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조선인 이덕혜에요 "
< ▲ 위 사진이 실제 '덕혜옹주' 입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고궁박물관 >
<덕혜옹주>는 어떤 영화인가? <덕혜옹주>는 고종황제가 환갑을 맞던 해에 얻었던 고명 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품으로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실제 역사에 픽션이 가미된 팩션 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인데 영화에서 덕혜옹주는 손예진 배우가 연기하고 <8월의 크리스마스>, <행복>, <호우시절>, <위험한 관계> 등의 허진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허구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영화 시작 전에 강조하듯 그런 점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봐야할 작품
< ▲ 백윤식 배우가 연기한 '고종', 그는 환갑에 얻은 고명딸 '덕혜'를 끔찍이도 아꼈습니다 >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최근에 자주 보입니다. 이 작품 <덕혜옹주> 역시 마찬가지로, 영화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이는 엄연한 우리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허구가 가미되어 있기도 하는데 우선 어떤 부분이 허구인지를 살펴보면 박해일 배우가 연기한 '김장한'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긴 하지만,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행적들은 모두 그 실존 인물의 것은 아닙니다. 해방 후 덕혜옹주의 귀국을 추진했던 인물은 '김장한'이 아니라 그의 친형이었던 '김을한'이란 인물로 영화에서는 이 형제가 하나의 캐릭터로 합쳐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긴박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영친왕 망명 사건' 역시 시도가 되긴 했었지만 영화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고 전해지는데, 때문에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강조하듯 <덕혜옹주>는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긴 했지만 여기에는 허구적인 부분 역시 가미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봐야할 작품입니다.
권비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지만 소설과 영화 사이에는 간극이 큽니다
영화는 소설에서 인물들을 따오고 어느 정도의 모티브만 가져온 것으로 느껴지는..
< ▲ 하지만 고종이 갑작스럽게 승하한 후, 덕혜는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가게 되는데..
옹주가 '기모노'를 입고 일본으로 떠나는 이 장면은 나라 잃은 설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
또한 권비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영화는 소설에서 '인물'들을 따오는 것 정도에만 그치고 어느 정도의 모티브만 가져온 것으로 느껴질 만큼 두 작품 사이에는 상당히 큰 간극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면서 뺄 부분은 빼고, 힘을 줘야 할 부분은 힘을 주고 있으면서 다른 느낌의 작품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소설에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서 묘사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상당히 간략화되고 있었고, 덕혜옹주의 곁을 지켰던 '복순'(라미란)과 관련된 과거의 이야기 역시 삭제되어 있으며, 소 타케우치와의 결혼 생활과 딸과 관련된 이야기 역시 거의 생략되다시피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비워진 자리를 채우고 있었던 '영친왕 망명 사건'
이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좋은 영화적 선택이었습니다
< ▲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영친왕 망명 사건'을 이야기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있습니다 >
다만 이렇게 비워진 자리를 채우고 있었던 '영친왕 망명 사건'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영화적 선택으로 느껴지더군요. 그 진한 감정들이 묻어나긴 했지만 동시에 다분히 정적이고 드라마적이었던 소설 속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축소하면서 영화적인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건을 추가한 것이기에 이는 소설과 영화라는 매체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때문에 초중반부의 흐름이 나열적이고 약간은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했었지만 구심점이 되었던 영친왕의 망명 사건이 등장한 후로 영화는 하나의 깔끔한 흐름을 되찾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고 극중 캐릭터들의 활용에서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망국의 운명이 짓눌릴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그녀, 덕혜옹주
그 가혹한 운명은 평생동안 그녀를 옭아메고 있었습니다
< ▲ 그 가혹한 운명에 짓눌릴 수 밖에 없었던 그녀.. >
이처럼 소설과 영화 두 작품의 이야기에서는 차이가 존재했지만 이를 통해 그려지고 있는 덕혜옹주의 이야기는 '망국의 운명에 짓눌린 비운의 여인'이라는 공통적인 묘사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인들이 겪었던 육체적인 핍박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망국의 옹주'라는 신분에서 비롯되는 가혹한 운명은 평생동안 그녀를 옭아메고 있었던 것이죠. 마음으로는 일제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 역시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던 처지에서 비롯되는 무기력함.. 그녀는 그토록 잔인한 시절에 '옹주'라는 신분으로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이 그 시대가 흘러가고 요구하는대로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곳에서도 저 곳에서도 발 디딜 곳 없었던 그녀가 느꼈던 지독한 공허함과 절망감
가슴 아픈 우리 역사의 일부분을 담아내고 있는 <덕혜옹주>
극중에서 '덕혜옹주'를 연기한 배우 손예진의 연기 역시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 ▲ 덕혜옹주를 연기한 손예진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전작에서도 좋았기 때문에 올 연말에 좋은 소식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
옹주였기 때문에 조국을 떠나야했고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야했으며 그리운 조국땅을 밟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신세, 하지만 그토록 그리워했던 조국 땅이었음에도 허울뿐인 '왕족'이었기 때문에 다시 왕조가 들어서는 것들 두려워했던 이들에 의해 해방이 되고 난 후에도 입국이 거부됐던 그녀. 그렇게 이 곳에서도 저 곳에서도 발 디딜 곳 없었기에 지독한 공허함과 절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그녀는 결국 정신을 놓고 말았는데 영화는 덕혜옹주의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천천히 담아내고 있었고 그렇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가슴 아픈 우리 역사의 일부분으로 와닿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당한 감정 소모가 필요했던 덕혜옹주를 연기했던 배우 손예진은 옹주가 느꼈을 참담한 심정들을 온몸으로 훌륭하게 표현해내고 있었는데 그 온전한 감정들이 묻어나고 있었던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던 장면들은 손예진이란 배우의 가치를 느낄 수 있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올 연말에 좋은 소식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지극히 이기적이고 기회적이었던 일제의 앞잡이들은 해방된 조국으로 '모셔졌고'
온전히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꿈꾸고 있었던 덕혜옹주의 입국은 '거부됐던'
그렇게 잘못 끼워진 단추로 인해 초래된 비정상적인 현실에 대한 한탄..
< ▲ 그토록 밟고 싶었던 고국의 땅, 하지만 너무나도 오래 걸렸던.. >
그리고 동시에 <덕혜옹주>는 일본인보다 더 악랄하게 동포를 핍박했던 변절한 조선인들의 모습을 '한택수'(윤제문)라는 인물을 통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면서 일제 치하에 요직을 차지했던 지극히 이기적이고 기회적이었던 인물들, 하지만 해방 후에 그런 비열한 인물들은 조선으로 '모셔지고' 온전히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꿈꾸고 있었던 덕혜옹주는 입국마저 거부당했던 아이러니한 역사의 단면을 담아내던 영화는 그렇게 잘못 끼워진 단추로 인해 여전히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현재 세상에 대해 한탄하고 있는 것만 같았던 것이죠. 조국을 배신하고 호의호식했던 인물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권세를 누리고 있고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려 하는 현실, 과연 이런 세상의 모습이 덕혜옹주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조국이었을까요. 가혹한 운명을 타고났기에 힘든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녀가 그래서 더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