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 최후의 격전지, 푸른 여름이 내려앉다
제주도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맞서 싸운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내 나라, 내 땅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죠.
13세기, 강화도에서 시작하여 진도를 거쳐 제주도까지 3년 동안 이어진 지난한 항쟁.
고려 무신정권의 정예 부대였던 삼별초는 처음엔 몽골에 대항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개경 정부와 몽골에 대항했고, 최후의 격전지인 제주도 항파두리에서 결국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이후 고려는 14세기 중반까지 원의 정치적 관리 하에 놓이게 되죠.
강화도의 고려궁지, 마산의 몽고정, 진도의 용장산성과 더불어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 있는 몽고 침략과 지배의 흔적들.
제주 올레 제16코스에서 만난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호젓한 숲길에 기대어 푸른 여름을 녹여내고 있었습니다.
걸음의 끝에서 우연히 만나는 길.
한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작은 숲길이지만, 생각지 못한 길을 느끼는 마음은 이미 사각 프레임을 벗어난지 오래입니다.
옅은 S자를 그리며 이어지는 길.
서울에선 쉬이 만나지 못하는 습습한 그림자가 뜨거운 여름 햇살을 살짝 가려줍니다.
제주 올레 제16코스 중간 즈음에 위치한 '장수물'.
700여년 전, 삼별초를 이끌었던 김통정 장군이 몽고군이 침략하자 성에서 뛰어 내려 밟은 돌에 발자국이 생겼다는 곳입니다.
움푹 팬 이곳에서 마르지 않는 물이 솟아 나오고 있지요.
하지만, 마실 수는 없으니 조심하세요. 후훗-
제주의 푸른 바다를 닮은 말 한 마리가 초록으로 뒤덮인 항파두성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올레길을 상징하는 지표.
이 녀석만 따라 다니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사람이 드문드문 오고가도 녀석이 있어 이 성에서 항몽했던 넋들이 외롭지 않겠죠.
항파두성, 사적 396호
1271년(고려 원종 12년), 삼별초가 진도로부터 제주도로 밀려 들어오면서 대장 김통정 장군이 쌓은 항파두성.
그 길이만 15리, 즉 4km 정도 되겠네요.
돌로 쌓은 내성과 흙으로 쌓은 외성으로 된 이중 성인데, 외려 토성이 지금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당시 이 성 안에는 여러 관아와 군사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고, 강화도와 진도를 거쳐온 개경의 관리와 그 가족들,
그리고 삼별초의 장병들이 기거하여 일종의 망명정부의 수도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최후의 호국을 당당하게 이뤄냈던 것이죠.
호젓한 숲길과 더불어 아늑하기까지 한 항파두성.
당시엔 더욱더 큰 숲에 가려져 완벽한 요새였을 겁니다.
1만여 명에 달하는 여몽연합군의 총공격을 받아 함락되었던 이곳.
그땐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이 되었어도 묵은 세월이 흐르고보니, 이곳에도 푸른 여름이 내려앉았습니다.
문득,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약인지, 혹은 무지(無知)인지-
때론 잊혀지는 게 무섭고 두렵기도 하니까요.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고려 조정이 몽고군과 강화를 맺는 것에 반대해 끝까지 반몽 항쟁을 벌였던 삼별초.
학창시절, 단골 시험문제였을 만큼 고려 역사에 있어 중요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곳에서 당시의 흔적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불과 30여년 전에서야 보수, 복원 작업을 시작했고, 사적으로 지정된 건 10년이 조금 넘었거든요.
항몽유적 전시관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여러 도구와 항몽 관련 상상화가 벽면 가득 걸려 있습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전제는 통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만약 삼별초가 제주까지 내려오지 않았다면' 고려의 역사가 바뀌었겠죠?
치열했던 3년 간의 항쟁.
그 '진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내 나라 땅이지만, 내 것 같지 않은 섬, 제주.
제주가 품고 있는 자연만으로도 극한의 신비를 느낄 수 있지만,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이야기들은 더욱더 놀랍습니다.
혹시 아나요?
올레길을 걷다가 수백, 수천 년 세월이 빚어낸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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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 위치 :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 문의 : 064-713-1968 * 참고 사이트 : 제주올레 www.jejuolle.org 제주관광정보 www.jejutour.g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