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미쳤다. <매드맥스>를 볼까말까하다 바쁘다보니 놓쳐버렸다. 이미 관람한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음을 알고는 삐뚫어질까 고민도 했다. 대체적으로 남들이 보기 전에 본 후 전파해야 하는데 뒤늦게 보고 우와~!하는 것은 내 성격에 맞지 않아서. 어쩌랴. 끌리는 걸. 보고 말았다. 이미 매드맥스는 과거에 맬 깁슨이 주연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 때에도 굳이 이야기하자면 B급 정서를 갖고 있는 영화였다. 딱 봐도 촌스러워 보인다.

이번에 새롭게 찍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감독이 다시 연출을 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이미 <로렌조 오일>이나 <꼬마돼지 베이비>등으로 잔잔하며 감동적인 영화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감독이었지만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매드맥스>로 다시 돌아와서 정말 살아서 펄떡거리는 영화를 만들었다. 아마도 영화를 찍는내내 허얀 이빨을 드러내며 미친 듯이 소리치며 방방뛰어 다니며 전체 지휘를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부분 영화들이 그렇다. 초반에 관객의 몰입을 집중시켜며 의자에 앉지 못하게 할지라도 점점 엉덩이가 빠지며 늘어지게 된다. 30분을 유지하는 게 힘들다. 그런데 <매드맥스>는 미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계속 달린다. 초반에 정신없이 달리다가도 잠시 휴식하며 템포 조절을 하기 마련인데 무식한 감독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부친다. 영화 내용도 달리고 차들도 달리고 오토바이도 달리고 시간도 달린다. 심지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도 달린다. 아니, 폭주한다.

허리가 꽂꽂하게 서서 휘어질 틈을 주지 않는다. 시작부터 가볍게 예열을 하며 캐릭터 소개나 잡다한 이야기를 전혀 해 주지 않는다. 그저 출발이다. 물과 석유가 부족하다. 인간도 부족하다. 어느 것 하나 여유있는 건 없다. 늘 그렇듯이 도시에서 도시로 물자를 실은 차가 출발한다. 누구는 물이 부족하고 누구는 석유가 부족하니 이 권력을 잡은 사람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자신의 신격화하여 조정한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신처럼 그를 떠받드며 신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예쁜 여성을 데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자유를 다시 찾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어릴 때 납치당한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은 이 기회에 여성들과 함께 임모탄(휴키스 바이론)으로 부터 탈출한다. 이때 맥스(톰 하디)가 납치되어 수혈하게 되는 눅스(니콜라스 홀트)와 함께 추격에 동참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액션이 시작된다. 아무 배경도 없다. 오로지 사막이다. 나머지는 전부 차들이다. 이게 장관이다. 화려한 테크닉따위는 갖다 버리고 우직하게 추격씬에 집중한다.

사막에서 펼쳐지는 추격씬이 쉽지 않았을텐데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어딘지 투박하고 괴기한 차들은 전혀 세련되지 못하지만 보는 관객에게는 전율을 불러일으키고 무식하게 쫓고 쫓기는 장면에서 더욱 힘이 느껴진다. 보면서 감독이 미친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우직하게 쫓고 쫓긴다. 트릭이나 미장센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 생존을 위해 서로 쫓기고 쫓는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로지 달리고 달리며 전진할 뿐이다. 전진에 방해되는 것은 전부 갈아먹는다. 사람이든 차든 신경쓰지 않고 제거한다. 이토록 강렬한 추격씬은 본 적이 없다. 단순히 때려부시며 쾌감을 느끼며 내용없는 영화도 아니다. 없어도 될 정도로 훌륭하지만 각자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달린다. 이유가 분명하다. 내편이냐 적이냐의 구분이 있지만. 그 흔한 로맨스조차도 없다. 여성, 남성 구분도 없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전투만 있다. 각자 그럴 시간이 없다. 나중 문제이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샤를리즈 테론은 장난이 아니다. 평소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매력보다는 연기에 집중하는 배우로 유명하지만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연기한다. 어느 정도 여배우로써 자의식이 있기 마련인데 그 마저도 갖다 버리고 연기한다. 정말 최고다. 톰 하디는 영화에서 무게중심을 잘 잡아준다. 주인공이지만 짐승과도 같은 역할 속에서 오히려 잡아먹힐 수 있는 캐릭터였는데 말이다. 니콜라스 홀트는 반쯤 정신나간 역할에서 인간으로 돌아오는데 미친 짓을 할 때 거의 미쳤다.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역시나 임모탄의 휴 키스 바이른이다. 그저 존재감으로만으로도 영화에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이 좀 허무한 감이 없지만 이마저도 어딘지 어울리는 결말이라고 할까. 영화가 아무리 긴장감넘치게 진행되고 박진감 넘치며 차가 부서져도 배우가 제대로 감정몰입을 시켜주지 못하면 영화 재미는 뚝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영화 속 배우들은 전부 기가막힌 연기를 한다. 아마도 사막이라는 특수성이 더욱 집중도를 올려준 후에 다들 미친 게 아닐까 한다.

희망을 찾아 간 여성들은 도중에 희생을 감수하지만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분연히 자발적인 자유를 얻기위해 노력해도 무서움은 늘 함께한다. 그래도 그들은 이미 시작하고 돌아갈 곳을 만들지 않았기에 전진할 뿐이다. 기회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기회를 찾기 위해 무에서 다시 출발한다. 마지막에 쓸모있는 남자는 없고 여성들만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미래가 펼쳐질 지 약간 궁금했다.

저 밖은 지옥이다. 하지만 현재 이곳도 지옥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나가 보자. 어디나 지옥이라면 가만히 있다 죽는 것보다는 나가 무엇이라도 해 보고 죽는 것이 차라리 의미있지 않을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한 눅스처럼 무엇이라도 했어야 사람들이 기억해 주지 않을까. 인간의 인생은 태어나서 죽음으로 끝난다. 어떻게 되었건간에 죽는다. 과정이 중요하다. 결과는 누구나 똑같다. 그저 임모탄이 주는 물만 바라보며 살 것인가? 다시 돌아오더라도 나가보자. 나가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해보지도 않고 나가면 죽는지 어떻게 아나. 

영화는 거의 끝까지 긴장을 놓치 않고 관람했다. 단 한 번도 허리가 휘어지며 보지 않았다. 계속 허리를 꽂꽂하게 세우고 봤다. 관람하는 눈에서 불이 나간 것은 아닐찌 모르겠다. 영화에서 말한 세계관이나 철학을 결부시켜 이야기하는 것은 오지랖같으니 여기서 중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