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여행 매거진 리스트 - 여성포털이지데이

후두둑후두둑 모진 비가 줄기차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배낭이 무거울 거라며 기어이 챙겨오지 않은 우산을 그립게 만드는 세찬 비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호텔을 나서 발도 떼지 못하고 멍하게 하늘만 바라봐야 할 정도로 온통 빗속에 잠겨든 후쿠오카는 조금 기분까지 감상적으로 변하게 했다. 사실 하카타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후쿠오카는 비에 잔뜩 젖어 있었다. 그래서 우산도 없이 패딩 모자 깊게 눌러쓰고, 지퍼도 꾹 올리고 호텔을 가야했지만 그때까지 만해도 체크인을 끝내고 나면 나카스에 있는 포장마차에 가야지 하고 야무지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객실을 나서 프런트를 빠져나와 막상 다시 호텔 밖으로 나와 바라보이는 우중의 후쿠오카는 그 모든 생각을 딱 접게 만들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진데서야 그냥 가까운 곳에서 대충 시간 때우고 저녁이나 먹고 따스한 욕조에 몸이나 담그고 있는게 좋겠다는 생각만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 가운데에 문득 떠오른 건 따스한 온기가 흐르고, 볼거리도 제법 있다는 캐널시티였다.

숙소인 컴포트 호텔에서도 멀지 않고, 일단 도착만 하면 비를 맞을 걱정도 없다는 게 가장 크게 작용한 바였다. 그리고 걸음은 자연스럽게 캐널시티쪽으로 향했다. 컴포트 호텔에서 캐널시티로 가는 길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캐널시티를 나와 오른쪽 큰 길을 따라 죽 걸어가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지 않고 그대로 꺾어져 다시 10여분을 걸어 내려간다. 지금 한참 도로공사가 진행중인 교차로가 나오고, 맞은편에 코코이찌방야라는 카페 전문점이 보인다면 제대로 온 것이다. 슬쩍 시야를 좀 넓게 갖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하야트 호텔의 간판도 보인다. 그쪽 방면으로 길을 건너 코코이찌방야를 마주 본 상태에서 오른쪽, 하야트 호텔 방면으로 길로 돌아가면 캐널시티라고 써 있는 간판을 볼 수 있다. 하얏트 호텔과 잇닿아 있는 곳이다. 하지만 초행자 조금 헷갈리는 곳이었다. 사실 가이드북이 아닌 후쿠오카 관광안내센터에서 받은 지도에는 건물명이 모두 일본어로 표기 되어 있어 하얏트 호텔과 캐널시티가 함께 있는 줄 모르고 교차로에서 하얏트 호텔만 보고는 코코이찌방야의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그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한참을 헤매야 했었다. 나중에는 비상구즈음 되어 보이는 입구로 에라 모르겠다 들어서게 되었고 둘레둘레 상점들을 둘러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쯤 올라와 옥외로 나와서야 캐널시티의 한 건물 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그야말로 헛웃음만 터져 나오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그런 실패의 연속에 가뜩이나 비로 인해 의기소침해질 대로 쳐지는데 아예 몸까지 물에 축축 젖어버려 저 심층저해로 파고드는 기분은 정말이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조명 아래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며 쇼윈도를 장식하는 옷들과 입맛 다시게 맛나 보이는 식당,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들 사이를 물고기 헤엄치는 것 마냥 살랑살랑 지나치자니 그나마 내려앉던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거기에 사진에서만 보아오던 캐널시티의 달걀모양의 구조와 하얏트 호텔 사이의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환상의 워터쇼, 그리고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인해 비가 가지고 온 뜻하지 않은 캐널시티와의 만남이 한층 더 즐거워졌다.

캐널시티에서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거리를 나서는데 그나마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다시 패딩 모자를 눌러 쓰고 저녁을 먹기 위해 히카타역 근처로 향했다. 히카타역 근처 요도바시 카메라 4층에 있다는 스시온도는 일명 100엔 회전초밥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소비세 105엔을 포함하였다 해도 제법 저렴한 스시를 제공하는 식당이다. 스시를 워낙 좋아하는 나여서 간사이 여행 때에도 몇 번이나 찾아갔었는데 이번에도 빼먹지 않고 가야지 마음먹었던 곳이기도 했다. 요도바시 카메라 건물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히카타역 동남쪽으로 나와 요즘 걸어가니 전자제품들이 눈에 뜨여 지나칠 일도 없었다. 카메라며 핸드폰이며 노트북에 각양각색의 제품들이 자꾸 유혹했지만 딱 거절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4층에 내려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막다른 곳에서 왼쪽으로 돌아서자 한 모퉁이에 스시온도가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니 친절한 직원이 몇 분이냐고 묻기에 손가락 하나 당당하게 펴고 ‘히토리 데스’ 하고 외쳤다. 일본어를 모르는 내가 일본에 와서 가장 먼저 익힌 새로운 말은 바로 저거였다.

한 명이요!

배터지게 스시를 먹고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들고 룰루랄라 컴포트 호텔로 향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옷도 다시 젖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건 따듯했던 캐널시티와 맛난 스시온도의 만족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후쿠오카의 비 내리는 밤 거닐었던 거리는 12월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렇게 춥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