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풍나무 독서 // 김경숙
단풍 드는 서가는 나무들 공동묘지
사방 틈마다 박혀있는책은 유골이다
좁은 책장 속 숨겨둔 숲으로 걸어가
연고없는 주검들이 엉켜있는 무덤에다
술 따르고 손 모아 절을 받는다
형광은 이름 모를 봉분 책갈피쯤 앉아
눈썹 끝에 불 피워 살풀이해주고
바람은 박수 소매불러 추임새 엮는다
책 표지마다 오색 눈물로 헌화하고
제 살을 저며 향을 사르는 노을
저승 떠도는 유언 한 질 필사한다
어스름에 저장되는 뼛속 붉은 나무들
숨 넘어가는 말씀을 손질해 염하고
쓰다듬고 정리하고 씻어주는 장의사
이승은 입관하는 유품을 어루만지며
단풍나무 독서는 음복하는 사전이다
◎ 김경숙 시집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