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2 ) / 김별
당신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다만 모든 게 꿈이었을 겁니다
몹쓸병이라도 든 것처럼 지독히도 아프게
꽃은 피고 지고
죄많은 청춘을 벼랑 끝에 서게 하던 봄날은
차라리 잔인한 악몽이었거니
그 세월 넘어
나무처럼 숲을 이루고
강물처럼 바다를 이루었건만
한순간도 쉼없이 파도는 일어
싱그러운 생명의 영감으로 출렁였어도
격동의 생은
거대한 해일의 범람을 견디지 못 하였거니
온 산을 다 태운 단풍처럼
온몸을 불사른 은행나무의
장엄한 분신도
그대의 복사꽃빛 물든 볼과
조각 같은 몸이 없었다면
그대의 뜨거운 입김이 양귀비 진액이 되어
죽어가던 나를 살려내지 못했다면
첫사랑
고것이 꿈속의 일이었듯
사랑을 모독하는 것들의 새빨간 거짓이었거나
몽상이었듯
어떤 아름다움도 열정도
첫눈이 되지는 못했을 겁니다
겨울이 오기도 전부터 미리 봄을 기다리는 오랜
그리움 끝에
찬서리가 되었거나
겨울비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그대
첫눈이 되어
내게로 온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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