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제주 4.3사건이다. 그런데, 쓰고 보니 도대체 왜 명칭이 제주 4.3사건인지 모르겠다. 이게 왜 단순히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치부되어 사람들에게 말로 전달되는지 궁금하다. 사건이라고 하면 사건이지만 꼭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호칭을 하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이 된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풀어내야 할 많은 일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다시 명예를 회복한 일들도 있고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것도 있고 진실과 사실에 대해 서로 답이 나오지 않는 것들도 많이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나마 관련 인물들이 하는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지만 그 분들마저 고인이 되어 버리면 어렴풋이 알 수는 있어도 정확한 진실은 규명되지 못한 채 묻혀질 수 있다. 위안부문제가 아직까지 생존하신 분들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진실인 것처럼 말이다.

과거에 벌어졌던 사실들중에 대중이 모르고 넘어갔거나 제대로 된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뭍혀져 있던 사건들이 하나씩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의 여부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같은 경험을 해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람이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다수가 경험한 일을 왜곡하거나 일방적으로 몰아 부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들이 집단최면에 걸렸거나 환상을 본 것이 아닐테니 말이다.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아무 죄가 없는 일반 양민을 국가가 죽였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 보면 어느 한 쪽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좌,우 진영이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념과는 전혀 상관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벌어진 참사였다.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투표를 반대하는 과정에서 우파쪽 사람들을 죽였고 이에 대항해서 좌파쪽 인물들을 제거하면서 복수에 눈멀어 좀 과도한 행동에 일반 양민마저 건드리면서 - 분명히 누가 양민인지의 구분은 힘들었을 것이다만 - 결국 경찰을 비롯한 국가의 공권력이 일반 양민을 완전히 학살하는 사건이 바로 4.3사건이다.

이 영화는 그 와중에 주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국군에 의해 죽음 당한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아무도 눈에 띄지 않을 동굴로 숨었던 실화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는 실제로 좌,우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강요는 하지 않는다. 

먼저,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앞으로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될 수 있는 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글로 읽고 이런 엄청난 사건이 있었구나하고 알고 분개하는 정도까지는 좋은 데 직접 바로 눈 앞에서 생생하게 묘사되는 화면을 바라보면서 그 참혹한 모습이 너무 강렬하게 눈을 통해 머리속에 들어오니 좀 힘들었다.

이미지가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러한 일들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이미 내 뇌리를 지배하고 있다보니 관조하는 자세로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 그만큼 감정이 풍부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 머리에 선명하게 이미지들이 남고 내용이 남아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영화를 보는 게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피하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나오는 사람들 중에 군인들은 한결같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들이 나온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들은 전부 멀쩡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이나 말에는 자신들이 하는 명령에 대한 복종에 대해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로지 빨개이에 대한 복수일념으로 행동하는 단 한명을 제외하곤 말이다. 

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죽이는 사람들이 빨갱이라 믿기때문에 하는 행동이 아니라 명령에 불복종이란 있을 수 없는 특수집단이 하는 행동이다. 바보 아닌 다음에 완전히 순진무구하고 순박하여 이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만 보일 뿐이다. 그들이 어떤 이념에 사로잡혀 행동할 사람들은 아니다.

양민들도 자신들이 비록 군인들을 피해 동굴로 도망을 갔지만 솔직히 그 심각성에 대해서는 크게 와닿지도 깨닫지도 못한 행동을 한다. 나같아도 나를 지키는 군인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소문이 돌고 일단 피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피한 측면이 더 강할 것이다. 그렇기에 며칠만 있으면 다시 동네로 내려갈 것이라고 대화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결국에는 서로가 피해자인 셈이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모든 뒷치다꺼리를 하지만 위에 있는 높으신 양반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직접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선택하고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것들은 다르지 않지만 그나마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는 많은 것들이 무식하지 않고 세련되고 보다 양호한 것이라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겨울 무렵으로 나오는데 분명히 비용문제때문일텐데 눈이 있는 화면이 나오기도 하고 눈이 하나도 없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분명히 같은 시점에 벌어지는 일들인데 말이다. 게다가 마지막에 위령제 비슷하게 여러 사람들을 보여주며 종이가 불타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으로 아기가 태어난 장면으로 끝이 나는 것이 더 사실적이였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 화면으로 끝을  맺으니 이 영화의 내용이 사실이라기 보다는 어딘지 판타지같은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눈이 나오기도 하고 안 나오기도 해서.

분명히 그와 같은 화면은 실제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분들을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이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과 그들을 추모하고 위로하기 위해 만든 측면이 있어 보이는 것은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느낌을 가졌다. 영화 끝난 후 자막으로 이 영화의 진짜 사실에 대해 알려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지슬'은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배우들로 캐스팅을 해서 제주도 사람들로만 만든 영화로 알고 있다. 제주도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선댄스영화제에서 수상도 하고 영화의 구성이나 연출도 무척 뛰어나고 연기도 아주 훌륭하다. 어지간히 인기로 배역을 맡는 배우보다 훨씬 인상깊은 연기를 선 보인다.

특히, 동굴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게 구성을 하게 화면을 분할했다. 앉아 있기는 일렬로 앉아 있지만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 중에 끊임없이 옆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화면이 넘어가면서 그들이 둥그렇게 앉아 있는 듯한 착가도 들고 바로 옆 사람에게 말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으로 정독 도서관 앞에 있는 시네코드 선재에서 영화를 봤는데 지금과 같은 멀티플러스 전 극장의 운치가 있고 멋이 있었다. 내부시설이 멀티플러스와 같이 고급스럽고 깔끔하지는 않을 지라도 예전에 극장에 갔을 때 느꼈던 정감어린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극장이였다. 평일 오전인데도 '지슬'을 보는 사람들이 10명 정도 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