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하는 학생들과 늦은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어색하게 앉아 있다 도착한 아소역은 참으로 한산했다. 세계 유일하게 분화구를 볼 수 있다는 나카다케가 있는 아소산의 출발점이라는 아소역의 풍경으로서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긴 첫 버스도 아직 먼 이른 시간에 와서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마치 오래된 학교의 복도 같은 대합실에 들어섰다. 문도 드르륵 미닫이다.

조금 쌀쌀한 기운에 해바라기도 할 겸 나무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오래지 않아 할머니 한 분이 안으로 들어오셨다. 어딜 가나 인정이 넘치는 건 어르신이라고 짧은 일본어도 못하는 여행객에게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느냐 몇 시 버스인지 아느냐를 물으시곤 조곤조곤 무언가를 말씀하셨지만 눈치로 몇 가지 알아맞히는 게 고작이었다. 결국 말씀이 점점 길어지자 그저 생긋 웃음으로 대꾸하고 얼른 일어나 대합실을 둘러보는 척 조금 멀찍이 떨어져 버렸다. 그 사이 본인 타시는 버스가 왔는지 할머니는 사라지고 햇살에 투영된 먼지와 정적만이 좁고 긴 장소를 묵묵히 채우기 시작했다. 잠시의 짬으로 책을 읽는 와중에 몇 대의 버스가 지나치고 마침내 9시, 아소산으로 가는 버스가 역 정류장에 멈추어 섰다.

잰걸음으로 대합실을 빠져나와 버스에 올랐다. 정시가 되어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인데도 승객은 오로지 세 명, 단출한 버스가 출발했다. 공사중이라 조금 어수선한 역 광장을 지나쳐 한산한 아소 시내를 통과해 삼나무가 멋지게 자란 숲의 완만한 비탈길을 비틀거리며 차가 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탄성이 절로 나오는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신의 쌀 창고라고 불리는 고메즈카부터 시작하여 오죠다케의 장쾌한 줄기, 완만한 곡석의 기지마다케와 쿠사센리의 푸른 초원과 높다란 에보시다케에 이르기까지. 아소산 정상으로 가는 버스 안의 풍경은 그야말로 명품 그 자체였다.

아소산 정상 정류장에서 내려 곧바로 로프웨이를 타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지금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아소의 분화구는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 있어 실시간으로 나카다케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다행이 문제없이 로프웨이를 타고 오를 수 있는 상황이다. 아소산 로프웨이 터미널에서 나카다케까지는 가는 로프웨이 요금은 편도 600엔, 왕복 1000엔으로 그저 편하게 오르내릴 사람이라면 왕복이 났겠지만 올라갈 때는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올 땐 도보를 이용하기로 한 나는 편도만 끊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로프웨이가 들어서고 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올라탔다. 아슬아슬 위험천만하게 줄 몇 가닥에 의지해 운행하는 케이블카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소의 풍광은 또한 남다르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나카다케에 발을 디뎠다. 조금 삭막해 보이는 분화구에서는 마치 담배연기를 뿜어대듯 하얀 연기가 줄기차게 솟아오르고, 그렇게 생성된 연기는 뭉게구름이 되어 파란 하늘은 온통 하얗게 뒤덮으며 날아간다. 진정 처음으로 눈으로 보는 살아 있는 화산의 모습이다.

먼저 D 지구의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에서는 나카다케 분화구의 모습보다는 아소산의 웅장한 경치가 더 눈에 뜨였다. 열심히 기념사진을 남기는 관광객들을 멀뚱히 보며 누군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려나 내심 기대했지만 다들 적당히 알아서들 찍고 내려가기에 슬슬 내려가 대피소 안을 스윽 둘러보았다.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화산이기에 언제 재해가 발생할지 모르는 나카다케는 곳곳에 이런 대피소가 존재하는데 과연 마그마가 흘러나와도 살아날 수 있을지는 조금 의심스럽긴 하다.

D 지구에서 내려와 분화구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B1 지구로 갔다. 처음 나카다케에 올라섰을 때는 화산가스의 영향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던 지역이었는데, 잠시 D 지구를 다녀온 사이 출입이 가능해져 있었다. 여전히 분화구에서는 뭉글뭉글 연기들이 피어나오고 거대한 칼데라 안에는 비취색의 온천수가 언뜻언뜻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기대했던 지구의 피처럼 붉은 마그마는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지구의 깊숙한 곳에는 심장이 존재하고 수많은 혈관을 통해 붉은 마그마가 흐르며 지구를 움직이며, 찢기거나 긁힌 상처를 통해 피가 솟아나듯 지구의 화산활동을 통해 마그마가 솟아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화산 활동은 지구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지구로부터의 메시지라고 생각했고, 나는 지구 어디에선가 화산이 폭발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지구의 생존에 조금 안도했었다.

B2 지구를 거쳐 도보로 걸어 내려가다 황무지처럼 광활한 평원에 놓인 외길이 눈이 뜨였다. 어디로 가는 길이던가. 아무도 가지 않는 외로운 길에 나도 모르게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표지판에는 아소산 등산로로 쿠사센리를 걷는 길이라고 되어 있지만 도대체 어떻게 걸어가야 버스로 지나쳐온 그 평원과 만날 수 있는지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사막을 걸어가는 여행자처럼 묵묵히 앞으로만 걸어가다 조금 높은 지대에 올라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아’ 하고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작은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암울한 불모지에 나 있는 길은 지구가 멸망하고 오로지 생존을 위해 남쪽의 바다를 향해 가던 로드의 부자가 걸었던 그 막막한 곳과 어쩐지 닮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곳을 넘어 더 앞으로 넘어간들 무엇을 더 볼 수 있으랴. 돌아본 길의 삭막함에 기분을 잃어 다시 걸음을 되돌렸다.

마치 미국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황토색 산에 깔린 구불거리는 2차선 아스팔트길은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검은 구렁이를 닮았고, 어디 한 군데 녹색은 보이지도 않는 아소의 산들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예감하는 것 같아 조금 비감한 기분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그 웅장함에 넋을 잃게도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혼을 빼놓았던 것은 새파랗게 머리 위에 벼리어진 청명한 하늘과 대비를 이루는 나카다케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연기들과 그것이 만들어낸 그림자들로 얼룩덜룩해 지는 아소의 산맥들. 걸어가는 와중에도 몇 번이고 멈추어서 사진을 찍어야 할 만큼 그곳은 진정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소산 로프웨이와 이웃한 아소 신사를 잠시 기웃하고 주차장을 가로지르니 쿠사센리로 향하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여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버스를 타고 가는 것보다 걸어서 쿠사센리까지 가고픈 욕심에서였다. 그러나 안내판만 있는 그 곳은 안전상의 이유로 진입이 금지되어 있었고 쿠사센리로 가는 곳로 추정되는 조붓한 길만이 눈에 들어왔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선 버스에 올랐다. 아소역에서 출발해 아소산 정상에 오는 버스는 중간에 쿠사센리에서 약 5분 정도 정차에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게 해주는데, 시간이 넉넉하다면 다음 버스를 타는 것으로 생각하고 쿠사센리에서 여유를 부리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유후인으로 가는 시간이 바빠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 안에 쿠사센리를 담아내었다. 다시 버스는 아소의 절경 사이를 여유 있게 달리고 멀찍이 아소의 시내 풍경이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아소역에서 재빠르게 짐을 찾아 플랫폼으로 향했다. 여전히 아소역의 한산한 편이었고, 그 여유로움에 맞춘 듯 오이타로 향하는 기차 또한 참 클래식했다. 어쩐지 규슈에 와서 가장 감성적인 것은 기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