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낚였다. 영화 예고편을 봤을 때 분명히 <버드맨>은 스파이더맨, 슈퍼맨, 엑스맨, 배트팬과 같이 코믹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히 예고편에서는 주인공인 마이클 키튼이 날라다니고 폭발씬이 있고 공상과학 영화적인 요소들이 다수 선 보였다. 나중에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직 배우의 이야기라는 정도의 정보만 있었는데 그래도 보고 싶었다. 

나 보고 나서는 역시나 보길 잘했다는 판단이 맞았다. 무엇이든지 오래도록 듣고 보고 읽으면 어느 정도의 감이라는 것이 생겨 전적으로 내 편견에 따른 선택이지만 잘못되는 경우가 드물다.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은 물론이고 감독, 촬영, 각본상에 다수 영화제에서도 초청받았지만 개봉한지 일주일만에 상영하는 극장을 찾기 힘들었다. 딱 일주일 내에 보지 못했다고 이런 천벌을 내리다니 극장에서 보지 못할 것이라 여겼는데 하루에 딱 한 번하는 상영시간이 맞아떨어져서 볼 수 있었다.

제목인 <버드맨>은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마이클 키튼이 찍었던 <배트맨>을 상징한다. 극중에서 과거에 <버드맨>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그 이후로 블럭버스터 영화를 찍지 않고 갖고 있는 돈도 거의 다 써 버린 한물 간 리건 톰슨역이다. 리건은 흥행에 성공하고 큰 인기를 끌었지만 배우로써 인정을 받고 무대에 서고 싶어 자신이 연출한 작품을 브로드웨이에 올리려 한다. 거지같은 연기력의 소유자가 다행히도 리허설 도중 사고로 마이크(에드워드 노튼)로 대체된다.

영화는 한정 된 장소에서 진행된다. 연극 무대와 극장 안에서 연극적인 요소로 장면이 이뤄진다. 과거에 이런 영화들은 작품성을 인정받고 진지한 내용으로 전개되지만 다소 건조하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었다. 영화는 영화만의 매력이 있는데 이걸 연극적으로 풀어 아쉽게 느껴지는데 <버드맨>은 뒤집어 버린다. 분명히 한정된 장소에서 연극적인 요소로 장면이 제공되지만 - 실제로 연극 무대에서 연기하는 모습도 함께 화면에 나온다 - 장면 전환과 롱쇼트로 긴장감을 보여준다. 

극장 내부가 미로처럼 구성되어 있는 착각이 든다. 화면에 등장한 주인공이 움직임에 따라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을 보여주고 갑자기 새로운 인물이 불쑥 화면으로 들어온다. 정극 연기를 선 보이며 다소 과장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쫓아가다 이런 시퀀스는 내가 보고 있는 게 연극이 아닌 영화라고 느끼게 만들어준다. 연극과 달리 배우들에게 밀착되어 클로즈업으로 얼굴 가득히 등장할 때 미묘한 에너지와 근육과 표정의 변화를 볼 때 배우에게 얼굴 살이 없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 느껴질 정도다.

영화 자체는 배우들의 연기력 향연이다. 어설픈 연기를 갖고 이 영화에 참가했다가는 금방 들통이 날 것이다. 다들 품어내는 아우라가 부딪치고 튕기며 SF영화가 아닌데도 보이지 않는 빛이 서로 팽배하게 움직인다. 물론 강한 성격 연기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아닌 과장되고 과잉 에너지가 넘치는 개성파 연기다. 출연한 모든 배우가 평범하지 않은 성격을 표출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대 오프닝을 앞두고 다들 긴장에 서로가 서로를 배려할 여유따위는 없다.

다른 영역은 모르겠으나 배우들은 분명히 똘아이 기질이 있다. 그게 끼로 포장되는 것은 반대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고 얌전해도 그 안에는 상당한 끼가 감춰져 있다. 성격에 따라 표출되는 방법이 다르다. <버드맨>에서 무대에 서려는 모든 사람이 서로 장난 아닌 에고를 품어대며 조울증 환자처럼 기뻐하고 슬퍼하고 환호하고 절망한다. 이런 모습에 깊은 공감이 되었다. 늘 자신의 연기에 확신을 가졌다가 의심을 품기도 하고 칭찬을 받기도 하고 악담을 받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버드맨>의 주인공인 리건은 정신병을 앓고 있다. 누구도 모르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듣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인 버드맨이다. 최고로 잘 나갈때의 그 모습으로 리건을 독려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고 악담을 퍼붓기도 한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서 갈등하고 주저한다. 모든 것을 다 걸고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고 하지만 언제 모든 것을 다 잃을지도 모르는 연예계에서 그나마 버드맨은 다시 성공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자신의 길을 가려고 한다.

배우들은 서로 자신이 잘 났다고 하고 자신 캐릭터만 돋보이려 한다. 연출겸 출연자로 모든 것을 캐어하고 성공시켜야 하고 자신마저도 다잡아야 하는 리건은 자아분열까지 간다. 흔히 말하는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군인가. 끊임없이 고통과 투쟁의 역사다. 도망가고 싶고 회피하고 싶다. 주변 상황은 계속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간다. 내 모든 것을 받친 연극이 성공할 수 없다는 불안감은 초조하고 감정을 폭발하게 만든다. 어떤 식으로든 다시 인기인이 되고 성공한 유명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여전하다.

의도하지 않게 무대 밖으로 팬티만 입고 돌아 브로드웨이 거리를 걸어간다. 여전히 버드맨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를 촬영하고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점점 날은 다가오고 사람들의 관심도 증대된다. 작품이 좋다면 어떤 식으로 마케팅을 하고 사람들에 시선을 끌든지 상관없다는 생각도 영화를 보면서 들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내 작품에 자신있다면 단 한 사람이라도 보게 만드는 것이 놀림을 받을지라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사람들의 시선은 작품을 보면서 모두 용서된다.

작품을 연출하고 출연하면서 점점 자아분열이 온다. 최고의 순간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예술하는 사람이 한 번 정도는 꿈(??)꾸는 극단이다. 리건은 이런 희열을 꿈꿨던 것인지 작품이 망할 수도 있다는 절망적인 선택이었는지 모를 결정을 한다. 의외로 모든 사람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낸다. 모든 환호와 관심은 작품에서 나온다. 작품이 별로였다면 누구에게도 찬사를 받지 못하고 조롱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작품도 인기도 다 얻게 된다. 여전히 그가 원했던 것이 였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가 원하는 진정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화를 보며 감정이입이 제법 되었다. 다른 점이라면 과거에 이미 정점을 한 번이라도 쳐 봤던 인물이였던 반면에 나는 과거도 지금도 정점을 쳐 본 적이 없다는 것 정도. 누구나 다 리건같은 상황이다. 극단적이기는 해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렇기에 인생이 오히려 재미있고 살만하다. 미치게 마음속으로 혼돈이 되고 행동에 대한 결단으로 좌절하고 고통스럽지만.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리건 역할의 마이클 키튼은 <배트맨>전후로 정상에 있었지만 한 동안 전혀 소식을 알 수 없는 한물간 배우였는데 이 작품으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연기력도 잡았고 존재감도 알렸다. 기본이 되어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설 수 있다. 기본도 없으면서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하지 말자. 영화보며 동기부여적인 성공학적 결론을 내는 나도 우습지만 어쩌랴. 

그래도 잘 봤다. 영화는 좋다.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해 아쉽다. 아마도 계속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한 것으로 영화는 조용히 내려갈 것이다. 나는 또 볼 용의가 있다. 여러모로 다시 보면 다시 여러 생각을 하며 보게 되지 않을까 해서. 그런 영화도 참 좋다. 어벤저스 같은 영화도 너무 재미있게 보겠지만. <버드맨>은 다양하게 읽혀진다. 배우들의 세계와 허위의식으로 가득찬 세계와 우리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