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같은 장소를 세번 간다.'
<북촌방향>은 '반복'의 영화다.
영화 속에서는 여러번 되풀이하는 대사와 장소와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성준 (유준상)은 '소설'이라는 술집을 세번 찾아간다.
'다정(多情)'이라는 한식집에서도 여러번 밥을 먹는다.
성준이 하룻밤을 같이보낸 여자와 올때마다
자리에 없는 술집주인은 닮아보인다.
관객은 어, 아닌가?하면서 갸우뚱하지만,
끝끝내 등장인물들은 마치 다른사람처럼 대하고,
그리고 마치 이전에 와본적이 없는 것처럼 같은 장소를 찾고,
같은 대사를 해대며,
같은 사람을 여러번 만난다.
이게 무슨 조화지...할 무렵,
우리네 일상처럼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미묘한 '변화'를 캐치해내고
그 부분에서 공감하며, 때로는 뜻모를 박장대소도 터뜨리게된다.
'우연이란?'
극 중에서 보람 (송선미)은 오는 길에 4명의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만난 이 모두가 '영화'에 관련된 사람이었고,
그 사람들을 '20분'안에 만난게 너무나도 신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게 뭐?"하는 반응이다.
성준은 이 상황에서 참으로 옳은 말을 한다.
"우연이란, 우리가 지나온 수많은 우연들 중에서도
우리가 뭔가 이유를 두고 의미를 붙이고싶어하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뿐이야.
그 '우연'이 일어나기까지전의
우리가 외면하고 지나쳐왔던 수많은 '우연'들이 만나
그 '우연'을 만들어내는거지.
단지, 우리는 그 '우연'에 이유를 붙이고 더 의미있어하고싶은거지
사실은 아무 이유도 없는거야.
이유없는 것들이 모여서 생각의 라인을 만들고 그것이 또 모여서 우연을 만들어내는거지. "
같은 장소의 반복, 같은 대사의 반복, 같은 장면의 반복일 듯 하더라도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마치 우리 일상처럼. 반복의 나날이지만,
그 안에서의 미묘한 변화로 인해
우리는 즐거움도, 기쁨도, 슬픔도, 공감도 느낀다.
매일매일이 똑같다고 하지만, 실로는 '차이'가 있는 것.
그 '변화'의 차이로부터 우리는 감정을 느끼고 앞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 <북촌방향>은 처음 나왔던 '낙원상가'를 향하는 표지판이
마지막에도 멀리감치 보인다.
성준은 마치 처음장면의 서울로 올라온 것처럼 영호 (김상중)한테 전화한다.
어, 끝장면이 첫장면이었나?
방금전까지 그들과 만나 술마시고 헤어진게 아닌가.싶을 때
마치 의식의 흐름이 물 흐르는대로 이어진게 아닌가싶었다.
그런데, 그게 전혀 이상하거나 낯설지가 않는다.
마치 처음이 끝이고, 끝이 처음인 것처럼.
'반복', '차이', '기억'.
영화내내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생각났다.
반복 속에서 빚어내는 미묘한 차이,
그 차이는 나의 기억에서 옳게 흘러가는 것인가?
가끔은 내 '기억'이 의심될 정도의 장면이 반복된다.
게다가, 끊임없는 술판에 정신조차 말짱하지않으니.
보는 내가 제대로 본게 맞는지 '기억'에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긴, 인생도. 맞다고 생각된 것도 돌이켜보면 영 아닐 때도 있다.
난해한듯하지만 정말 많이 웃고 은근 좋았던 <북촌방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