우린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한옥의 깊은 맛을 넘어 설 수 없다. 왜냐고요! 나이가 350살이니까. 바람도 잘 통하고 따뜻하고. 이게 인문학적인 건축의 힘이다. 원래 우리 한옥은 집주인인 선비와 목수의 토론을 통해 만들어진다. 집주인의 학문이 높을수록 건축은 업그레이드되고. 이렇듯 인문학적인 건축은 자연 속에 다소곳이 들어가 자연을 완성하나니. 그래 이곳 화암동은 아주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의 명소가 된다.

한옥 안마당은 결혼식이나 음악회도 열리는 대전 유일의 문화마당. 이제 <아주 미술관>은 대전의 자랑이 된다. 직원 22명을 이끌고 대전에서 문화전도사로 고군분투하는 외로운 목사님의 정열에 경의를 표한다.

현재 <율란다컬렉션-유럽회화>전 전시중. 기간 2007.12.23-2008.3.2.

아주미술관 주소 http://www.asiamuseum.org/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일요일은 오후 1시에 문을 여니 착오 없으시길.

매주 월요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