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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칼럼(대중문화)
 

어머니의 딸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여성 감독의 고찰... [앵커], [윤시내가 사라졌다] 쭈니 22.09.06 15:47:44 58읽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만큼이나 어머니와 딸의 관계도 참 미묘하다. 같은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연대감도 있지만 극명한 세대 차이에 의한 대립도 존재한다. 지난 주말, 나는 두 편의 한국 영화, [앵커]와 [윤시내가 사라졌다]를 봤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두 편 모두 여성 감독의 영화라는 것. 물론 그것을 제외하고는 내용도, 장르도, 그리고 딸을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도 180도로 다르다. [앵커]의 어머니는 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반면,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어머니는 딸에 대해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그래서 이 두 영화를 비교하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같은 듯, 다른 영화이니까.


[앵커] - '경단녀'의 두려움을 심리 공포 스릴러로 표현하다.

감독 : 정지연

주연 : 천우희, 신하균, 이혜영

9시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YBC의 간판 아나운서 정세라(천우희)에게 어느 날 뉴스 시작 5분 전 제보 전화가 걸려 온다. 윤미소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제보자는 누군가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으며 자신의 딸을 죽이고, 곧 자신도 죽이러 올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라는 장난 전화로 생각하여 끊는다.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세라는 엄마인 소정(이혜영)의 충고를 받고 윤미소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욕조에서 살해당한 여자아이와 옷장에서 목을 매고 죽어 있는 윤미소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날 이후 세라는 윤미소의 환영에 시달리고, 윤미소의 집을 몰래 침입한 정신과 의사 최인호(신하균)와 만나게 되면서 증세는 점점 심해진다. 그리고 결국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호기롭게 [앵커]를 기대작 리스트에 올려놓았지만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 나서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앵커]가 심리 스릴러 영화인 줄 알았는데, 예고편에서의 [앵커]는 공포 스릴러에 가까웠고,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까지 등장했다. 도저히 혼자 이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한테 같이 보자고 사정사정해서 두 겁쟁이가 거실 소파에서 서로 부둥켜 앉고 덜덜 떨며 영화를 봤다. 올여름도 이렇게 억지로 공포 영화 한 편 보고 여름을 넘기긴 했다.

나에게 [앵커]는 꽤 무서운 영화였다. 내가 두려워하는 모든 요소들이 총집합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라가 인호의 최면 치료 중, 지하 창고로 내려가 귀신의 얼굴을 확인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장면은 최근 본 영화 중에서도 가장 무서웠다. (최근에 본 공포 영화가 [앵커] 뿐이라는 사실이 함정) 하지만 [앵커]는 무섭기만 한 영화가 아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은근히 여운이 남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임신을 하면 경력이 단절되는 '경단녀'에 대한 여성의 공포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심리 공포 스릴러의 장르 속에 잘 녹여냈다. (이후 스포 존재)

솔직히 정지연 감독은 스릴러 장르에서의 재능은 없어 보인다. 마지막 반전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꽁꽁 숨겨야 하지만 [앵커]에서는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오픈해 버렸다. 영화 오프닝 장면, 세라의 악몽만 보더라도 세라와 소정의 관계를 유추할 수가 있다. 여기에 세라, 소정의 과거와 너무나도 유사한 윤미소 사건이 쐐기를 박는다. 특히 인호에 의해 윤미소가 다중인격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것을 짜 맞춰진다. 소정은 세라의 또 다른 인격이라는 사실이...

여기에서 키포인트는 임신으로 인한 경력단절이다. 과거, YBC의 차세대 '앵커'로 주목받던 소정은 세라를 혼외 임신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는다. 그렇기에 세라를 향한 소정의 시선은 모성애와 증오가 뒤섞여 있다. 결혼하여 임신을 한 세라에게 너의 경력을 위해서 아기를 지우라고 조언하는 소정. 그녀의 조언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현실적인 충고이며, 세라를 낳음으로써 모든 것을 잃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다. 그러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세라 입장에서 소정의 충고는 최악의 공포가 된다. 만약 아기를 낳는다면 나도 엄마처럼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세라를 향해 '너만 없었더라면...'이라고 울부짖던 엄마의 모습에 대한 과거의 트라우마까지 되살아 난다.

정지연 감독은 소정과 세라의 이야기에 인호를 던져 놓음으로써 관객에게 혼란을 주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애초에 이 영화에서 남성의 역할은 제한되어 있다. 세라의 아빠가 누구인지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이 영화의 공포는 남성에 의한 것이 아닌, 여성은 임신을 하면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해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사회 시스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하여 임신을 한 여성의 자리는 다른 젊은 여성으로 대체된다. 수많은 경쟁을 뚫고 엄청난 노력 끝에 자리에 오른 그녀들은 단지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리에서 밀려 난다.

세라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당연히 뱃속의 아기를 낳고 싶고, 9시 뉴스 아나운서의 자리도 지키고 싶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두 가지를 모두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 달 전에 자살한 소정이 세라의 또 다른 자아가 되어 악역의 자리를 자처한 것이다. 세라에게 뱃속 아기를 지우라고 조언하고, 세라의 자리를 차지한 젊은 아나운서를 찾아가서 살해를 시도한다. 그렇게 영화는 심리 공포 스릴러 속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는 현대 여성들의 공포를 그려낸다. 이 공포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수많은 여성 직장인들이 임신으로 인한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까. 현실을 담아낸 공포는 더욱 무서운 법이다. [앵커]는 스릴러 영화로서는 실망스러웠지만,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무서웠던 이유는 바로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시내가 사라졌다] - 짝퉁과 관종 사이... 다른 듯 서로 같은 모녀의 진심

감독 : 김진화

주연 : 이주영, 오민애

20년간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로 활동해온 신순이(오민애)는 윤시내의 고별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영광을 얻는다. 하지만 콘서트 직전 윤시내는 사라지고, 콘서트가 취소되며 순이는 좌절에 빠진다. 결국 순이는 직접 윤시내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한편 순이의 딸이자 유튜버인 장하다(이주영)는 '짱아 TV' 라이브 방송 중 우연히 찍힌 ' 연시내'의 영상이 조회 수 떡상을 기록하자 대박 콘텐츠를 꿈꾸며 윤시내를 찾아 나선 순이의 여정에 동참한다. 짝퉁 가수와 관종 유튜버의 여정. 이 모녀는 서로 티격태격하며 결국 서로의 진심을 확인해 나간다.

1975년 데뷔하여 80년대 초, 중반을 풍미했던 가수 윤시내. 내가 옛날 사람이긴 하지만 사실 나는 윤시내 세대는 아니다. 내가 대중가요에 열광하기 시작했던 것은 이지연, 이선희가 활약하던 80년대 후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시내의 노래는 내 귀에도 익숙하다.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윤시내의 레전드 히트곡 'DJ에게'로 시작하여 영화 후반부 순이와 윤시내가 조우하는 순간에는 '그대에서 벗어나고파'로 마무리한다. 젊은 시절 윤시내에 열광하지 않았지만, 영화에서 윤시내의 곡이 흘러나오는 순간 묘한 감정이 느껴지더라. 7080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김진화 감독의 승부수가 통한 셈이다.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신구 조화가 돋보인다. 순이는 7080 세대를 대변한다. 그녀는 윤시내에 대한 동경으로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로 살아왔다. 하다는 엄마를 짝퉁 가수라고 비하하지만 순이는 '연시내'라는 이름을 내려놓는 순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연시내'는 순이가 20년간 모든 열정을 바쳐서 만든 그녀의 또 다른 자아인 셈이다.

사정은 하다도 마찬가지이다. 한때 남친과 함께 알콩달콩 연애 영상을 올리며 인기 유튜버로 등극했던 그녀는 하지만 남친과 헤어진 후에 '짱하 TV'라는 새 계정을 만들었지만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영상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고 슈퍼챗을 쏘면 살아 있는 것을 느끼는 하다. 그녀는 유튜버가 장래 희망 1위라는 MZ 세대를 대변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순이와 하다는 묘하게 닮았다. 자신의 본 모습 대신 또 다른 자아를 내세워 사람들 앞에 서면서 인기와 관심을 바란다는 점이 같다. 순이는 오프라인, 하다는 온라인이라는 활동 매체만 다를 뿐, 시대는 달라졌지만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코믹하게 표현되었지만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스타를 꿈꾸었지만 좌절된 사람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아이돌 연습생이었지만 데뷔가 좌절되고 이미테이션 가수 '운시내'로 밤무대에 서는 정준옥(노재원), 이미테이션 가수 '가시내'를 탈피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음반을 냈지만 무대 공포증을 이기지 못하고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백두리(김재화). 그리고 평생 윤시내만 뒤쫓다가 딸과 사이가 멀어진 순이와 예전의 인기가 그리워 전남친을 찾아가 몰래카메라를 시도하다가 망신만 당하는 하다까지. 그들은 하나같은 하늘의 빛나는 별을 뒤쫓는 인생을 산다. 하지만 별을 손에 움켜쥘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별을 뒤쫓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병실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이미테이션 가수 '윤신애'와 같은 결코 찬란하지 않은 평범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순이와 하다가 사라진 윤시내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순이와 하다의 화해를 그려낸다. 서로 너무 닮았기에 오히려 싸울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은 긴 여정 끝에 결국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화해는 그렇게 시작한다. 서로에게 솔직해졌을 때 서로를 향한 진심도 전해지는 법이다. '가짜에도 진심은 있다'라는 이미테이션 가수 학원에 붙어 있는 문구는 이 영화의 주제가 된다. 비록 자신의 본 모습이 나닌 또 다른 자아를 내세운 가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순이에게도, 하다에게도 서로를 향한 진심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모녀는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한다.

막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추억 어린 윤시내의 노래도 아쉽게 'DJ에게'와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만 반복 재생된다. 웃음을 유발하거나, 그렇다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도 없다. 하지만 잔잔함 속에서 순이와 하다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여정이 훈훈하게 느꼈다. 영화 마지막 장면, '짱하 TV'에서 신나게 윤시내 노래를 부르는 순이와 하다의 모습은 그래서 좋았다. 세대 간 화합이 별건가? 이미테이션 가수 엄마가 유튜버 딸의 방송에서 함께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 그게 화합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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