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으로 제가 보고 겪고 느낀 일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글을 시작하기전에 한가지 확인해둘 일은, 여기 서술되는 모든 상황과 장면들은 저 개인이 본 사실(fact)과 주관적인 생각이니,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지적해 주시면 확인 후 수정하겠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던 날 4월 16일은 제 양력 생일 다음날이었습니다. 분당사는 친구의 늦은 생일 축하 전화를 받고 무심히 TV를 켰던 저는 화면 가득 바닷속에 기울어진 대형 여객선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일인가하고 짬짬이 TV를 켜서 확인해보니, 정부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의 '승객 전원구조'라는 발표를 보고, 다행이구나 생각하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집에서 TV를 켜보고 더 놀랐습니다. 탑승자가 4백 7십여명이고 탈출에 성공해서 구조된 사람은 불과 170여명, 나머지 승객은 생사를 모르는 실종자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낮에 제가 뉴스를 잘못봤나하고 인터넷 들어와서 뒤져보니, 정부 집계가 엉터리였다는 겁니다. 세상에, 아무리 경황없는 상황이라 실수도 할 수 있다지만, 302명이 실종상태인데 정부발표가 '전원구조'라니.

그 이후 이어지는 보도들과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한 행태, 고위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정신나간 짓거리들, 희생자분들 가족들의 통곡과 구조된 분들의 울먹이는 인터뷰를 보고 있자니, 울화통도 터지고 안타깝고 슬프고.....거의 멘붕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불면증이 생겨 하루에 2~3시간 밖에 못자다가, '이러지 말고 직접 현장에 가서 작은 일이라도 도와주자'하고 결심하고 휴가를 이용해 진도로 갔습니다. 원래 휴가를 내고 4월 28, 29일 2일간 진도로 가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려던 계획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29,30, 5월 1일로 바뀌었습니다.

TV에 나왔던 전남 자원봉사센터로 전화를 했더니, 자신들은 잘 모르니 진도실내체육관에 있는 자원봉사센터로 연락을 하라며 전화번호 061- 542-9985을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전화해서 자원봉사 갈건데 상황이 어떠냐고 물어본 후, 진도까지 가는 6시간 가량되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떠날때는 비가 오고 있었고, 중간에 고속버스 안에서 세차게 퍼붓는 비를 보며 악천후 속에 고생하고 있을 가족분들과 구조요원들을 생각하며 걱정했는데, 다행히 광주터미널에 내렸을 때는 비가 그치고 있었습니다.

원래 광주-진도간 버스는 진도읍에 있는 터미널로 바로 갑니다만, 사고가 터진 이후 진도실내 체육관을 찾는 분들이 많아서 버스 운전기사분께서 체육관 앞에 세워주시더군요. 버스에서 내리는데, 어떤 여성분이 같이 내리시길래 체육관 가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같이 걸으며 체육관 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분은 전북 남원에서 오신 분인데,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대기 상태라 시간이 있어서 자원봉사하려고 왔다고 하시더군요. 에비공직자로서 훌륭한 마음자세라고 생각했습니다.

체육관 도착하니 건물 앞에 자원봉사센터 부스가 있길래, 가서 등록하고, 바로 남자숙소로 안내되었습니다. 한 두시간 대기하고 있는데, 자봉센터에 계신 분이 오셔서, 장기(3일 이상)로 머물 팽목항 야간행정 남성1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밤샐수 있냐고 해서 3일있을 예정이라고 말씀드렸고, 팽목항 자원봉사센터로 연락을 취하고 저녁을 간단히 먹은 후 바로 팽목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진도 실내 체육관과 팽목항 사이엔 아침 5시부터 밤10시까지 20분간격으로 셔틀버스가 운행중입니다. 희생자 가족분들과 자원봉사자, 공무원 등이 주로 이용합니다.

팽목항에 내려서 부스들이 설치되어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주차장이 있고, 그 주변엔 시신 부검소 천막이 설치되어있습니다. 좀 지나면 jtbc,방송차량과 손석희 뉴스9 부스가 있고, 팩트TV와 고발뉴스도 그 주변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듯 했습니다.

팽목항 들어가는 길은 외길이라 그냥 길따라 죽 걸어들어가니 길이 왼쪽으로 구부러지는 곳에 오른쪽으로 방파제인지 접안 시설인지가 있고, 그 둑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간단한 제삿상이 차려져 있습니다. 낮에는 스님이 한 분 오셔서 염불하시고, 그 곁에 희생자 가족분이 무릅꿇고 앉아서 기도하곤 합니다. 길이 꺾어지는 모퉁이 왼쪽에 매점과 화장실이 있고, 오른쪽 바닷가쪽에 희생자 가족 대책위 천막이 있는데, 천막주위로 경찰관들이 둘러서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근처에 접근하면 매서운 눈초리로 째려보더군요.

희생자 가족대책위 천막을 지나면 밥차와 진도군청+전라남도 현장 상황실 부스가 있고, 그 곁에 자원봉사센터 부스가 있습니다. 그 오른쪽엔 소방본부 현장상황실과 해경상황실 등의 관공서가 있고 맞은편에 H중공업 자원봉사 식당부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길따라 죽 들어가면 이런 저런 자원봉사 부스들과 의료진 부스, 식당차, 세탁차량 등이 있고 길 끝에 왼쪽에 희생자 가족분들 숙소용 천막과 자원봉사자들 숙소 천막이 있습니다.

해안선을 따라서 바라보면 한 참 떨어진 곳에 이번 사고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해경 진도관제센터(VTS)건물이 보입니다.

사고 수역은 팽목항에서 10km이상 떨어진 곳이고 섬에 가려져있어 육안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팽목항 자원봉사센터에 도착해서 접수하고 야간 행정 업무에 대해 간단한 교육을 받은 후, 센터에 대기하면서 업무도 도와주고 짬짬이 일손도 도와주고 하다가, 밤이되어 자원봉사자 한 분과 함께 업무를 인계받았습니다.

장면1.

야간 근무조로 오신 자원봉사자 분들 배치 및 안내를 끝내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다가 새벽 1시쯤 되었을까요? 출출해서 사발면 하나 끓여먹고 있는데, 갑자기 대책위 천막 쪽 바닷가에서 한 어머니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렇게 가슴이 미어지는 통곡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배가 고파 컵라면을 먹고 있던 저는 그 순간, 형언 할 수없는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식을 잃고 저리 슬피 우는 부모님이 계신데, 비록 두블록 떨어진 곳이지만 내 배가 고프다고 사발면을 처먹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도 미안하고, 그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안타깝고 슬퍼서 저도 모르게 따라 울었습니다. 사발면 먹다 울어보긴 처음입니다. 쑥스럽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하고......마음이 복잡해서 얼른 눈물을 훔쳐내고 안운척 했지만, 사발면이 넘어가질 않더군요. 자원봉사자들이 울면, 희생자 가족분들의 슬픔을 자극할까봐 소리내어 울면안됩니다.

장면2.

새벽 2시쯤이었을 겁니다. 추리닝 바지차림의 한 어머니가 수척한 얼굴에 촛점 풀린 눈동자로 부스 앞을 터덜터덜 걸어서 바닷가 쪽으로 향했습니다. 잠시뒤 다시 터벅터벅 가족 숙소쪽으로 걸어가시더군요. 한 30분 지났을까 또 그분이 멍한 눈동자로 앞을 바라보며 터벅터벅 바닷가 쪽으로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잠시뒤 또 숙소쪽으로 터벅터벅.......잠이 오시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아무리 14일째 접어들었다 해도 잠이 편히 올리가 없겠죠. 그럴수록 몸과 마음을 추스려서 주무셔야할텐데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가 잠이 올리가 없었습니다.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새며 중간중간 걸려오는 전화받고 업무처리 하다가 아침 8시경에 근무교대하러 나온 자원봉사자 2분과 현장 팀장님과 업무교대했습니다.

장면3.

짐을 체육관 숙소에 놔두고 와서, 실내체육관으로 다시 갔는데, 머리는 복잡하고 숙소 천막안이 찜통에다가 바로 옆에 식당천막이 있어서 사람들 말소리와 설겆이하는 소리 등등으로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 자려고 시도해 보다가, 잠이 안와서 샤워나 해야겠다고 체육관에서 떨어져 있는 잔디밭(헬기 착륙장으로 쓰이고 있었음)옆 작은 건물에 있는 샤워장으로 갔는데, 더운 물이 안나온다는 말을 듣고 아직 쌀쌀한 아침이라 감기 걸릴까봐 샤워를 포기한 채 다시 숙소로 갔습니다. 해는 높이떴고 숙소안은 너무 더워 땀은 삐질삐질 흐르고, 어디 그늘진데 앉을데도 없고,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일거리도 없는 상태라 작업대기중인 다른 자원봉사자분들도 고통스러워하긴 매한가지.

결국 자원봉사자들 중 몇분이 진도군 자원봉사센터 담당 국장에게 항의하고, 국장님이 직접 숙소로 와서 자원봉사자분들과 면담을 하게됐습니다. 그분왈 "준비된 자원 봉사자라면 세면도구라던가 고무장갑 등을 챙겨서 오십니다" 아니 그러면 자원봉사하러 오는 사람들은 텐트도 챙겨서 와야하나요?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정이 열악하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 면담자리에서 자원봉사자 분들의 주된 컴플레인은 숙소문제도 있지만, 작업할당이 안되서 그냥 체육관근처에서 대기만 하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경남 창원에서 오신 50대 중반 아저씨와 70가량 되어보이시는 경상도에서 오신 할아버지 한 분, 또 대전에서 오신 연세 있으신 분 등등 몇일 전에 와서 아직 팽목항에 한번도 못가본 분들이 작업배분에 대해 항의를 하셨습니다. 제 생각인데 아마 팽목항 쪽에 작업 보낼때, 연세가 너무 많으신 분들은 작업지원요청하는 분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연세 있으신 분들은 체육관에만 머물게 되고, 작업할게 많지 않은 체육관에선 자주 대기를 하게되니까, 답답해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자원봉사 센터 입장에선 일도 없는데 무턱대고 봉사자들을 공간이 협소한 팽목항으로 보낼수도 없고, 애매한 입장인것 같았습니다.

면담의 결과, 다음날 아침 팽목항 작업에 연세있으신 분들 6분이 한조가 되어 식당차 지원작업에 배정되셨고, 자원봉사 센터 측의 강한 요청으로 진도군이 피해자 가족분들 숙소로 지어진 천막들 옆에 한동을 자원봉사자들 숙소로 할당해주었습니다. 전남 자원봉사센터는 공무원들이 아니고, 관의 지원을 받는 일종의 사단법인형태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예산이나 천막등 숙소 확보에서 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공무원들의 협조를 요청해야하는 입장이니 '을'일수 밖에 없겠지요. 비근한 예로 팽목항 자원봉사센터 부스에는 컴퓨터가 없었습니다. 옆에 전남도청 부스에는 책상마다 컴퓨터가 1대씩 있었는데말이죠. 제가 한마디 하니까 거기 공무원분이 다음날 한 대 설치하자고 자봉센터 팀장님과 이야기 하시더군요.

장면4.

저녁이 되어 밥을 챙겨먹고, 팽목항으로 2일째 야간행정업무보조를 하러 갔습니다. 제가 도착하고 얼마후, 그러니까 저녁때쯤이죠, 김비서 기자라고 자칭하는 한 사람이 오더니 팀장님한테 자원봉사자 인적상황을 확인해달라며 뭐라뭐라 요청을 하더군요. 자원봉사자 인적사항은 전적으로 개인정보에 해당됩니다.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이용해선 안되지요. 팀장님이 명부를 찾아보더니, 그런 사람 없다고 했습니다. 그 기자는 명함도 안주고 그냥 볼펜으로 자기 이름하고 전화번호 적어주더니 가버렸습니다. 이후 밤이되어 제가 업무를 인계받고 근무하고 있는데, 카메라 삼발이를 어깨에 짊어진 한 50대 후반쯤되어보이는 아저씨가 부스로 오시더니 불쑥 자기는 김비서 카메라맨인데, 왜 여기 앉아있냐고 저한테 물어보는 겁니다. 어이도 없고 황당해서, 부스앞에 걸려있는 '자원봉사자 대기소' 현수막을 가리키며 이거 안보이세요? 물었더니, 지금 밤인데 무슨일을 하냐고 묻는 겁니다. 제가 '뭐하시는 분이세요?'하고 물었더니 계속 김비서에서 왔다고만하는 겁니다. 그래서 야간에 주인없는 부스들 물품도 지켜야하고, 희생자 가족분들 계속 돌아다니시니 불편한점 없도록 시중도 들어드려야한다고 말했더니 가버리더군요.

그런데 그 다음날 낮 11시경에 체육관에 있는 자원봉사센터에 그 카메라맨이란 분이 또 나타나 센터에서 행정일 보조하던 자원봉사자 젊은 여성분과 인터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끼어들어 아저씨 어제 저한테 황당한 질문 하신분이죠? 했더니 맞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과 같이온 사람이 PD인 것 같아서 기자냐? 물었더니 기자 아니고 PD랍니다. 그래서 무슨 프로그램이냐? 담당 CP가 누구냐 물었더니 기획안을 보여주더군요. 알고 보니 김비서 직원들이 아니고, 외주업체에서 나온 사람들이더군요. 무슨 특집 프로그램을 기획한 모양인데 자원봉사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좀 어이가 없더군요. 제 학교 후배인 김비서 교양국 PD이름을 대며 아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습니다.

장면5.

다시 둘째날 야간근무시간으로 돌아와서, 새벽 3시쯤 됐을까? 어떤 3~40대로 보이는 남성 한 분이 전남도청+진도군청 부스를 사진을 찍는 겁니다. 새벽 3시경이라 거기 있던 공무원들 대부분 의자에 앉아서 쪽잠을 자거나 졸고 있어서 눈치를 못챘는데, 자봉센터 부스가 바로옆이고 제가 안자고 있어서 봤거든요. 아무말없이 사진을 찍더니 그냥 가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여성 공무원 한 분께 방금 어떤 사람이 사진찍어 갔는데 봤냐고 물었더니 못봤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어디로 갔냐고 하길래 저쪽 길따라 가더라고 했더니 좀 데려와 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따라가봤더니 희생자 가족분들 숙소 지나서 한참을 더 가있더군요. 그쪽은 길을 막아놔서 더 못가니까 돌아올수 밖에. 그래서 제가 다른 야간근무 자원 봉사자 몇분이랑 같이가서 아저씨 기자세요? 사진은 왜 찍으세요? 허락없이 사진찍으면 초상권 침해인거 모르세요? 저분들 현장나와서 지금 보름가까이 저러고 있는데 새벽3시에 안피곤하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자기는 그냥 개인이라면서, 미안하다고, 사진 지우겠다고 하길래, 그런가보다 하고 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공무원들 불안한 기색을 나타내며 사진 지우는거 확인했냐고 물어보더군요. 제 사진도 아니고 해서 지우는걸 확인은 못했다고 했더니, 여전히 불안한 기색. 아마 최근 대통령이 국가개조 운운하면서 자리보전만하려는 공무원들 내보내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불안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권력이 무섭긴 무섭더군요.

장면6.

그동안 23세 이하의 젊은 분들은 자원봉사자로 안받겠다는 방침이 변한 것인지, 경남 진주에 있는 과학기술대학교 학생들이 1, 2학년이 주축이 되어 40여명 대거 자원봉사하러 왔습니다. 그 중 한 학생이 저와 같이 야간행정 업무를 맡았는데요, 이 친구 업무 투입된 후에 정신없이 먹기만 하더군요. 사발면에, 음료수에 과자에 빵에, 또 음료수에, 너무 먹어대길래 눈치껏 먹으라고 한마디 해줬는데도 인스턴트 오뎅3통에 초코바에 음료수에......하도 먹길래 처음엔 배가 많이 고팠나보다 했는데, 좀 너무한 것 같아서 잔소리 한마디 했습니다. 여기 자원봉사하러 왔어요 먹으러 왔어요? 그랬더니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게 아직 어린 친구라 눈치가 없어서 그런 것 같긴한데.....좀 너무 하다 싶더군요. 배가 부르니 잠이 올 수 밖에요. 새벽엔 앉아서 졸길래 안쓰러워서 책상에 엎드려 좀 자라고 했습니다. 이럴거면 자원봉사 안오는게 낫습니다. 그 친구와 함께온 다른 학생들은 옷을 든든히 챙겨오질 못한 상태로 난로도 없는 부스에 배치되어 덜덜 떨고 있는데......

장면7.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젊은 유학생 한 분과 그 분의 고등학교때 친구 한 분이 자원봉사하러 오셨습니다. 큰아버지께서 자원봉사활동을 몇 일하고 가시면서, 방학이라 한국에 와있는 조카에게 이곳의 자원봉사를 권유하셨다는군요. 고등학교때 친구랑 둘이 왔는데, 참 보기 좋았습니다. 일도 나름 열심히 하더군요.

장면8.

야간 근무를 마치고 주간 근무팅과 인수인계를 막 끝낸 상황에서 소셜디자이너라는 분 한 분이 센터로 찾아오셔서, 현재 팽목항과 진도군으로 전달되어오는 전국 각지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편지와 위로 쪽지 등을 게시할 수 있는 큰 벽보판을 팽목항에 설치해서 희생자 부모님들과 이곳을 찾는 분들께 위로가 되게하자는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이미 모 기업과 협의해서 벽보용 판은 지원받기로 했다는군요. 그래서 작업하실때 인원 필요하시면 여기로 말씀주시면 자원봉사자 분들을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장면9.

제가 집으로 오려고 체육관 앞 자봉부스 근처에서 목포역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50대쯤으로 보이는 어머니 한분이 조심스럽게 다가오시더니 팽목항으로 가도 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2 학년인 자녀를 둔 학부모시라는데, 말도 조심스럽게 하시고, 말씀 중간에 눈물을 보이시는데, 보고 있던 저도 울컥해서 참느라 혼났습니다. 그래서, 팽목항이 지금 하나의 장례식장이고 옆에선 시신이 올라오고있는 곳이라, 행동을 조심해주십사 당부드린 다음에 셔틀버스 타는 곳과 타는 시간, 자원봉사 센터위치 등을 알려드렸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더이상 희생자 가족분들만의 슬픔이 아니고 온국민의 슬픔이란걸 새삼 느꼈습니다.

장면 10.

자원봉사 센터에 등록하고 활동한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KTX 열차표를 1회에 한 해 무료로 발급해 줍니다. 저도 자원봉사 활동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KTX를 이용했는데요, 목포역광장에 도착하니 거기 분향소가 설치되어있었고, 한쪽 벽면에 가로 5~6미터 세로 2미터는 족히 넘는 큰 벽보판이 붙어있는데, 추모글을 적은 쪽지가 빼곡하게 붙어있고, 그 옆에는 생존자 구조를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빼곡히 매달려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목포시민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부산역에 도착해서 계단을 내려오니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근처에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부산지회 분들이 붙여놓은 노란색 벽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내용중 다음과 같은 글귀들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가 침묵하면 '세월호'는 계속된다" 

"정치인들은 이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바로 잡으십시오"

저도 한 마디 추가하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봤던 특이사항들을 장면별로 대충 정리해보았습니다.

간딘히 요약하자면, 진도군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은 302명이 실종되고 그중 76명이 사건 발생 16일째인 지금까지도 시신도 못찾고 있는 참사 현장이자, 거대한 장례식장입니다.

온 나라가 화나있고 슬퍼하고 있고, 희생자 가족분들은 아직도 수백명이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한채 시신만이라도 건져달라고 울고 있는 곳입니다. 아니, 울다가 지쳐있는 곳이지요. 관청과 언론들은 더욱 행동을 조심해야겠고, 전국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희생자 가족분들을 도와주러 오신 자원봉사자 분들도 몸과 마음가짐을 조심해야하는 장소입니다.

전라남도와 진도군 자원봉사센터에서 체육관과 팽목항에 자원봉사자들이 처음 왔을때 교육시키는 11가지 행동수칙이 있습니다만, 이곳 일워 게시판에 사진올리는 기능이 작동을 하지 않아 보여드리진 못하구요, 상식적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장례식장에 와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거나, 인증샷 찍는 정신나간 짓을 할거면 안가시는게 도움이 됩니다.

허드렛일 궂은 일 마다않고, 내 가족의 일이라 생각하고 도와 주실분들은 꼭 한 번 가셔서 대한민국에 '돈과 출세만 밝히는 이기주의자들'만 사는건 아니라는 사실을 실천으로 증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수백명의 희생자 가족분들이 거기 계십니다. 그분들을 도와드릴 손길은 여전히 필요하구요, 다만, 하루짜리 단기 방문보다는 3일 이상 장기방문하셔서, 실제적인 도움이 되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진도 실내 체육관과 팽목항에는 하루 24시간 내내 희생자 가족분들을 돌보고 사고 수습을 위해 애쓰고 있는 이름 모를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노고에 국민의 한사람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특히 팽목항 자원봉사센터에서, 여러가지 이상한 에피소드가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고 성실하게 일주일째 활동하고 있는 공무원시험 준비중이라는 여성 자원봉사자 두 분과 센터 직원인 성격좋은 유팀장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와 격려의 말씀 전합니다. 그리고 사고 다음날 바로 자원봉사 오셔서 지금까지 묵묵히 희생자 가족분들 곁에서 궂은일 마다않고 있는 어떤 자원봉사자 한 분과 머리가 허옇게 샌 고령에도 청소와 짐나르는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더 할 일 없냐고 물어보시는 어르신 등등 자원봉사자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이런 분들이 '진짜 애국자이고 진짜 민주시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오래 같이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들 무사히 봉사활동 잘 마치시길 기원하고, 아직도 바닷속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분들이 하루빨리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일간 워스트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