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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한국 가고 싶습니다. 유승준이 19일 오후 홍콩에서 인터뷰를 열고 13년간 한국 땅을 밟지 못한 심경을 털어놨다. /아프리카 방송 캡처 |
"한국에 대한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노트북 배터리를 100%로 충전했다. 혹여 인터넷 서버가 다운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접속자가 몰릴까. 솔직히 버퍼링이 두려웠다. 가수 유승준(혹은 미국인 스티브 유)이 병역 기피 의혹으로 입국 금지 처분을 받은 지 13년 만에 국민 앞에 섰다. 홍콩에서 진행된 그의 인터뷰는 19일 오후 10시 30분(한국 시각) 아프리카TV 인터넷 채널을 통해 국내에 생생히 전달됐다.
먼저 밝히자면 기자는 1990년대 후반 가요계를 정복했던 유승준의 팬이었다. 그가 최지우와 함께 찍은 '나나나' 뮤직비디오는 녹화해 매일 봤고, '열정'을 부르며 깊게 눌러 쓴 모자를 던질 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연가' 무대에서 수줍게 짓는 미소에 넋이 나갔고 '목표달성 토요일' 등에서 뽐내는 예능감에 배꼽을 잡고 쓰러졌다.
하지만 (군대 문제에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있어야 할 여성인 까닭에) 2002년 유승준의 병역 기피 의혹 사건 이후에는 눈을 감았다. 침묵의 또 다른 의미는 동정이었다. "내가 그였다고 해도 참 힘든 결정을 내렸을 것 같다"는 나름의 공감과 연민이었다. 적어도 이번 인터뷰를 보기 전까지는 13년간 묵힌 마음이 어느 정도 확고했다.
인터뷰 후? 솔직한 속내로는 화가 난다. 더 건장해진 체격의 그가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무릎을 꿇고 한숨을 푹푹 내쉬는 걸 보니 가슴이 찡했지만 "왜 13년 만인 지금 대중 앞에 섰는가"라는 질문에 "지난해까지만 해도 제 자존심이 허락을 안 했다"고 지나치게 적나라한 답을 내놓는 그를 보며 또다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13년간 조국과 팬들을 등진 이유가 그깟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니. 도대체 무슨 자존심인지, 그 실체는 방송을 봐도 여전히 알 수 없다. 차라리 "앞에 서는 게 무서웠다"고 울며 말하는 게 나을 뻔했다. 유승준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한국발 비난을 아예 외면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미국으로 도망간 계집애라며 날 소재로 한 코미디를 본 뒤부터 한국 기사나 방송을 아예 안 봤다. 최근 들어서 보기 시작했다"고 말한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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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년 만에 고개 숙인 스티브 유. 유승준은 이날 인터뷰에서 2002년 입국 금지 사태에 대한 속내,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조국에 대한 섭섭함 등을 토로했다. /아프리카 방송 캡처 |
"변명의 자리는 아니다"고 초반 운을 뗐지만 유승준은 75분간 자기변명만을 늘어놨다. 방송에서 공공연히 군대에 가겠다고 한 건 매체 특성상 부인할 수 없어서 그랬던 거고, 입대 직전 미국 시민권을 딴 건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과 밥줄이 달린 회사를 위해서였고, 계획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피한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가족 탓' '회사 탓' '미국 탓' '한국 탓'을 반복했다.
특히 그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누구도 욕할 수 없는 숭고한 부성애를 자신이 저지른 잘못된 행동의 보호막으로 썼다. 아버지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계속 유지했고, 아버지 때문에 입대 직전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아버지가 '네가 군대 가는 게 어쩌면 더 이기적인 것'이라고 했다"는 등 지극히 가족적인 이야기를 굳이 꺼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 분노가 마침내 절정에 달하는 순간, 갑자기 찾아든 이 연민의 감정은 뭐란 말인가. 자신의 속내를 밝히는 인터뷰이긴 하지만 워낙 민감한 문제라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처럼 느껴져 혀를 차게 된다. 내용도 방식도 모두 기대 이하였다. 유승준이 "아내가 한국 땅을 밟고 싶으면 군대에 가라고 했는데 죄송하지만 한국에 대한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번복할 수가 없었다. 바보 같았지만 그 문제에서 도망가고 싶었다"고 할 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문장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방패 삼았던 그는 자신의 아들을 내세우며 감정에 호소했다. 자존심을 굽히고 13년 만에 공개 사과를 한 이유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떳떳이 한국 땅을 밟고 싶다였다. "아들이 왜 한국에 못 가냐고 물었을 때 '아빠가 잘못한 게 있어서'라고 말했지만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제 문제 때문에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면 안 되겠다"며 또다른 부성애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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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이제 그만 용서해 주세요. 유승준은 19일 인터뷰에서 한국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한 뒤 법무부의 입국 금지 해제 선처를 호소했다. /이새롬 기자 |
머릿속에서 벌레가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가족을 위해 13년 만에 자존심을 굽히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가장. 법적으론 군대에 갈 수 없지만 굳이 가겠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미국인 남자. 일이 힘들어 오히려 군대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대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는 왕년의 아름다운 청년. 나라 잃은 표정으로 한숨만 내쉬고 있는 유승준(혹은 스티브 유)을 보는 시선이 흐릿해졌다.
자존심 때문에 13년간 자신이 태어나고 중학생 때까지 자란 모국을 등져 놓고, 75분간 눈물 섞인 심경을 고백하는 유승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엔터테이너 스티브 유가 아닌 인간 유승준으로 속내를 밝힌 거라면 어느 정도 진심이 통했을지도 모른다. 징집대상에서 해제된 나이에 이르러서야 "지금이라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대에 가라면 가겠다"는 그의 진정성을 누가 믿어줄 것인가. 차가운 여론을 탓할 일이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먼 그다.
ps. Y : 괘씸죄의 처벌이 이렇게 클 줄, 27살 청년 유승준은 몰랐겠지요?
[더팩트 │ 박소영 기자 comet568@tf.co.kr]
[연예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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