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더 강해져야 해
어머님 투병하실 때 생각하니 서울대병원엔 좋은 기억이 없어 망설이고 있었는데, 때마침 이상협 교수가 분당서 왔다는 소식을 접해 고민 끝에 예약했다. 2015년 5월 12일 이 교수에게 스턴트 시술을 받고 순천으로 내려와 차분히 한의원을 정리하며 일단 환자들에게는 공부를 하려고 두 달 정도 한의원을 비우는 것으로 알렸다.
외래에서 만난 이 교수는 수술 결과에 대해서 말끝을 흐리며 곤란해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하니 밥을 웬만큼 먹으면 바로 항암치료부터 더 해 보자 했다. 남편은 본래 소식을 한데다 투병 생활 이후로 먹는 양이 더 줄었지만, 항암치료를 피할 수는 없었다.
곧 퇴원할 줄만 알고 있던 남편에게 이제 내과 병동으로 옮길 거라고 했더니 곧바로 의심의 눈초리가 날아왔다.
“수술 끝나고 예방 차원에서 항암치료를 좀 더 해야 한다고 그러네.”
“뭐든 나한테 숨기지 마라. 얼마 안 남았다고 해도 항암제에 의지해 생명 연장하며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아.”
대쪽 같은 자존심에 상처 입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양기호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지만,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었다.
남편이 6개월 가까이 쉬는 동안 안 좋은 소문이 계속 돌았고, 급기야 양기호 원장이 죽었다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어떤 점쟁이는 내가 자기를 만나러 몇 번이나 왔었다는 헛소문도 퍼트렸다.
11월이 되고 서울대병원 외래에서 처음 만난 김용태 과장님은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항암치료를 잠시 쉬면서 한의원에서 조금씩 환자를 보기 시작하자 헛소문들은 많이 잦아들었다.
한참을 달리던 차 속에서 남편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누구도 남의 인생 가지고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어. 오늘의 내가 내일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인생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거다. 남들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상처받지 말아라.”
난 그 사람의 말을 단어 하나도 흘려듣지 않고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다. 여태껏 의지하고 살아온 남편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삶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스승으로서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마치 내일이면 어디론가 사라질 사람처럼 그 사람은 맘속 깊이 담아뒀던 당부의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몸이 좋지 않은 와중에서도 예정된 휴가지에 함께 다녀왔고, 다행히도 8월 17일 받은 CT 결과가 좋았다. 남편은 더 많은 시간을 환자 진료에 할애했고, 한의원 환자는 점점 늘어만 갔다.
바쁜 일상에 피곤할 법도 할 텐데 주말이면 남편은 녹동, 고흥, 백야도, 하화도, 섬달천, 돌산대교 등으로 나를 데리고 다녔다. 왜 쉬지도 않고 이러냐고 하면 “네가 바다 좋아하잖아.”라고 했다.
2017년 5월이 되자 남편의 상태가 다시 안 좋아졌다. 나름대로 조심해도 컨디션이 계속 좋았다가 나빴다를 반복했고 혈당 조절도 잘 안 되었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환자 진료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아 결국 5월 22일 서울대 병원에 다시 입원해 검사를 받았는데, 간으로 전이가 되었다는 절망적인 결과만 확인해야 했다.
나는 또다시 지옥의 낭떠러지에 서게 된 기분이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불시에 남편을 잃은 셰릴 샌드버그가 스탠퍼드 졸업식에서 한 축사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심리적인 충격을 극복하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근육처럼 키울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회복 탄력성입니다. 탄력성만 있으면 삶이 여러분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더라도 다시 숨 쉴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상기하며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음을 더 단단히 먹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시리즈 보러가기(▼클릭!)
1. [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1편. 서른둘에 찾아온 사랑
2. [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2편. 한 번뿐인 인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