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입장, 남자의 입장에서 같은 사건을 집중해서 보여주는 두 편과, 두 사람의 시각이 함께 보여지는 종합편. 이렇게 총 3부작의 시리즈로 제작된 <엘리노어 릭비>. 원제는 '엘리노어 릭비의 실종'이다. Him, Her가 그남자와 그여자로 번역된 건 별다른 느낌이 없는데, Him & Her가 아님에도 Them을 그남자 그여자로 번역해 놓으니, 어쩐지 휴 그랜트와 드류 배리모어가 연상된다. 그래서 관심 없이 끌려 갔다가 산뜻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비틀즈의 팬이라면, '실종'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저 이름이 주는 본연의 외로움과 우울함을 직감했을 터. 그래서 말인데, 제시카 차스테인이 분한 우리의 여주인공 엘리노어의 이름을 비틀즈 팬이었던 부모가 딸에게 지어줬다는 부분은 공감하기 어렵다. 누가 사랑하는 딸에게 결혼식장을 청소하다 죽은 외로운 독신 여성의 이름을 지어준단 말인가.

이름부터 많은 게,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시나리오 전체가 그야말로 영화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래서인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다소 허세스럽기까지 했다. '사랑은 시간의 차이가 아니라 거리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는 글귀에서부터 이미 영화에 거리를 두기 시작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대사에서 진짜 삶이 아닌 배우들의 삶을 보는 기분이었다. 특히,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그려지도록 했을 '함께 있어서 좋은 곳'에서의 장면은 정말이지 불편했다. 그 시간을 되짚어 보려 등장하는 차 안에서의 장면들도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니뭐니해도 제일 힘들었던 건, 한 사람에게만 포커스를 맞춘 채 두 사람을 한 화면에 담는 부분들이었다. 각각의 시선에서 그린 다른 편을 보면 다른 각도에서 다른 느낌으로 그리고 있겠구나, 하는 게 너무 노골적으로 보였다. 이건 그리 보고 싶지 않은 연출이었다. 이거, 굉장히 구식 아닌가.

자식을 잃은 고통에 공감할 수 없어서일까. 상황을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기엔 너무 배우들의 감정에 몰입할 수 없었다. 두 배우의 케미가 별로여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제시카 차스테인은 러브신에서 맥어보이가 웃겨서 얼굴을 똑바로 보기 힘들었다고 했다는데, 그래서 나까지 불편했던 것일지도. 엘리노어의 외로움도 구체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꽤 있었고 코너의 답답함도 이해해 볼 수 있었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감정만을 들여다 보고 있기엔 벅찼다. 이 한 편도 부족해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까지 들여다 봐야 한다니, 3부작을 모두 견디며 보는 분들은 그들 가족과 친구들만큼 인내심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비극을 겪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의 슬픔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솔직히 엘리노어나 코너 모두 그들의 비극 하나만 빼면 참 유복한 조건들인데, 주변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엘리노어는 유난히. 게다가 서로 사랑하는데. 저 정도 사랑이면 많은 걸 극복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공감이 되진 않았다. 

그 공감할 수 없는 상황과 관련해, 자식을 낳아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의 진도 앞바다를 생각하면, 꼭 자식을 낳지 않아도 그 슬픔의 감정은 최소한이나마 공유할 수 있는 것 같다. 꼭 겪어야 아는 것은 아닐 테니,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슬픔을 공유하지 못한 게 내 탓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래도 아버지의 마음은 비교적 와 닿았다. 딸을 바라보는 자상한 아버지의 시선, 첫 수업을 응원하는 동행, 해변의 일에 대한 고백, 자주 전화하라는 따뜻한 말. 자신의 비극을 모르는 사람에겐 조금씩 마음을 열던 엘리노어에게서 그녀의 희망이 보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그 따뜻함을 볼 수록 엘리노어가 자꾸 멀게 느껴졌다.

기대가 컸는데,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영화. 그래도 하나는 건졌다. 엔딩에 흐르던 Son Lux의 음악. 영화보다 음악 하나로, 외로움의 메시지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