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기 오래된 사진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나간 일들이 필름처럼 조로록 이어지고
잊고있던 일들이 하나하나 그리워져서 올립니다.
가을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바람한점이되어 기분좋은 상상을 줄수있을듯하여 올립니다.
유럽일기-그 먼 꿈의 편린..
여행내내 흥분되었던 내 안의 이야기들
조잘대던 여행일기속의 깨알같은 글씨들이 살아난다.
해마다 겨울이되면 나를 유혹하는 여행병은 그렇게 나의 등을 떠밀었나보다.
유럽여행을 시작하면서
수첩의 첫장에 써넣었던 여행각오 와 아이사진...
5살아이에게 아무말도 해주지않고 홀연히 떠났던 여행길...
결코 가볍게 날수없었던 마흔을 목전에 둔 아줌마인 나에게
이 여행은 시작부터 무거운 마음이 베낭의 무게를 짓누르고 있었다.
한달간의 일정으로 떠났던 유럽여행은
마흔을 넘기기전에 꼭 하고싶었던 나의 꿈이였다.
결혼이라는 일상이 주는 무게만큼
꿈안에서 자유로워지고싶었던 한 여자의 꿈..
소홀히 지나칠수있었지만
나는 꿈대로 하고싶었다.
그 한달의 여행이 내 남은 삶을 더 단단하게 잡아줄것을 알았기에
더 절실히 떠나고싶었던건지 모른다.
꼭 봐야할곳과 꼭 가고싶었던곳...그리고 보고싶었던 화가의 꿈들..
유럽 8개국의 전시장을 돌면서
흥분했던 그 발걸음이 내내 나를 설레이게 할것이다.
60년이란 그리 길지않는 생을 살면서 100여점의 자화상을 남긴 렘블란트와
동생 테오에게자신을 보이며 결국 함께 고이잠들어 있는 고흐와
천재성의 칭호만큼 화려한 여성편력과 수많은 습작을 남긴 피카소
우울한 생 만큼이나 습습한 스케치들의 에곤쉴레...
그들의 화려함 이면에 그들의 아픔들을 만날수있었던 유럽여행은
내 삶속에 빛나지않는 작은 부분들을 어루만져 줄수있는 여유를 만들었다.
나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나를 위로하는 법에 대해
화가들의 자화상전에서 만났던 고흐의 얼굴과
렘블란트의 놀라 동그랗게 눈뜨었던 그 표정을 잊을수가 없었다.
무엇에 그리 놀라웠을까?
무엇이 그가 스스로 귀를 자를수밖에 없었는지..
그림앞에 서 있으면서도
화가에 대해 어느것도 진실이 통하지않을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어렵게 찾은 오베르쉬즈오와르의 고흐마을...
빠리에서 교외로 1시간쯤 있는 작고 한가로운 마을..
이곳에선 곳곳에 고흐가 그렸던 작품속 실제 배경이 되고있는 건물들앞에
그림안내도를 붙혀놓았다.
고흐가 거닐었던 그 까마귀나는 밀밭길을 따라 걸어본다.
어딘가에 숨쉬는, 밀밭사이로 바람이 다녀가듯.
그렇게 고흐의 숨결은 곳곳에서 우리의 가슴을 간질대로 있었다.
오베르 쉬즈의 성당과
고흐의 밀밭앞에는 이제 조용히 쉬고있는 고흐와 테오만이 있을 뿐이다.
고흐의 외로움 처럼 하늘은 온통 회색빛을 내고있었다.
그곳에 가면 왠지...고흐의 마음한켠 외로움을 알수있을듯한 그런느낌이 든다.
이 사진은 스위스 베른에서 였다.
늦은저녁에 도착한 베른은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서둘러 나와 눈오는 거리를 거닐며 가족을 그리워했었다.
여행일주일이 되었을때 아이와의 통화에서 한없이 울었던 우리는
울고나서는 조금 편해질수있었던듯하다.
그래도 해가지는 저녁이 되면 한국에 있던 가족이 그리워 마음이 낮아지곤했었다.
나를 열광시켰던 마티스를 만나고싶었다.
강렬한 색상과 간결한 터치의 그에게서 나는 열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곳은 마티스 뮤지엄이 있는 니스에서 였다.
그토록 보고싶었던 렘블란트,고흐,마티스,에곤쉴레를 차례대로 만나면서
길위에 있다는것이 이렇게 행복할수있다는걸 예전엔 몰랐었다.
길을 걸으면서
내 눈길을 당기는 곳을 만나면 어김없이 숨고르기를 한다.
작은벤치에 올려져있는 토분들까지도 나를 흥분시킨다
눈물이 많은 나에게
감동이 많은 나에게
이 여행은 어쩌면 좀더 단단하게 살게하기위해 힘든여행을 시작했는데
난 아직도 두부처럼 온군데가 물컹물컹한 느낌이다.
부서지지않고 물컹거리지않아야한다...
몇해전 내그림은 온통 붉은지붕의 프라하가 차지했었다.
강렬하게 빛나는 붉은지붕에 미쳐있었던 나에게 프라하가 갖는 의미는
설레임 이상이였다.
물의 도시 베네찌아와 붉은지붕 까를교의 프라하가 여행내내 나를 흔들고 설레이게 했던것인데..
안개낀 프라하의 볼타강을 잊을수가 없다.
물이 가까이 흐르는 베네찌아.
한사람씩 통과해야할만큼 좁은 골목길이 도시전체를 숨바꼭질로 만든다.
이정표도 빈약해...길을 잃어버리는 체험을 하게 만든다.
수녀원을 개조해 만든 호스텔을 나와 골목길로만 하루종일 섭렵했다.
이렇다할 뮤지엄을 찾기보다 더 감탄이 넘치는 도시...배네찌아...
이제 다시 돌아가야한다.
한달간의 일정으로 치러진 나의 마흔을 맞이하는 여행은 이렇게 끝이나고 있었다.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마셨던 첫 커피맛을 결코 잊을수없을것같다.
10시간의 비행으로 모든일정이 끝나는데....시작은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일상의 시작...다시 아이의 엄마로 남편의 아내로써 해야할일을 하는 그런나의 일상이 시작이다.
여행은 스스로 자신을 찾기위한 긴 여정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원하던것을 찾을수도 있고, 전혀다른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나를 볼수있기도 하고..
30일간의 여행에서 무얼찾고 얻게되었는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무얼까....얼른답할수있는 거라면 애써이곳까지 오지않았겠지....
이 여행이 내 일상속에서 비타민처럼 나를 깨워주겠지.
그것만은 확신할수있을것같다....그렇게 되기를....내삶이 긴 여행인것처럼 그렇게 느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Lilly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