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지루한 하루가 지나고 퇴근 시간.
어제 보다도 더 조급한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현관 문을 여는 순간,
큰 아이의 주둥이는 닭나발처럼 터져 있고
눈두덩이는 벌겋게 부어 올라 있는 험한 몰골이 눈에 들어 왔다.
아뿔싸!
작전 실패.
아니, 아들에게 커다란 상처만 안겨줬구나.
순간 밀려드는 자괴감.
무식한 아빠의 주문을 무식하리만치 순종한 아이의 상처는 어쩔텐가?
아내는 보고를 서두른다.
학교 점심 시간.
도시락을 먹는둥 마는둥한 큰 아이는 그 아이의 교실로 찾아 갔단다.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는 은혁이를 피해 달아나더란다.
운동장 한 켠까지 쫒아 갔는데 마침 화단 옆에 있던 삽을 들고 그 아이가 반격을 하더란다.
순간 아빠의 주문이 생각나 무기를 찾으려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당황하고 있던 때
휘~익하고 날아든 삽이 은혁이의 어깨를 내려 찍었고 이내 둘이는 엉겨 붙었단다.
마침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좋은 볼거리였을까?
세상에서 제일 좋은 볼거리가 불 구경과 싸움 구경이라는데.
구름처럼 모여든 아이들에 둘러 쌓여 죽고 살기로 싸우고 있는 내 아들의 참담한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특히나 전교의 쌈짱과 낯 선 전학생의 타이틀 매치임에,
그 것도 점심 시간의 운동장 한 복판에서 말이다.
여튼 무지막지 오래 싸운 후에야 그 아이가 공격을 멈추더란다.
승리를 확인한 은혁이가 먼지를 털고 나서 그 아이의 멱살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며 그랬단다.
"네가 삽을 들면 나는 칼을 들 수 있어. 다시 한 번만 내 동생 건드리면 그 때는 너 죽어!"
아무말 없이 돌아서려는 그 아이에게
"야! 이 새끼야! 사과하고 가 임마!"
그 아이,
"미안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단다.
보고를 들은 나는 큰 아이를 내 가슴에 꼬옥 안았다.
아들의 빰을 쓰다듬었다.
사흘 동안 이 어린 놈의 가슴이 얼마나 무겁고 두려웠을까?
양 손으로 뺨을 쓰다듬으며 눈을 마주봤다.
"은혁아! 역시 너는 멋진 형이다! 아빠는 네가 이길 줄 알았어"
곁에 있던 작은 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 거린다.
자기가 마치 개선 장군인 양.
[후기 - 1]
두 아이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전설의 싸움꾼'이라는 다소 과장된 닉을 달고 다녔다.
그 거창한 닉과 더불어 공부도 제법 했으니 굳이 싸울 일이 없이 잘 자라 주었다.
[후기 - 2]
삼십 전 후의 두 놈.
아직도 제 형을 '무소불위(無所不爲)'로 인식한다.
각인(角印)!
[후기 - 3]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불의'를 보거나 겪을 수 있는데 '타협'하는 비굴을 경계했다.
나무의 잔 가지, 즉 '기교'가 생기기 시작하면 '성장'은 멈춘다.
가능한 한,
다소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기둥(그릇)을 키울 일이다.
사즉생(死卽生).
끝.
(보잘 것 없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