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서비스 멘트와 스치는 사람들과의 영양가 없는 대화들. 고객 서비스에 대한 전문가로 유명세를 떨치는 마이클의 일상은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비행기를 타고 출장지로 날아온 그는 단 하룻밤만을 자신에게 허락한다. 그마저도 룸서비스와 연설 연습으로 채우려던 참, 이곳에서 만났던 과거의 여자친구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옛 연인과 설레는 마음으로 만났지만 그녀 앞에서 그는 죄인일 뿐. 너절한 과거 앞에서 더 못난 현실을 보여주고 만 마이클은 호텔방에 올라와 낯선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개성 있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 비주얼도 낯설기는 하지만, 유난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건 등장 여성인물들의 목소리다. 마이클과 같은 굵직한 목소리로 말하는 여자들 속에서 리사의 낭랑하고 고운 목소리는 단연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이클은 리사의 목소리가 아름답다며 온갖 사탕발림을 선사하고, 하룻밤의 사랑을 나누는 데 성공한다. 마이클에게 리사는 매력 없는 사람들 속에서 빛나는, 단 하나의 특별한 사람. "아노말리 리사(Anomaly Lisa)"의 의미로, "아노말리사(Anomalisa)"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마이클은 리사에게 영원을 청한다.
공허 한가운데에 찾아온 사랑은 더 쉽게 사라질 위험이 있다.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자리한 사랑은,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뀌면서 다시 공허의 일부가 되고 마니까. 신비롭고 새로운 아름다움은 점점 무뎌지고,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하나 둘 눈에 띈다. 마이클의 사랑도 다르지 않았다. 삶의 문제를 현실 안에서 찾지 않고 새로움을 찾아 도망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마이클은 계획에도 없던 노래하는 게이샤 인형을 홀리듯 산다. 그가 찾아 헤맨 건 마음을 나누는 진짜 사랑이 아닌, 노래하는 게이샤 인형 같은 사람을 원했던 게 아닐까. 리사는 마이클에게 적는 편지에서 말한다. "아노말리사는 '천국의 여신'이라는 뜻이래요." 현실도피를 꿈꾸는 마이클들이여, 사랑은 지상에서 찾아요.
+ 사랑의 몸짓만 6개월을 찍었다고 한다. 실사영화보다 더 그럴싸한 연출로, 임팩트 있다. 마이클이 가정이 있는 사람만 아니었어도 굉장히 아름답게 봐줄 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