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여자가 일가족 살인사건에서 살아남은 아이였다?! 요 문구가 호기심을 엄청 자극한다. 대체 어떤 내용이지? 하며 읽다보니 어느새 끝장을 넘기고 있었다. 헐.. 이런 내용이었다니.. 스릴러라고 하기엔 뭔가 좀 부족한 듯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마지막은 좀 충격이긴 했다. 모든걸 다 파악했고, 알면서도 자신과 닮은 꼴의 여인의 손을 놓지 않는 주인공이라니.. 마지막장을 덮고나서 나이 어린 범죄자들과 사이포패스의 등장이 많아진 요즘, 세상이 계속 삭막해지고 너무 무서워진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울했던 어린 시절, 정신과 치료를 통해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R에게 자신의 음울함과 대부분의 단점을 모두 짊어지게 해서 어느 먼 곳의 진흙탕 속 깊이 묻어버리는 것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나. 지루하고 평범하며 뻔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그는 술 한잔 마시러 갔던 Bar에서 한 여자를 만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은 해야하는데 어쩐지 귀찮고 나른해진 나는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일어난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방 한켠에 걸려있던 양복을 입고 출근하라고 한다. 실종된 전 남자친구의 양복이었다며.. 어쩐일인지 꼭 맞는 그 양복을 입고 출근한 나는 퇴근 후, 그를 찾아온 탐정으로부터 그녀의 전 남자친구가 경리부정을 저지르고 사라졌다는 것과 그녀가 한때 엄청 유명했던, 지금도 미궁의 사건으로 해결하지 못한 히오키 사건에서 살아남은 장녀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에게 그녀의 집에 있는 화분 속에 남자가 파묻혀져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을 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그 자리에서 거절하고.. 다시 찾지 않으려했던 그녀의 집으로 어느샌가 발걸음을 옮긴 나는 한바탕 그녀와 섹스를 한 뒤, 갑작스럽게 아까 탐정을 만났던 이야기를 꺼낸다. 아무렇지 않은 듯.. 여자는 화분을 파내고 보여주며 원래 관엽식물을 좋아해서 화분을 사긴 했지만 사실은 전 남자친구를 조금쯤은 죽이고 싶긴 했었다는 얘기를 꺼낸다. 그런데.. 갑자기 오지 않더니 실종되었다고..
히오키 사건이란, 도쿄 네리마 구의 한 민가에서 히오키 다케시라는 남성과 그의 아내 유리, 그리고 그의 장남이 사체로 발견된 사건을 말한다. 그 집에서 유일하게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있던 장녀만 살아남았는데.. 당시 이 집은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가 아니면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환기용 화장실 창이 열려 있는 게 다였다. 남편과 장남은 심하게 구타를 당한 흔적이 있었고, 남편과 아내는 예리한 흉기에 제 3자로부터 목을 찔린채, 장남은 독극물을 먹고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히오키 사건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부터 하교 중의 여아에게 낯선 남자가 주스 병을 건네는 사건이 십여 건 발생했고, 아내는 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사체를 장식하듯 무수한 종이학에 파묻혀 있었다. 밝혀지는 것 없이 사건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사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장녀로 당시 12살이었던 아이가 바로 그녀라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된 이후, 이상하게 히오키 사건에 자꾸 파고들게 된 나는 탐정을 통해 사건에 관여했던 인물들을 만나면서 점점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