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 세월의 향기가 깃든 마당 깊은 집, 한옥에서의 하루

충북 옥천  춘추민속관

오랜 이야기가 깃든 집

충북 옥천 구읍에 위치한 '춘추민속관'.

까치발을 들면 담장 안 마당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언제나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이곳.

두 채의 고택이 하나의 마당을 두고 어우러져 있습니다.

'문향헌'이라 불리는 한 쪽 건물은 애국지사 범재 김규흥(1872~1936, 중국 혁명정부의 도독부 총 참의겸 육군소장) 선생의 생가로

기록에 의하면 1760년(영조 36)에 건립된 것이라 하는데요, 기와집 85칸과 초가 12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향헌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우국지사 괴장 오상규 선생이 거처한 곳인데요,

상량문에 건축연대를 알 수 있는 글귀(1856년 12월, 철종 7년)가 적혀 있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요.

지금은 우물정자 형태의 문향헌과 행랑채, 뒷간, 우물 등 55칸, 그리고 체험관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당에는 정승집의 상징인 회화나무가 오랜 세월동안 동고동락하며 이 집을 지켜오고 있어 품격을 더하고 있지요.

소담스러운 안채 마당.

하룻밤 신세를 진 아늑한 곳.

남여상열지사.

들고 나는 문이 달랐던 남자와 여자의 길.

'김돌이'와 '김순이'의 명패를 단 화장실인들 예외일 리 없소.

그리워서 아름다운 추억

지금 생각하니 아까워 죽겠습니다.

해묵은 세월을 짊어지고 수백 년 동안 버텼을 작은 한옥.

군불 떼는 아궁이가 있었고, 누릇하게 익은 가마솥 밥이 유난히 맛있었던 어린 시절의 할머니댁.

지금은 온데간데 없는 소반 위에 묵은 김치 한 접시, 소주 한 병 얹어 놓고 손녀를 동무 삼아 반주를 드시던 할아버지는

열두 살 기억으로 멈춰버렸습니다.

그래서 더 아련하고 애틋한 시골 소경.

그 땐 한창 개량화 바람이 불어서 시골의 집들을 허물고 벽돌집으로 새집 장만 하는 것이 유행이었지요.

전 너무 어렸고, 어른들은 부모를 위하는 마음 뿐인지라 그냥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생각이 조금만 더 자랐더라면 그때 그 집을 손대지 못하게 했을 텐데-

다시 생각해도 정말 아까워 죽겠습니다.

'춘추민속관' 뒤뜰에 있는 아주 특별한 우물.

흥선대원군의 증손자 이석.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어마어마한 위엄.

서슬 퍼런 흥선대원군의 한 마디에 한반도가 들썩였던 시절이 있었지요.

불과 100여 년 전에-

그 시절, 경회루 복원 공사 때 세금을 내느라 이 집도 원래 주인을 잃었답니다.

그 후 어려운 시절을 겪어내며 돌고 돌아 지금의 '춘추민속관'으로 다시 태어난 이곳.

아픈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자리에 남아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여름이라 길어진 저녁 시간, 한 바탕 잔치가 벌어집니다.

주인 아주머니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지요.

감칠맛 도는 밑반찬들이 더위에 지친 입맛을 살갑게 어루만져줍니다.

가마솥에서 갓 지은 밥은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효소 식초로 맛을 낸 갖가지 김치는 그 향만 맡아도 건강해지는 것만 같아요.

평소 먹던 양보다 과하게 먹었는데도 다음 날 아침 배가 그닥 불편하지 않았던 걸 보면 한옥의 기운이 남다르긴한가 봅니다.

 떡볶이, 할매코피, 옥수수, 한과.

간식이지만 정식만큼 맛났던 주전부리.

우리네 잔치에 풍성한 먹을거리와 풍악이 빠지면 섭섭하지요.

춘추민속관 마당에 신명나는 놀이판이 벌어졌습니다.

올해 방년 10세라는 이지은 양의 판소리 한 대목, 어린 목소리인데도 아주 구성지더군요.

지금도 열심히 소리 공부 중이라니, 앞으로 10년 쯤 후엔 어엿한 숙녀가 된 모습을 꼭 볼 수 있겠지요.

한복도, 얼굴도 너무 고운 권숙진 선생님의 춤사위가 마당에 둘러 앉은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한복 치마 아래 살짝 내비치는 버선코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은 춤사위.

여름 밤, 달 밝은 마당에서의 놀이판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집의 경계가 없는 한옥.

혹자는 한옥 살이가 불편하다고도 합니다.

옛 사람들이 어찌 살았는지 신기하다 하고, 마냥 낯선 눈길로 한옥을 들여다보곤 하지요.

하지만, 한옥은 시간이 멈추어버린 옛 집이 아닙니다.

항상 역사는 흐르고, 역사가 품은 과거가 전통이 되는 법이니, 지금의 우리도 먼 훗날 후손들의 눈에는 신기하고 불편해보이지 않을까요?

만약 그러한 시선을 내가 받고 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한옥을 대하는 마음의 답을 쉬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옥천 구읍에 위치한 '춘추민속관'.

담장 밖에서 보면 너른 마당이 있는 소담스러운 한옥이지만, 이곳에서의 하루를 품다 보면 그 깊이가 결코 얕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이제는 한옥을 '체험'해야 하는 현실이 다소 안타깝지만, 그래도 어떻습니까.

하루쯤 살아보며 구수한 옛 이야기를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것도 좋겠지요.

현재 이곳에선 한옥 숙박 뿐만 아니라, 한옥짓기 체험학교, 한옥마실 음악회, 전통혼례 등을 진행하고 있고,

직접 담근 가양주, 효소 식초, 조청, 장류 등으로 우리네 풍성한 먹을거리도 내어놓고 있습니다.

달 밝은 여름밤, 낭만이 깃든 한옥에서의 하루를 또 한 번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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