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궁에 간다는 건 그곳의 역사나 문화를 알고자 하는 앎의 고픔보다 단청과 지붕의 선이 만들어낸 한옥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남기겠다는 생각이 좀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몇 차례나 경복궁에 다녀오고 나서도 한 번도 경복궁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 경복궁에 남겨진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가브랜드위원회 이배용 위원장과 함께 하는 경복궁 탐방은 그 동안 소홀했던 궁의 유래, 역사 등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에서 기회 중에서도 호기이다.

늦은 밤부터 내리던 비가 이틀이 이어졌고 그 다음날은 진정 맑고 깨끗하다. 하늘에는 거뭇한 먹구름과 하얀 구름이 조금 섞인 쾌청한 푸른 하늘이고, 서울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시야도 꽤나 넓어 덕분에 오랜만에 들린 경복궁은 한 떼의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재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광화문을 거쳐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문장이 지키고 있어 일말의 긴장감을 느끼게도 한다.

때마침 3시에 있는 수문장교대의식 시간과 맞았다. 흥인지문, 숭례문 등 도성과 경복궁 등 왕이 생활하는 궁궐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들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근무교대를 하는 의식인데, 경복궁에서 재현되는 이 수문장교대의식은 15세기 때의 복식, 무기, 의장물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수문장교대의식은 총 8 절차인데 먼저 취타대가 입장하고, 교대 수문군사 입장을 알리는 초엄이 울리면 수문군사들이 용성문으로 입장하여 광화문으로 향한다. 이엄 후 좌우 수문군이 광화무 밖으로 이동하여 당직 수문군사와 교대하고, 당직 수문군사가 광화문 안으로 이동, 삼엄 후 당직 수문군이 지휘 하에 퇴장하는 것으로 교대의식이 끝난다. 약 15분간 이루어지는 수문장교대의식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되는데, 어느 나라의 교대식이 그렇듯 많은 관광객들이 관심을 갖는다.

널따란 마당 저 끝에 서 있는 것은 흥례문이다. 중문(中問)으로 예를 널리 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문이라고 하는데 앞서 지나온 광화문이 재건되었듯 이 흥례문도 2001년 복원되었다. 본래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 때인 1916년에 철거 되어 조선총독부가 세워졌던 곳이다. 지금의 흥례문은 경복궁에 들어서는 관광객들의 표를 확인 하는 곳으로 입장하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관광안내소가 비치되어 있다. 실질적으로 경복궁 관람을 위한 첫 관문이다.

이배용 국가브랜드 위원장과의 만남은 흥례문과 근정문의 중간 지점, 영제교 앞에서 이루어졌다. 화사한 봄옷을 입은 이배용 위원장님께서는 날이 화창하다는 말씀에 이어 첫 물음으로 경복궁이 언제 생겼느냐 하였고, 일순 와글거리던 소란이 사라졌다. 그리 많이 경복궁을 왔었건만 궁이 언제 지어졌고, 얼마나 되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도 그 질문은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경복궁은 언제 지어졌던가. 조선이 세워진 것은 1392년 그리고 궁은 개국 3년 후인 1395년에 지어졌다. 경복궁이 지어진 것에 앞서 세워진 것은 종묘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사극에서 신하들이 임금께 아뢰는 말로 하는 "주상전하, 종묘사직을 지키시옵소서!" 할 때 나오는 그 '종묘'이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가 모셔지는 사당으로 조상을 향한 예를 귀하게 여겼던 조선으로서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이라 한다. 그 후에 생긴 것이 정궁이자 법궁인 경복궁이요, 이곳에서부터 조선의 정치가 시작된다 할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더불어 궁궐은 궁과 궐을 합하여 이르는데 궁은 임금과 가족이 머무는 생활공간을 말하고, 궐은 정치하는 공간이란 뜻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근정전에 가기 위한 영제교는 산에서 명당수라는 맑은 물을 흐르게 하여 세심, 즉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들어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할 수 있도록 깨닫는 자리라 하는데, 다리와 이어지는 담에는 해태가 개천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의 해태는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위정자들의 시비곡직을 공정하게 가려낸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영제교 건너 근정전으로 향한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임금이 신하나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근정전에는 알지 못하던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먼저 근정문을 지나 납작납작 놓인 박석이다. 바닥에 깔아놓은 마름돌을 말하는데, 이 마름돌이 얼기설기 깔린 것 같지만 본래 흙이 숨을 쉬도록 하기 위해 이와 같이 된 것이라 한다. 여름이면 이 박석 사이로 풀이 자라는데, 그것이 바로 흙이 숨을 쉬는 증거라고.

두 번째는 근정전 월대 아래의 부부사자상이다. 정전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하나는 근정전을 돌아보고 임금을 지키고 하나는 서쪽에서 오는 사악한 무리에서 임금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부부사자상 중 어미 사자상 옆에 붙어 있는 새끼사자다. 새끼사자는 왕조의 영속성을 상징한다. 세 번째는 월대의 조각으로 새겨진 사방신과 십이지신이다. 동서남북 방향을 짚는 사방신과 시간을 의미하는 십이지신은 배치의 조화와 배려를 나타내고 있다.

네 번째는 어좌 뒤 일월오봉에 새겨진 의미다. 북쪽의 백두산, 서쪽의 묘향산, 동쪽의 금강산, 남쪽의 지리산, 중앙의 북악산 오봉이라 하여 사방 전국을 보며 정치하라는 의미와 해와 달의 조화와 함께 하는 정치를 하라는 의미였다. 다섯 번째는 궁에 쳐져 있는 그물이다. 이 그물은 제비와 같은 새가 둥지를 틀면 새를 잡아먹으려는 천적에 의해 살생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신성한 장소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그물이 존재하였다.

여섯 번째는 삼발이 솥이다. 정이라고 하는데, 법궁인 경복궁과 덕수궁에만 있는 것으로 백성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민생 안정과 종묘사직, 국토 안보의 정치의 근본을 말하고 있다. 흔히 향로라고 알려져 있는데 잘못된 정보이다. 그 외에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드므가 있다. 예부터 불은 화마라 하여 사악한 존재로 알려져 있는데 화마가 궁에 와서 드므에 비친 자신을 보고 돌아가도록 한 지혜가 숨겨져 있다. 이배용 위원장님께서 지목한 것은 십이지신 중 하나인 원숭이이다. 이 위원장님께선 "생각하는 원숭이"라고 하며, 백성을 생각하는 임금님을 말한다 했다.

이처럼 근정전 하나만으로도 숨겨진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니, 어디 다른 궁궐이라고 다를 곳이 있을까. 근정전 뒤에 편전인 사정전의 해시계의 과학성은 말할 것 없고, 침전인 강녕전 처마에 용마루가 없는 것이 영속적 세계의 구현을 뜻하는 것과 용을 의미하는 임금의 기를 누르지 않기 위한 방편이라는 얘기가 흥미진진하다. 또 자경전 꽃담의 무시무종 사상과 우주 만물 자연을 담은 과학적이고 아름답게 꾸며놓은 뒤뜰의 굴뚝이야기와 봄꽃이 화려하게 핀 풍경이 황홀하다.

그런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있다면 좋겠지만, 어디 경복궁 역사가 짧고 아름답기만 하던가. 경회루에 얽힌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이나 비정한 단종의 옥쇄 강탈사건을 들을 때는 냉혹한 왕좌를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몸서리쳐지기도 한다.

경회루를 거쳐 도착한 곳은 동궁인 자선당이다. 1999년에 복원된 자선당은 참으로 뼈가 아픈 우리의 근대사를 담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오쿠라 호텔 주인이 자선당을 그대로 가져가 별장으로 쓰다 관동대지진 때 돌만 남고 건물은 전소 되어 정원의 돌로 쓰다 한국의 고고학자가 발견하여 삼성의 도움으로 298개의 초석을 가지고 돌아와 지금의 자선당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자선당 곳곳에는 그 지진으로 불에 그슬린 돌들이 기둥이나 벽에 남겨져 있어 비참할 만큼 슬픈 한국의 근대사와 조선 왕조의 비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름다운 향원정을 거쳐, 경복궁에 최초로 불이 들어왔던 지점도 지나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건청궁이다. 건청궁은 2006년에 와서야 복원된 곳으로 그 유명한 명성황후 시해 참사가 벌어진 곳이다. 그 중에서도 곤녕합 누마루인 옥호루는 그 뼈아픈 역사의 장소 중에서도 절정을 이루는 곳이다. 이곳에 궁녀 복장으로 하고 있던 명성황후가 일본 무사들에 의해 칼에 베이고, 그걸 막으려던 궁내부대신 이경직이 살해당하기도 한 것이다. 그에 앞서 광화문 앞에서 일본인들일 저지하려 했던 호위무사 홍계훈의 죽음은 이경직과 더불어 장춘단으로 남았다. 지금은 오로지 장충단공원으로만 기억되는 그곳이 이렇듯 비장한 곳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건청궁을 끝으로 경복궁 탐방은 끝이 났다. 끝으로 이배용 위원장님께서 경복궁의 시작과 끝을 정리하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남의 나라를 침략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자존심과 역사와 문화를 짓밟는 행위입니다.

이 경복궁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담을 것은 남의 나라를 존중하면서도 내 나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평화의 꿈을 안고 앞장 설 때에, 세계로부터 신뢰받고 품격 있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 아닐까요.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들이 해야할 일이라는 것을 끝으로 이 답사를 마치겠습니다.

온고이지신이라는 말이 있다. 옛 걸을 알면서도 새 것도 안다는 말이다. 많이들 알고 있는 사자성어요, 자주 쓰이는 표현이기도 하다. 세계화, 참 좋은 취지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그 말은 결국 궁극적으로 사람이 나아가야할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먼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알고, 그것에 자부심을 갖고 나서야 우리는 진정으로 세계와 더불어 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몇 해 전부터 여러 나라들 간의 FTA 협상이 아주 뜨겁다. 어디 그뿐인가, G20 정상회의이며, 국회의장회의까지 세계 모두 잘 살아보자는 공존공영의 회의들도 우리나라에서 연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렇듯 지구촌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때에야 말로 우리 것을 공고히 지키며 세계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