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칼럼(대중문화) - 여성포털이지데이

감독 : 곽경택, 김태훈

주연 : 김명민, 최민호, 김성철, 메간 폭스

이 땅에서 또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국정 농단 사건으로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연일 열렸던 2016년 겨울, 나는 가족과 함께 전시회를 보기 위해 전쟁기념관에 가는 택시에 올라탔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택시 기사는 자신도 젊었을 때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에 많이 참가했었다고 회상하며, 지금 광화문에 모인 젊은 사람들은 뭣도 모르는 애송이들이라고 비하했다. 그러한 택시 기사의 말에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고, 택시 안에서 논쟁을 벌이는 것도 싫어서 그냥 "아~ 네!"라고 영혼 없는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내가 맞장구를 쳐주자 택시 기사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종북이라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택시 기사한테 물었다. "그러면 기사님은 북한하고 전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내 질문에 택시 기사는 "아니,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 어쩌자는 거죠? 그냥 이렇게 계속 분단된 상태로 전쟁 위협 속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내 질문에 택시 기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때마침 택시는 목적지에 도달했고, 우리 가족은 택시 기사의 대답을 끝내 듣지 못한 채 택시에서 내렸다.

나는 그다지 정치적인 인간은 아니다. 내 성향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래도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싫더라도 그들을 살살 달래서 평화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 전쟁이 또다시 일어난다면 그것은 나의 아들 세대에게 큰 상처가 될 것이다. 결국 전쟁터에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는 것은 늙은 내가 아닌 아들일 테니까. 절대로 절대로 그러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되기에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지한다.

전쟁 영화를 싫어하지만 이 영화를 본 이유

나는 전쟁 영화가 싫다. 즐거움을 위해 영화를 보는 내게 전쟁 영화는 끔찍함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이유도 모르는 채 전쟁터에 동원되어 총을 든 사람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한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 때문에 필사적이다. 도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안전한 곳에서 지휘를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병사들만이 장기판의 말이 되어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명령에 목숨을 내건다. 이건 너무 불합리하지 않은가?

이렇게 전쟁 영화가 싫지만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을 보기 위해 아들과 함께 극장으로 향했다. 나와 영화 취향이 비슷한 아들 역시 전쟁 영화를 싫어하기에 "굳이 이 영화를 봐야 해요?"라며 투덜거린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꼭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보며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깨닫기를 바란 것이다.

특히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한국 전쟁 당시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학도병들이 동원된 장사상륙작전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넓은 꿈을 꾸며 청춘을 만끽하고 살았을 그들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위장 작전에 동원되어 총알받이가 된다. 영화의 부제처럼 아무도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한국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의 성공만을 기억할 뿐이다. 이 얼마나 비극이란 말인가. 나는 아들이 그들의 가슴 아픈 희생을 보며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느꼈으면 좋겠다.

시작부터 전쟁의 한가운데로...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뜸을 들이지 않고 곧바로 전쟁의 한가운데로 향하는 문산호를 보여준다. 당혹스러웠다. 나는 영화의 초반은 여느 중,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는 주인공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그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명준(김명민) 대위가 이끄는 유격대에 자원입대하는 장면이 나온 후, 영화 중반에서야 본격적인 전투 장면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캐릭터 소개와 드라마적 요소를 초반에 배치시키면 후반 그들의 희생에 대한 감동이 더욱 커지기에 대부분의 전쟁 영화들도 그러한 방식을 택하곤 한다.

하지만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다짜고짜 문산호에 탄 772명의 학도병을 보여준다. 문산호를 발견한 북한군의 공격이 시작되고, 이명준 대위는 특공조를 차출하여 해안으로 헤엄쳐가서 밧줄을 연결하도록 지시한다. 그렇게 연결된 밧줄을 붙잡고 학도병들은 장사리 해안으로 상륙한다. 물론 북한군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무방비 상태로 해안에 상륙하는 학도병에게 무차별 공격이 가해지고 수십 명의 학도병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전사하고 만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학도병과 북한군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그 과정에서 학도병은 승리를 거둔다. 나는 장사착륙작전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초반부터 클라이맥스급 전투 장면이 튀어나온 것이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이렇게 본론부터 이야기하고 그 뒤 캐릭터를 완성해 나간다.

클라이맥스 후 캐릭터 구축

영화를 이끌어나갈 학도병 캐릭터는 총 넷이다. 그중 북한 출신의 최성필(최민호)은 한국전쟁 중 남한으로 피난을 가다가 북한군의 포탄에 부모와 여동생이 죽자 복수를 위해 학도병에 지원했다. 최성필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시종 최성필에게 딴죽을 거는 기하륜(김성철)은 11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거의 느끼지 못했으며, 전쟁 영웅이 되면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원입대했다. 그 외에 7대 독자인 오빠를 대신해 입대한 문종녀(이호정), 뚱뚱하고 조금 둔하지만 문종녀를 지키겠다고 굳게 약속한 국만득(장지건)이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의 주인공이다.

문제는 영화 중간에 캐릭터를 완성하려다 보니 주인공의 고백만이 캐릭터 구축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그들 모두 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사연이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차라리 정석대로 캐릭터 구축 후 전투씬이 펼쳐지는 것이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장사착륙작전의 성공 이후 영화가 조금 늘어지는 것 또한 클라이맥스가 초반에 배치된 영향이 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장사상륙작전이라는 클라이맥스가 초반에 배치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장사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학도병들의 철수 작전이 남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이 진정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목숨을 걸고 작전에 투입되었지만 버려진 영웅들의 비애 말이다.

왜 그들은 학도병들을 외면했나?

장기를 두다 보면 버려야 하는 말이 있다. 장기라는 것이 내 궁을 지키고, 상대방의 궁을 쓰러 뜨리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궁을 제외한 다른 말들의 희생은 승리를 위해 불가피하다. 전쟁이라는 것도 그렇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총알받이가 필요하다. 당시 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장사상륙작전의 학도병들은 버리는 말, 다시 말해 총알받이로 이용했다. 어쩌면 그렇기에 그들을 구할 생각조차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학도병들은 장사리 해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북한군을 죽이고 장렬히 희생되어야 하는 존재였을지도...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에서는 총알받이에 불과한 학도병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미국의 종군기자 매기(메간 폭스) 뿐이다. 특히 매기가 한국군의 고위 간부인 임춘봉 준장(명계남, 동방우로 개명함)을 인터뷰하는 장면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게 잔혹하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 십, 수 백 명의 희생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것이 최선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9월 19일 장사상륙작전에 동원된 학도병을 구출하기 위해 조치원호가 장사리 해역에 도착한다. 그리고 학도병들은 상륙할 때 그랬던 것처럼 밧줄에 움켜쥐고 조치원호로 헤엄쳐 간다. 북한군의 공격에 또다시 수십 명의 학도병들은 전사한다. 영화 초반 장사상륙작전처럼 치열한 총격전은 없지만, 철수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한 명이라도 더 조치원호에 오르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은 상반된 두 개의 클라이맥스를 영화의 앞과 뒤에 배치했다.

문제는 쥐어짠 감동이다.

인천상륙작전에 가려져 잊혀진 장사상륙작전을 영화화했고, 이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전쟁 영화에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영화 말미에 감동을 쥐어짜는 억지 장면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철수 작전에 합류하지 않고 장사리 해안에 남아 끝까지 북한군에 저항하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최성필과 기하륜의 죽음은 정말 꼭 필요했던 걸까? 굳이 왜, 문종녀는 국만득 앞에서 죽어야 했나?

의도는 알겠다. 주인공 대부분을 죽음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려 했을 것이다. 나는 눈물이 많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보며 영화 후반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을 정도로, 남자는 죽을 때까지 딱 세 번만 운다는데, 나는 영화를 보며 수백, 수천 번을 울었다. 하지만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을 보면서는 눈물 한 방울이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들이 막판에 가서 죽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다 보니 이렇게 감동을 쥐어짜는 연출을 한 곽경택 감독과 김태훈 감독이 원망스러웠을 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아들은 배가 고프다며 KFC에 가자고 한다. KFC에서 사온 프라이드치킨을 맛있게 먹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69년 전 학도병들도 평화로운 세상에서 태어났다면 나의 아들처럼 치킨 한 조각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곽경택 감독과 김태훈 감독의 감동에 대한 강박으로 쥐어짜지만 않았다면 그들의 희생에 대한 좀 더 여운이 깊은 영화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