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시 모음> 김세실의 '첫 미사' 외
+ 첫 미사
오늘 한 사람
당신의 부름 받고 사제가 되어
첫 미사 봉헌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리어
온 세상이 당신을 향해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뜨겁게 뜨겁게
바치는 이 사제의
수줍은 손길 사이로
큰 자비가 머무시어
미사를 드리는 우리가
하나 되게 하소서!!
파르르 떠는
이 사제의 속눈썹 사이로
감추지 못한 방울방울
기쁨의 눈물이 모여
큰 구원의 강물
은총으로 흐르게 하소서!!
오늘 이 작은 영혼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라는 당신의 큰 사랑 품고
몸소 태워 촛불이 된
다미안 신부님을 닮아,
새로운 요셉 다미안이 되어
당신과 이웃을 위해 오롯이
이 한 몸 바치나이다.
강복하소서!!
새롭게 하소서!!
온 세상이 당신의
참 사랑에 눈뜨고 귀 열어
추위에 떨지 않고
포근한 당신 품에
달려들게 하소서!!
걸어야 할 평생 고행의 길
어떠한 경우에도
순명할 수 있도록
손 잡아주시고 참된
지혜로 깨닫게 하소서!!
오늘 이 아들
당신을 닮아
참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큰 축복 내리시어,
사랑의 사제로 살게 하소서!!
빛의 사제로 살게 하소서!!
(김세실·시인, 부산 출생)
*우리 본당 신부님 첫 미사에서
+ 미사 전
말없는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때묻은 일상들이
게떼처럼 옆 발질로
기어다닌다
삶을 고해라 했던가
그래서 진흙 뻘엔
일상의 거품들을 토해내며
게떼들이 저리도 기어다니는가
잠시 후면
떨리는 손으로
빗장을 푸는 시간
지금 내
가슴에서는
무엇이 기어 나오고 있는 것일까
(진명희·시인, 1959-)
+ 미사 중
때로 얼룩진
육신
방황과 배회로
떠도는 영혼
당신의 말씀을
온몸으로 받아 내리면
나의 가슴은 씻겨질까
당신의 말씀과
함께하면
나의 두 다리는
쉼터를 만날 수 있을까
손끝에
육신과 영혼의 무게를 얹고
올리는 기도,
알렐루야
(진명희·시인, 1959-)
+ 미사 후
어둠의 저쪽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 둘
영광을 찾아 떠나고
십자가의 불빛
머리에 이고
아직도 어둠을 벗어나지 못한 나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가장 깊은 어둠을
만난 이만이
아침빛을 먼저 만날 수 있다
먼저 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나는 또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진명희·시인, 1959-)
+ 저녁미사
낮에는 매미 우는 소리에 백양나무 잎이 떨리더니
오후부터는 다시 비가 내렸습니다
오늘밤이 지나면 동갑이던 당신과 나의 나이는
이제 꼭 두 살 차이가 납니다
저녁에는 아직 다 짓지 못한 성당에서
미사를 올렸습니다
당신에게는 늘 이렇게 조촐한 기도밖에 드리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아직은 큰 슬픔을 모르며 자라고 있습니다
당신이 몰라보게 커가는 딸아이의 밝은 목소리를
당신도 가끔은 듣다 갔으면 싶습니다
이별이 길고 그리움도 길어서
나는 가끔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을 놓고
망연히 하늘을 건너는 구름을 보곤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당신에게도 떳떳치 못해
작은 슬픔에 기대지 말고 삶으로 이기며 일어서기 위해
발걸음을 고쳐 딛곤 합니다
젖은 세상이 마르고 눈물 없는 기도를 올리는 날들이
많아지길 나도 기원합니다
아직도 어둠이 깊고 이 세상의 무거운 장막은 걷히지 않아
여럿이 손을 잡고 헤쳐가야 할 길이 멉니다
당신도 그곳에서 평안하여 이 땅을 위해 기도해주길 빕니다
아직 이 땅에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이곳에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해
당신의 마음도 늘 이 땅으로 쏟아지길 빕니다
(도종환·시인, 1954-)
+ 미사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본떠
천주(天主)
하느님을 찬미하고
속죄를 원하며
은총을 기원하는
가톨릭교회
최대의 예배의식.
세속의 때가 많이 묻은
이 몸과 마음과 영혼
참사랑과 신실한 믿음에서 먼
나의 얕은 생이
미사가 한번
드려질 때마다
조금은 더 깨끗해지고
한치는 더 깊어지게 하소서.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