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동료들과 어울려 저녁 식사 겸으로 한 잔을 마치고 집에 들어 섰다.
아내의 인상이 어둡다.
대뜸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따라 와 봐요"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려 안방으로 들어 간다.
"얘 얼굴 좀 봐요"하면서 잠에 든 작은 아들을 가르킨다.
누구에게 얻어 맞았는지 얼굴이 붓고 멍들어 개판이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큰 아이가 5학년 되던 해 늦 가을.
우리는 나의 직장을 따라 서울 신촌으로 이사를 했고
물론 아이들은 전학생으로서 학교 적응이 채 덜 되었던 때 였다.
아내의 브리핑 내용인 즉은,
학교 점심 시간에 운동장에서 놀다가 고학년들이 놀고 있던 일명 '오징어 게임'의 금(線)을
밟았다고 다짜고짜 두들겨 패더란다.
"큰 애는?"
"자기 방에서 자요"
"오라고 해!"
명령하듯 내 뱉고는 옷을 벗고 대충 씻은 다음 안방으로 들어 와 큰 아이와 마주 앉았다.
"은혁아! 너 전혁이 맞은 거 알어?"
잠이 덜 깬 듯한 큰 녀석이 눈을 꿈뻑이면서 대답한다.
"네"
"때린 아이 알아?"
"네. 알아요"
"몇 학년인데?"
"오학년예요"
큰 놈과 같은 오학년이라는 말에 핏대가 올랐다.
"너도 오학년 이잖어~?"
"......"
"같은 오학년인데 네 동생을 저렇게 때린 아이를 그냥 둘 거야?"
"내일 학교 가서 때려줄 거예요"
이미 자기가 마음을 먹고 있었는지 아니면 아빠의 간접 시사 발언에 정답을 찾는 건지......
옆에서 물끄러미 반응만 살피던 아내가 한 수 건넨다.
"전혁이 때린 아이 있잖아요? 전교에서 싸움 제일 잘 한대요. 육학년 아이들도 걔는 못 당하고 선생님들도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드는 아이래요"
참 난감이다.
아들 두 놈의 체격은 상위권이지만 성격이 유순한 편이라 싸움이라고는 거의 경험이 없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나의 바램이나 관심의 초점이 '보복'에 있지 않은 건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동생이 무고한 매를 맞고 들어 왔는데 형으로서 이를 방관한다는 사실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첫 째, 형된 자신에게 있어 힘에 밀려 '비굴하게 타협'하는 것으로 부터의 경계 목적이었으며
둘 째, 동생의 형에 대한 신뢰와 우애를 확인시켜 줌으로써 평생의 형제애를 각인시켜야 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그런데 그 상대가 전교 쌈짱인 건 사실 불가항력이었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나는 도박을 선택했다.
"야! 은혁아! 그 아이가 너보다 덩치가 더 크니?"
"아니요. 비슷해요"
"너 그 아이랑 싸우면 이기겠니? 지겠니?"
"......"
큰 녀석이 말이 없다.
부자(父子)의 침묵이 잠시 흐름에 나는 재빨리 단호한 태도를 보여 주어야 했다.
이 대목에서 머뭇거림은 아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은혁아! 싸움하다가 맞으면 죽겠니?"
"아니요.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맞아! 아빠 생각에도 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 내일 한 판 붙고 와! 네 동생을 잘 못도 없이 때린 놈을 그냥 둘 수는 없잖아? 내일 학교 가자마자 그 아이네 교실로 가서 네가 전혁이 형이라고 말하고 사정없이 두들겨 패 주고 와!"
"네!"
밤 새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아침을 맞았다.
(2부에서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