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톡 - 여성포털이지데이

압충

괜찮은 저녁식사였다. 파스타의 면발은 적당히 익어 혀에서 꿈틀거렸고,

포도주도 파스타의 새콤한 소스와 어우러져서 먹는 중에도 군침이 돌게 만들었다. 스위스 산 치즈는 느끼하지 않고 고소했고,

2차 메인 요리로 나온 방어스테이크는 먹는 사람도 모르게 접시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최고의 요리였고,

어쩌면 최고의 저녁식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천국의 요리가 자기 앞에 차려져도 먹는 사람의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최고의 식사가 아니다.

먹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서 최고의 식사가 될 수도 있고 최악의 식사가 될 수도 있다.

V양도 눈앞에 앉아있는 맞선 상대가 아니었다면 이 훌륭한, 세상에서 맛보기 드문 저녁식사의 예술적인 맛을 몇 배는

더 음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나온 맞선 상대가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명한 의사인데다가 종합병원 하나를 소유하고 있고 부모님은 시골의 대지주였다. 키가 크지 않았지만 170센티는 넘겼고 머리숱이 없기는 하지만 대머리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서른을 갓 넘기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늙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고 말을 재미없게 하긴 했지만 유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V양의 신경을 가장 거슬리는 점은 단 하나, 바로 그의 어눌한 말투였다. 흔히 말하는 ‘혀 짧은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심한 것이었는데 간단한 발음도 흘리다시피 발음해서 알아듣지 못하고 문맥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처음에 그녀의 테이블 앞에서 그가 “V씨죠?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말을 했을 때 밀려오는 실망감을 도저히 몰아낼 수가 없었다. ‘ㅊ, ㅈ, ㅅ’ 이라는 자음이 명백하게 있는데도 그 모든 발음이 ‘ㄷ’ 이라는 자음 하나로 통일될 수 있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눌한 그의 말투를 견디다 못한 그녀가 가시 돋친 어조로 ‘말투가 좀 어눌하신 것 같으세요’라고 말하니 그는 멋쩍게 웃었다.

“하하, 제가 혀 짧은 소리를 많이 낸다고 그러더군요. 어릴 때는 발음이 정확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요즘에 많이 어눌해졌어요. 허허, 뭐 그럴 수도 있죠. 어릴 때 발음의 반만 되어도 그런 소리는 안 들을 텐데 말이죠. 아, 술 때문은 아닙니다.

술이 혀를 둔감하게 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많이 마시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정말 깬다. 여자란 남자가 가지고 있는 백 가지 장점보다 한 가지 단점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 저 남자의

혀 짧은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배경이나 외모가 나쁜 것도 아니고 매너가 문제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단지 그 어눌한 말투 때문에 점수를 잃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 선도 그다지 좋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무렵 웨이터가 쟁반을 한 손에 받쳐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메인요리는 즐거우셨습니까? 디저트를 맛볼 시간입니다.”

“음, 그래요. 늘 먹던 건 준비가능한가요? 요즘은 구하기 어렵다던데…….”

“다행히도 얼마 전에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쟁반에 가져온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숙녀 분께서도 같은 걸 드시겠습니까?”

“네? 아, 네……. 같은 걸로 주세요.”

V양의 영희는 비싼 식당에 대한 무리를 숨기기 위해서 자신도 뭔가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같은 재료의 디저트를

주문했다. 웨이터는 쟁반을 테이블 가운데 놓고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즐거운 저녁 되십시오.”

빨리 디저트를 먹고 이 끔찍한 저녁식사를 마칠 생각 밖에 없던 그녀는 웨이터가 뚜껑을 열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쟁반 안에는 새까만 딱정벌레 같은 것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벌레 같은 것을 보고 놀라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저녁식사 디저트로 이런 녀석들을 마주할 용기까지는 없었다. 그녀는 흠칫 의자등받이에 등을 붙이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것들을 가리켰다.

“이이이이, 이게 뭐예요? 벌레 아니예요?”

“네, 벌레죠. 이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 중의 별미입니다.”

“벌레를요?”

V양은 벌레를 자기 접시에 담는 남자의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웨이터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다른 테이블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노인에게 가고 있었다.

그녀의 눈초리를 읽은 남자의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갔다.

“왜 그렇게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있죠? 단지 음식의 겉모양 때문에 무서워하고 있군요.”

“벌레잖아요.”

V양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그가 이 벌레를 먹어 보라는 말을 한다면 곧장 그의 얼굴을 때릴 기세였다.

“음, 글쎄요. 음식에 대한 논쟁을 가끔 할 때가 있는데 이런 자리에서 할 줄은 몰랐네요. 허허.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음식의 맛 자체도 있지만 음식 외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하죠. 식당에 흐르는 배경음악만으로도

최고의 재료를 얼마든지 싸구려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남자는 벌레들이 쟁반 밖으로 달아나려는 것을 막기 위해 뚜껑을 닫았다.

재빨리 탈출에 성공한 한 녀석이 융단 사이로 쪼르르르 그 작은 발을 놀렸다.

V양은 남자가 포크로 벌레 한 마리를 찍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맛이란 것은 참 이상한 감각이죠. 맛을 느끼기 위해서 온 몸의 오감이 모두 반응을 해야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요.

눈이 즐겁기 위해서 동그란 요리나 네모난 요리를 만들고, 코가 즐겁기 위해서 향을 내게 하고, 귀가 즐겁기 위해 음악을 틀죠.

심지어는 맛을 즐기기 위해 통증까지 이용하죠. 매운 맛은 사실 미（味）가 아니고 통（痛）이죠.

사람들은 자기 신경이 괴로워하는 반응을 맛이라고 여기면서 매운 음식을 잘만 먹잖아요. 저도 똑같아요.

비록 당신이 보기엔 이걸 먹는 걸 조금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내가 볼 때에는 훌륭한 디저트예요.”

그의 진지한 설명에 V양은 미안함이 들었다. 단지 발음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단지 벌레를 먹는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것만 같아서 괜히 머쓱해졌다. 내가 너무 편견이 심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빈 접시만 바라보고

있는 찰나 식당 한 구석이 시끄러워졌다. 한족 테이블에서 웨이터가 한 늙은 손님을 부축하고 있었는데,

술을 마신 건지 원래 몸이 약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몸을 가누질 못했다.

웨이터가 그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우자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는데 그 소리가 동물의 울부짖음처럼 섬뜻하게

느껴졌다. 남자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 분은 원래 말을 못하는 분이죠. 건강이 안좋으신데도 계속 이 식당을 찾아오시는데, 저 분도 이 압충들을 좋아하죠.

아, 이 벌레들을 압충이라고 부른답니다.

V양은 남자가 포크로 벌레의 허리를 찍어 입으로 넣는 모습을 보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석어석하는 작은 소리가 그녀의 귀로 들어와 남자의 이빨에 짓이겨지는 벌레의 형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남자는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 부르르 눈썹을 떨었다.

“이 맛을 당신이 느낄 수 없다는 게 아쉽군요. 정말 훌륭한 디저트인데 말이죠.”

“손님, 조심하십시오!”

웨이터가 소리치기 무섭게 부축을 받던 늙은 손님이 중심을 잃고 거의 넘어질 뻔 했다.

그가 V양의 테이블 가장자리를 잡고 간신히 중심을 잡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그와 부딪혔을 지도 몰랐다.

“저 분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이 가게의 단골손님인데 얼마 전부터 몸이 쇠약해져서 말이죠.

그래서 종종 이렇게 몸을 가누지 못하신답니다.”

웨이터가 황망히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V양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늙은 손님의 얼굴을 흘깃 보다가

얼굴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가 입을 열어 뭔가 말하려 했지만 울부짖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내지 못하고

웨이터의 부축을 받아서 식당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녀의 혓바닥이 뻣뻣하게 굳는 것만 같았다. 심장박동이 이상한 리듬으로 뛰기 시작했고, 붉은 융단이 눈앞에 드리워진 듯

시선이 혼란스러웠다. 남자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갈래요.”

“네?”

“가야겠어요. 이만 일어날 게요.”

“아니, 갑자기 그러시는 이유가…….”

“일어나지 말아요!”

V양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녀는 깜짝 놀란 남자를 두고 그대로 식당 문을 박차고 나갔다.

V양은 요즘 그 남자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 남자가 아무리 많은 장점이 있다고 해도 그날 본 두 가지의 장면을

지우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는 테이블 위로 쓰러질 뻔 했던 늙은 손님의 혀가 입 안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영문을 모른 채 말을 걸었던 남자의 입 안에서 압충 한 마리가 그의 혀를 야금야금 뜯어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End -

출처:웃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