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부터 ‘잊힐 권리’가 도입·시행되는 가운데 각종 사이트에 올려진 게시글과 사진을 캡처한 모습. 문화일보 자료사진
내달 시행하는 ‘인터넷서 잊힐 권리’
公人 업무관련 게시물 · 언론인 기사는 해당 안돼
인터넷에 올렸던 자신의 글이나 사진 등 게시물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하는 이른바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이 6월부터 시행된다. 게시물의 흔적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에게는 분명 ‘희소식’이겠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사업 환경이 악화된다며 만만치 않게 반발하고 있다. 잊힐 권리를 둘러싸고 ‘헌법상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는 것’이냐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냐는 식의 태생적인 논란부터, 상품평을 쓰고 대가를 지불한 글의 경우 잊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지처럼 세부 각론에 이르기까지 논란은 여전하다. 우리나라에 첫 도입되는 ‘잊힐 권리’를 문답으로 알아본다.
1. 잊힐 권리란…
인터넷이나 SNS 등에 올린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게시판 관리자나 검색 서비스 사업자에게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개인이 올린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발휘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지난 4월 29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잊힐 권리 보장 방안으로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오는 6월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인터넷에서 지울 수 없는 과거 흔적으로 인해 취업이나 승진, 결혼 등에서 피해를 봤던 사람들이 잊힐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보다 쉽게 어려움에서 구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손쉽게 자신이 올린 글을 삭제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댓글이 달렸거나 사이트에서 탈퇴한 경우 등은 삭제 권한이 없어 삭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인터넷에 올린 사적인 정보는 개인의 것이지만, 정보 삭제 권한은 기업에 있어 글을 삭제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2. 어떻게 시작됐나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는 2014년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이용자의 시효가 지난 채무 관련 기사에 대해 검색 사업자인 구글의 검색 목록 삭제 책임을 인정한 이후 관심이 크게 고조됐다. 당시 스페인 국적 마이로 코스테자 곤살레스가 구글을 상대로 10여 년 전 실린 주택경매 공고에 대한 게시글이 검색 결과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한 것을 당시 사법재판소가 받아들여 구글에 삭제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
하지만 잊힐 권리에 대한 주장과 논의가 시작된 것은 이보다도 훨씬 앞선다. 2012년 유럽연합(EU)은 2014년 발효를 목표로 잊힐 권리를 명문화한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확정한 바 있는데, 세계적으로 잊힐 권리가 입법화된 첫 사례로 꼽힌다. 당시 정보보호법에는 자신의 정보를 비롯해 링크와 복사, 제3자가 게재한 글에 들어간 자신의 사적 정보까지 모두 포함돼 있다.
3. 어떻게 행사하나
방통위가 발표한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우선 이용자는 직접 자기게시물에 대한 삭제를 시도한 뒤 직접 삭제가 어려운 경우 게시판 관리자에게 접근배제 요청을 한다. 만약 이용자 본인이 직접 삭제할 수 있다면, 게시판 관리자는 접근배제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게시물에 대해 부당하게 접근배제를 요청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게시판 관리자의 접근배제 조치 후 검색 목록 배제를 원하면 검색서비스사업자에게 검색 목록 배제 요청을 할 수 있다. 게시판 관리자가 사이트 관리 중단 등으로 인해 접근배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검색서비스 사업자에게 직접 검색 목록 배제 요청을 할 수도 있다.
자기게시물 접근배제를 요청하려면 △접근배제를 원하는 게시물과 게시물의 위치자료(URL) △요청하는 사람이 해당 게시물을 올렸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 △접근배제를 요청하는 사유 등을 명시해야 한다.
이 같은 요청을 받은 게시판 관리자는 제출된 서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당 게시물이 이용자 본인이 올린 게시물이라고 합리적으로 판단되면 블라인드 처리하는 방법으로 접근배제 조치를 하도록 했다.
접근배제 요청 게시물과 동일 서비스 내에서 같은 ID나 별명, IP 주소로 게시한 다른 게시물 등을 비교해 본인임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배제 조치하도록 한 것이다. 접근배제 요청을 받아들이면 그 자리에 관련 내용을 알려 다른 사람이 이의가 있을 경우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4. 어떤 경우 대상이 되나
방통위는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을 통해 이용자 본인이 게시한 글이나 댓글, 사진, 동영상은 물론 이에 준하는 기타 게시물’을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의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방통위가 예시한 대상은 자기게시물에 댓글이 달려 게시물 내용을 인터넷에서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 회원 탈퇴 또는 1년 동안 계정 미사용 등으로 회원 정보가 파기됨에 따라 이용자 본인이 직접 삭제하기 어려운 게시물인 경우 등을 들었다.
아울러 회원 계정 정보를 분실해 이용자 본인이 게시물을 삭제하기 힘들거나 게시판 관리자가 사업 폐지 등 탓에 사이트 관리를 중단한 경우, 게시판 관리자가 게시물 삭제 권한을 제공하지 않아 이용자가 스스로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는 경우 등도 접근배제 요청 대상으로 제시했다.
본인이 작성했지만 그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사람이 게시한 게시물은 대상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작성했지만 그 전부나 일부를 본인이 게시한 것은 배제요청 대상이 된다.
5. 사망한 사람도 대상이 되나
생전에 접근배제 요청권 행사를 위임한 경우 위임 지정을 받은 사람이 요청할 수 있다. 유족 역시 접근배제 요청이 가능하다. 사망자가 정보통신망을 통해 게시한 글, 사진, 동영상 등 생존해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상은 같다. 유족은 사망한 사람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으로 제한된다. 다만, 배우자·직계비속이 없는 경우는 직계존속이, 직계존속도 없는 경우는 형제자매도 유족으로 인정한다. 같은 순위의 유족이 2명 이상인 경우 유족 전원이 합의해 요청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정인이나 유족은 사망사실증명서, 접근배제 요청인 지정서나 가족관계 지정서 등 사망자와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 접근배제 요청 게시물이 사망자가 게시한 것인지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 등을 제출해야 한다. 유족과 지정인의 의견이 다르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정인의 의견에 따르도록 했다.
6. 예외는 없나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이 자신의 공적 업무와 관련해 게시한 게시물은 적용대상이 아니다. 논란이 됐던 기사도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방통위 관계자는 “공직자나 언론기관 관계인 등이 게시한 게시물이 업무에 관한 것으로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는 경우 등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는 제외토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 접근배제 요청을 받은 게시물이 다른 법률 또는 법령에서 위임한 명령 등에 따라 접근 차단이나 삭제가 금지돼 게시판 관리자가 해당 게시물을 보존해야 할 의무가 생겼을 때는 접근배제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
7. 해외의 ‘잊힐 권리’
앞서 언급한 대로 잊힐 권리 논의는 EU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됐다. 2012년 1월 세계 최초로 잊힐 권리에 대한 법제화 논의가 이뤄졌고, 2014년 5월 ECJ는 검색 사업자 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EU는 지난 4월 14일 잊힐 권리 등을 포함한 ‘EU 개인정보보호법제’ 입법을 마무리했다. 다만 회원국들의 국내 규정 정비 등을 위해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미국은 2015년 1월 1일 시행된 캘리포니아법에서 미성년자에 한해 정보의 삭제 요청권을 인정하는 입법을 완료했다. 하지만 미국 전체적으로는 별다른 논의 움직임은 없다. 일본은 본인 식별이 가능한 개인데이터가 본래 합법적인 이용 목적에서 벗어나 취급되고 있는 경우 ‘개인정보 이용 정지 요구권’을 인정한 법령을 두고 있다. 2014년 10월에는 이름 검색 때 범죄 연루 검색 결과 표시를 금지해 달라며 구글 미국 본사를 상대로 한 검색 결과의 일부 삭제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도쿄(東京)지방재판소가 받아들이기도 했다.
8. 한국과의 차이점
다른 나라의 경우 제3자가 올린 게시물에 대해서도 잊힐 권리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지만, 이번에 방통위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자기 스스로 올린 게시물에 대해 삭제나 블라인드 처리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
방통위가 자신 스스로의 게시물로 범위를 한정한 데는 EU와 달리 제3자 게시물에 대해 임시조치 등 구제수단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에서는 복제 자료에 대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는 언론기사에 대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제3자 권리침해 게시물에 대한 규정이 있다는 것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재 사각지대에 놓인 자기게시물에 대한 관리권을 상실한 이용자를 효과적으로 구제하면서도 표현의 자유 침해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9. 알 권리·표현 자유 침해인가
일각에서는 잊힐 권리가 제3자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 논의 과정에서는 잊힐 권리를 다른 사람이 게시한 글 등에도 폭넓게 인정할 경우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로운 의견 표출이 제약받는 등 표현의 자유 침해가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특히 정치인이나 유명인·범죄자가 잊힐 권리를 주장하면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자기에 관한 게시물’이 아니라 ‘자기가 게시한 게시물’을 대상으로 했고, 공인의 게시물과 기사 등은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은 상당폭 줄었다. 오히려 헌법상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10. 남은 논란은 없나
방통위는 6월부터 가이드라인을 시행 추진하려고 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너무 빠르다는 입장이다. 특히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만큼 시기를 늦춰 달라는 요구를 내놓고 있다.
세세한 논란으로 남은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상품평’이다. 상품평의 경우 사업자가 약관에 소유권을 사업자로 표기한 데다 게시자에게 포인트를 지급하는 등 대가를 주고 구매한 것이기 때문에 사업자가 접근배제 요청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잊힐 권리 취지 등을 고려하면 게시자 본인이 희망할 경우 블라인드 조치를 해 주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가를 주고 구매한 경우는 게시자가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해 사업자가 접근배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보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의 경우 레벨업 등 사용자에게 일종의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은지 등의 논란은 여전하다.
장석범 기자 bum@munhwa.com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5&oid=021&aid=00022749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