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판매왕이 아니라 거절왕이었다
거절,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경험이 떠오르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굴부터 찌푸릴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사람에게 간신히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했을 때의 참담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첫 영업에 나섰다가 고객에게 싸늘한 냉대를 받았을 때의 막막함…… 어디 그뿐이랴, 며칠간 낑낑대며 쓴 보고서를 읽은 상사의 호통, 회사의 사활이 걸린 거래처와의 계약 실패도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거절의 경험에 속한다. 그렇다. 거절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경험이나 기억, 이미지로 연결되곤 한다.
“거절 좀 안 당하고 살고 싶어요. 뭔 놈의 인생이 거절의 연속이야……”
얼마 전 만난 후배는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 한숨과 함께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제 영업 20년차에 접어든 후배는 여전히 고객의 냉대와 거절이 힘들고 두렵다며 하소연했다. 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카탈로그를 돌리러 간 사무실에서 문전박대를 당할 때의 비참함, 열심히 공들인 고객이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꿀 때의 허탈함. 어쩌면 거절이란 영업맨이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자 숙명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직간접적으로 거절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선배는 대체 어떻게 영업을 하시는 거예요? 거절 안 당하는 비결 좀 있으면 알려주쇼.”
한참 신세한탄을 늘어놓던 후배가 갑자기 거절당하지 않는 방법을 물어왔다. 사실 한두 번 받은 질문도 아니다.
‘30대에 4년 연속 전국 자동차 판매왕 등극.’
‘30년 넘게 현역에서 뛰고 있는 베테랑 영업맨.’
자랑 같아 부끄럽지만 내 이름 앞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이런 나에게 후배들은 “영업의 비밀이 뭐냐?” “거절당하지 않는 방법이 대체 뭐냐”라고 물어오곤 한다. 하지만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거절 앞에 장사 없다고나 할까.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라는 이야기다. 다만 내가 그들에게 들려주는 조언이 하나 있긴 하다.
“나는 거절을 ‘안’ 당한 게 아니다. 거절을 ‘잘’ 당했을 뿐이다. 거절을 당하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거절 ‘하는’ 방법도 아니고 거절 ‘당하는’ 기술이라니, 다들 이게 무슨 어이없는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곤 한다. 하지만 어찌하랴. 나는 정말 사실대로 말한 것을. 나름 영업계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거절을 당하지 않는 묘수 같은 것은 모른다. 내 능력과 경험이 진정한 고수가 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짧지 않은 경력을 쌓으면서, 나는 거절을 잘 ‘당하는’ 방법만은 분명히 터득했다.
거창한 노하우도, 내세울 만한 필살기도 아니지만 내가 거절을 당하는 방법의 중심에는 ‘3성’이 있다.
정성 :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했는가
감성 : 울리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다가갔는가
인성 : 기본이 되어 있는가
정성이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거절을 당한 후에는 팽하고 돌아서거나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중요하다. 거절 이후에도 계속 고객의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 정성이다. 오늘은 고객이 아니지만 내일은 고객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정성을 기울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감성이란, 상대가 거절을 하되 이를 미안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란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더라도, 한 번 미안한 마음을 품으면 나중에 어떻게든 도와주게 되어 있다. 단 미안하게 생각하도록 만들라고 해서 동정심을 사려는 언행이나 부담을 주는 태도는 금물이다.
인성이란, 기본을 지키는 전략이다. 조금 어렵고 힘들더라도 정도(正道)를 걸을 각오가 필요하다. 각종 편법이 난무하는 시대에 기본을 지키라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 인성을 갖춘 정성은 오히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거절을 당하더라도, 그저 대책 없이 당하는 것과 전략적으로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기본적으로 ‘Yes'보다 ’No'를 듣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영업에서, 거절을 ‘어떻게’ 당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이제 당신이 고민할 것은 어떻게 하면 거절을 ‘안’ 당할 것이냐 하는 방법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거절을 ‘잘’ 당할 것이냐 하는 전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