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가 세상에 상영된지 어느 덧 10년도 훌쩍 넘었다. 원작이 인터넷에 올라온 소설이니 이것까지 합치면 엄청나게 오래되었다. 이미 극장에서 봤지만 이 영화만큼 케이블에서 자주 하는 영화도 없지 않을까 한다.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봤다. 억지로 본 적은 없지만 채널을 돌리다 하는 걸 보면 대부분 봤다. 정확하게는 초반보다는 후반을 주로 봤다. 견우가 피아노치는 그녀에게 다가가 장미꽃을 선물하는 장면부터.

분명히 상영 당시에는 그저 잘 봤다 정도로 끝난 영화였는데 시간이 지나 지속적으로 계손 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영화들도 했지만 대부분 굳이 볼 생각을 안 했는데 <엽기적인 그녀>는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채널을 돌리지 않고 봤다. 집중해서 보지는 않아도 고정시켰다. 원래부터 싫어하지 않았지만 '캐논'음악은 늘 좋고 지금도 신승훈의 'I Believe'는 여전히 듣는다. 

과거와 구분짓는 로맨스 영화는 크게 두 개를 본다. 국내 영화에서 <엽기적인 그녀>와 <8월의 크리스마스>다. 그전까지 조금은 촌스럽고 신파조의 로맨스를 그렸다면 이 두 작품부터 일상에서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로맨스를 그리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분명히 <엽기적인 그녀>는 유치한 면이 상당히 많다. 특히 상상하며 벌어지는 일들은 현실과 많은 부분에서 괴리감을 느끼게 만들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한국인의 정서에 정확하게 부합되게 만들었다.

지고지순한 사랑, 두 남녀가 서로 잊지 못하는 순애보가 깔끔하게 담백하게 펼쳐진다. 이미 코믹한 설정을 통해 관객에게 충분한 무장해제를 해 놓은 후에 본격적인 로맨스를 펼친다. 둘의 사랑은 애달프지 않다. 대단히 거창한 사랑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둘이 헤어진 후 서로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하는 모습은 공감과 공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를 우연히 처음부터 다시 보게 되었다. 전지현은 외계에서 온 존재라고 해도 될 듯 하다. 10년 전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스크린등에서 보이지 않을때도 그는 연기를 하기 위한 노력을 했었고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게 다시 최고의 사랑을 받는 스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이 영화를 보니 매력은 이때부터 여전히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차태현은 엄청나게 저평가된 배우다. 그가 출연한 작품은 거의 대부분 일정 이상의 흥행과 시청을 보장했다. 최소한 관객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드물다. 그의 연기는 대단하거나 놀랍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사람들은 차태현의 연기를 우습게 볼 지 몰라도 차태현은 늘 일상생활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과도한 감정을 선보여 연기 잘한다는 캐릭터를 한 적이 없지만 어느 역을 맡아도 늘 차태현은 연기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연기한다. 이 보다 더 좋은 연기는 없다.

그녀가 산 정상에서 견우에게 소리치며 독백하는 장면은 실제 가장 인상깊고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그 한 장면만으로 <엽기적인 그녀>는 두고두고 향후에도 남을 작품이다. 어떤 남자가 한 여자에 대해 시시콜콜 알고 이 여자는 이런 여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견우는 선(??)보는 남자에게 그렇게 알려준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자는 지금 사랑이 마지막 사랑이라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견우와 그녀는 잘 맞기도 하다.

견우는 지고지순하지만 글쓰기 재능을 발견하고 그녀는 견우와 헤어졌지만 다시 견우와 만난다. 아마도 <엽기적인 그녀>는 전반전과 후반전만 있었다면 그저 괜찮은 로맨스 영화로 남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에는 없었던 연장전이 있었기에 두고 두고 남는 작품이 된 듯 하다. 나도 거의 대부분 보게 되면 연장전 바로 직전부터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 그 전 내용을 다 알고 있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이유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캐논'이 흐르며 견우와 그녀가 다시 만날뻔한 전철 장면을 지나 다시 우연히 만나 서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손을 잡으면서 끝나는 장면이 나에게는 인상적이라 두고두고 또 보는 것이 아닐까싶다. 역시나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야 좋은가보다. 워낙 오래된 작품인데 몇 번이나 봤고 아직까지 리뷰가 없어 쓰게 되었다. 아마도 케이블에서 우연히 또 <엽기적인 그녀>가 한다면 연장전 근처라면 다시 또 채널을 고정시키고 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